[카테고리:] 프롤로그&에필로그

책과 관련된 이야기

  • 에필로그

    에필로그

    여기까지
    나의 글을 읽어준 당신에게
    진심을 담아
    감사하는 마음을 전한다.

    아는 것과
    그것을 실천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꾸준히 실천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것이어서,

    우리가 이 책을 통해 나눈
    많은 이야기들이
    당신의 삶에 녹아들기까지는
    분명 충분한 시간과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나눈 것들이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나면,
    분명
    당신의 삶이
    지금보다 더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변화할 것이라 생각한다.

    언젠가 삶의 어느 구간에서
    나와 당신이 우연히 만나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나의 좌우명으로
    이 책을 마치려 한다.

    원석을 내리쳐라,
    신이 인사를 건넬 때까지.

  • 레벨업 시스템 설명

    레벨업 시스템 설명

    레벨업의 조건

    당신은,
    이 책의 각 레벨을 거치며
    점점 완전히 자유롭고 청량감 넘치는 존재로,
    될 수 있는 최고의 자기자신을 조각하는 존재로,
    렙업을 해나가게 될 것이다.

    각 레벨은,
    딱 3개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원하는 삶을 조각하기 위해 반드시 이해해야만 하는 내용을
    추리고 또 추려서 딱 3개의 글로 줄였다.

    만렙(최대레벨)은 Lv20이다.
    각 레벨의 렙업은 그저 글 3개만 읽으면 끝난다.
    아무리 세상을 거저 먹고 싶더라도
    글 3개 정도는 읽는 근성을 보여주길 바란다.
    매일 글 1개씩만 읽으면, 두달만에 만렙이다.

    각 레벨은,
    향후 고렙을 찍기(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초부터
    가장 최고의 나를 조각해 세상에 구현해내는 만렙까지
    점점 더 성장하고 고양되어가는 흐름으로 쭉 이어진다.

    다만, 욕구 5단계 피라미드를 창시한 매슬로의 말처럼,
    그 앞전 레벨의 글을 숙지하는 정도가 완전히 100%가 되어야
    다음 레벨로 넘어갈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니 너무 빡빡하게 접근하지 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훌훌 읽으며 렙업을 해나가면 된다.

    당부

    단,
    한가지는 부탁하고 싶다.
    마음에 와닿는 부분이 있거든,
    그냥 넘어가지 말고
    거기 멈춰서서 꼭 10초라도 음미를 해주길 바란다.
    그 별 것 아닌 잠깐의 행동이,
    하늘과 땅의 간극을 만들어낸다.

    이 책을 당신 곁에 두고,
    오랜 시간 당신의 좋은 친구이자 도구로 삼길 바란다.

    당신은 분명히,
    지금보다 훨씬 더 청량감 넘치고 확신이 가득찬 날들을 누릴 수 있다.
    공허감, 후회, 불안 대신 긍지와 기쁨, 여유가 가득한 일상을 보낼 수 있다.

    이 책이,
    당신이 길 위에서 헤매지 않게 지도가 되어줄 것이다.

    추신

    각 레벨의 내용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억지로 읽어라고 말하진 않겠다.
    엄마아빠 말도 안 들을텐데,
    말해봤자 어차피 내 말을 들을 것도 아니지 않나.

    그럼에도, 언젠가 한번은 꼭 읽어보길 권한다.

    … 렙업하는데 글 3개만 읽으면 된다.
    솔직히 말해서 개꿀 아닌가.

  • 만동자 이야기

    만동자 이야기

    부처의 제자 이야기

    부처의 제자 중에는 ‘만동자’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부처에게

    세계는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은가
    여래(붓다의 다른표현)는 사후에도 존재하는 것인가
    영혼은 육체와 다른 것인가, 같은 것인가

    와 같은 질문에 한 번도 부처가 답해주지 않았다며
    이에 대해 알려달라고 거듭 청한다.

    그러자 부처는, 한가지 이야기를 해준다.

    어떤 사람이 독화살을 맞아 고통을 겪으며 위태로운 상황인데,
    이 독화살을 내게 쏜 사람이 누구일까,
    무엇 때문에 내게 이 독화살을 쏜 것일까,
    이 화살의 문양은 어느 집단에서 쓰는 것일까,
    이런 것들에 집중하고 있으면 그 사람은 그 궁금증들을 해소하기 전에 죽고 말 것이다.
    중요한 건, 일단 독화살을 뽑는 것이다.

    관념적인 사색의 방향성

    어떤 것의 원인을 이해하고 숨겨진 이치를 깨닫는 일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숙고와 사색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좀 더 원하는 모습의 삶을 조각해나가기 위해 필요한 과정으로서 존재해야 한다.

    그저 오랜 고민과 탐구가 즐거워 그런 사색을 원하는 것이라면,
    이 책은 당신에게 맞지 않다.

    이 책에서 나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에 대해
    정리하고 재구성한 많은 이야기들을 할 생각이지만,

    이 모든 것들은 철저하게 우리가 삶을 원하는 모습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것들로 한정된다.

    그 이상의 고민들은 지금 우리에겐 필요하지 않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독화살을 뽑는 일이니까.

  • ‘살아남는 법’의 의미

    ‘살아남는 법’의 의미

    사실 이 책은
    단순히 생명을 부지한다는 의미의 ‘살아남는 법’
    에 대해서만 적혀있는 책은 아니다.

    물론 나는,
    책 제목을 보고 이 책을 펼친 당신이 기대한 대로
    이 험한 세상에서 죽지 않고 생존하는 법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것도 렙업을 하는 초기단계에서 가장 먼저.
    다만, 단순히 생존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좀 더 진정한 의미에서 ‘살아남는’ 법을 이야기할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살아남는 일’

    모든 관념이 그렇듯이,
    ‘살아남는다’는 말의 관념 역시 모호하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이 나무 뗏목에 매달려
    어떻게든 숨은 쉬고 버티고 있다면
    그것도 ‘살아남는’ 것이긴 하다.
    하지만 좀 더 넓은 의미의 ‘살아남는 일’이란,
    목숨에 위협을 받지 않고
    예기치 않은 위협에도 견고하게 존재하고 있을 수 있는 삶을
    구축하는 것을 포함하는 개념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조금 더 넓은 의미로 생각해볼까.
    만약 육체적으로 살아남는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살아남는 것까지 생각해본다면?
    주위 사람들의 기대, 조직과 집단의 압박, 사회의 요구와 위협에 휘둘리며
    정신적으로 노예처럼 속박되어 휘둘린다면,
    그 삶이 과연 진정으로 ‘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실은 ‘죽어가는 것인지’는 한 번 생각해볼 일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이유는 없다.

    나는 진정으로 살아남는 법을 이야기할 것이고,
    우리의 목표는 명확하다.
    우리가 최고의 우리자신을 조각하는 조각가가 되어,
    삶에서 ‘공허함’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청량감’으로 가득채워
    희열과 설렘이 가득한 삶을 사는 것.

    나는 당신이,
    죽거나 아프지 않고 생존해서
    몸과 마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힘을 가지도록 도울 것이다.

    그리고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에서 더 나아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시간적으로
    충분한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진정한 스스로를 발견한 후
    가지고 태어난 모든 잠재력과 예술성을 남김없이 발휘하여
    ‘될 수 있는 최고의 자기자신’을 조각함으로써,
    후회와 불안 대신
    긍지와 확신을 가득채운 일상을 누릴 수 있게
    최선을 다해 도울 것이다.

    이게,
    책 제목에 적혀있는 ‘살아남는 법’의 진정한 의미다.

    전자가 협의의 ‘살아남는 법’이라면,
    후자는 광의의 ‘살아남는 법’이다.
    이 책에서 쓰는 ‘살아남는다.’의 의미는
    이 두가지가 혼용되어 쓰일 것이다.
    가급적 친절하게 풀어서 설명해두겠지만,
    어떨 때는 자세한 설명없이 그저 ‘살아남는’으로 적어두기도
    할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
    문맥에 따라,
    그것이 협의의 의미인지 광의의 의미인지
    스스로 잘 판단해주리라 믿는다.

  • 사고의 흐름

    사고의 흐름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

    이제 거의 다 왔다.
    우리는 곧 출발선에 서서, 본격적으로 렙업을 시작할 것이다.
    그 전에 마지막으로,
    전체적인 레벨업 흐름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아까운 지면을 할애해서 렙업에 관한 사고흐름을 풀어쓰는 이유는,
    이쯤에서 전체적인 흐름에 대해 음미하고 시작하는 게
    당신이 렙업해나가는데 명백히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 때문이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흐름

    의미

    삶에서 공허함을 몰아내는 단 하나의 방법은,
    최고의 나 자신을 조각하는 것이다.
    (이미 이야기했지만, 여기서 최고는
    통상적으로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최고’가 아니다.)

    최고의 나 자신을 조각하려면,
    당연하게도 우선 ‘최고의 나 자신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한다.
    최고의 나는,
    태어날때부터 지니고 있던 잠재력과 예술성을 남김없이 모두 발휘해서
    내가 될 수 있는 가장 나답고 탁월한 나를 조각하여 실현했을 때의 내모습이다.
    즉, 그런 스스로를 조각하는 일에 몰입해 결국 최고의 나를 세상에서 실현해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최고의 나자신’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자유

    최고의 나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유로워져야 한다.
    자유로워지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우리자신을 발견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자유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는,
    우리가 생각하고 상상하고 바라고 꿈꾸는 수많은 것들이
    사실은 타인이나 사회, 문화, 국가, 혹은 원초적 본능에 의해
    내가 바라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다면 여기서 자유란 무얼 의미하는가.
    자유란, 신체적 자유와 정신적 자유, 시간적 자유 모두를 의미한다.
    우리는 신체적으로 구속당하고, 정신적으로 속박당한 채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의 시간은, 사실 우리의 시간이 아니다.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뿐.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우리가 신체적 자유를 어떻게 타인에게 내어주고 있는지 자각해야 하고,
    그걸 멈추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얼마나 정신적으로 주위의 시선이나 평가에 속박당해 있는지,
    왜 그런 형태의 예속과 지배가 우리도 모르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생존

    사실 자유를 얻는 과정은,
    우선 살아남아 몸과 정신의 컨디션을 최상의 상태로 만드는 힘을 기른 후에야 가능하다.
    아프거나 건강하지 못하고 깨어있지 못한 의식상태에서는 자유로워지는 과정을 제대로 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장 영적으로 충만하고 직감이 날카롭게 깨어있는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는 일은,
    우리가 우리자신을 최고의 나로 조각해서 삶의 공허함을 없애고 의미를 향유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첫번째 관문이다.

    오늘 하루의 진짜 의미

    인생은 프랙탈 구조로 되어있다.
    프랙탈 구조란,
    전체의 일부가 전체와 유사한 기하학적 형태를 말한다.
    구름, 산, 번개, 난류, 해안선, 나뭇가지, 눈송이 등
    우리가 숨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대자연은 모두 프랙탈 구조로 되어있다.

    대자연의 일부인 우리의 삶 또한 프랙탈 구조로 되어있다.
    수많은 하루가 모여서,
    그 하루들과 동일한 모습의 ‘삶 전체’가 형상화된다.
    가령, 왼쪽 모퉁이가 찌그러진 하루들이 아주 오랜기간 반복된다면,
    우리 삶 전체의 모습도, 왼쪽 모퉁이가 찌그러진 모양으로 점점 바뀌어간다.

    오늘 하루는
    우리의 삶을 압축시켜놓은 우리 삶 전체의 집약체와도 같고,
    우리의 삶 전체는
    수만번의 하루들을 겹겹이 겹쳐놓은 것과도 같다.

    다만 우리에게 주어진 건,
    흥미롭게도 삶 전체가 아니라 오늘 하루다.
    단지 그것 하나가 전부다.
    내일, 다음주, 내년, 미래라는 건 사실 허상이다.
    물론 미래는 높은 확률로 우리에게 주어지겠지만, 그렇다고 장담할 순 없다.
    게다가 언제 지금 현재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달라져버릴지도 알 수 없다.
    미래가 우리에게 주어진다 해도,
    그 미래는 늘 ‘지금’, 즉 현재의 모습으로만 우리에게 주어진다.
    우리는 영원히 ‘현재’안에서만 존재할 것이고, 수만번의 ‘오늘’만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최고의 나를 조각하기 위해 가장 먼저 조각해야 할 것,
    아니 유일하게 조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오늘’이다.

    오늘하루를 조각하는 일

    오늘 하루를 완벽하게 조각하는 것,
    결국 내가 이 책에서 끝에서 할 이야기는 이것이다.
    오늘 하루를 완벽하게 조각한다면,
    결국 건강한 심신에 깃든 최상의 컨디션과 완전한 자유를 얻어
    우리자신만의 의미를 실현하는 최고의 우리자신을 조각하는 일에 성공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최고의 나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 난생 처음으로 발견하게 될 것이고,
    결국 최고의 나를 조각해
    삶에서 완벽하게 공허를 몰아내고 삶을 청량감으로 가득 채울 것이다.
    후회와 불안 대신, 긍지와 확신으로 가득한 일상을 보내게 될 것이다.
    피해자가 아니라, 조각가로서의 삶을 마음껏 누리게 될 것이다.
    먼 훗날, 죽음 앞에서도 후회없이 당당한 그런 사람이 될 것이다.

  • ‘결자해지’는 착각이다

    ‘결자해지’는 착각이다

    결자해지

    맺을 결(結), 놈 자(者), 풀 해(解), 어조사 지(之).

    일을 저지른 놈이 사고친 건 수습해야 한다는 말이다.

    좋은 말이다.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이 저 말처럼 그렇게 굴러간다면,
    ‘세상이 지옥같다’는 말을 굳이 내뱉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자성어는 사자성어일 뿐.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는 다르다.
    그리고 우리는
    이걸 마음속 깊이 새기고 있어야 한다.

    잔혹한 삶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는 사자성어 대신,
    진실을 이야기해보자.

    사는 게 힘들다.
    아무리 노력해도 생각처럼 잘 되지 않고,
    기대할만한 미래가 보이지 않고,
    하루하루 겨우 견디긴 하지만 고통의 연속이다.

    그래, 세상이 문제다.
    이 세상은 불공평하고 더럽고
    윤리적이지도 도덕적이지도 못해서 그렇다.

    그러면 이런 결론에 도달한다.
    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은,
    세상이 다시 아름답고 윤리적이고 공평해져서 해결되어야 할 일이다.
    내 탓이 아니니까.

    … 정말 그럴까?

    세상은 애초부터 공평하지 않다.
    그리고 세상이 공평해야 한다는 건,
    우리들의 간절한 희망일 뿐,
    실제 세상은 전혀 그런 거에 관심이 없다.
    단 한 번도 세상은 그런 적이 없었다.

    그리고 위의 결론을 다시 한번 읽어보자.
    백번 양보해서 이 모든 나의 고통이 철저하게 세상 탓이라고 해보자.
    그렇다고 해도 저 결론은 절반만 맞는 말이다.

    맞는 말 절반은 ‘세상이 지옥같아서 내 삶이 이리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틀린 말 절반은 ‘이 고통의 원인인 세상이 올바르게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이 틀렸다는 게,
    세상이 더이상 그러지 않도록 바뀌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그렇게 된다면야, 너무 좋지.
    세상이 그렇게 올바르게 된다면, 정말 너무 좋지.
    그래서 우리 각자의 힘겨움과 고통이 해소된다면, 너무 좋지 진짜.

    근데 그게 되냐고.
    우리가 힘겨우니 세상은 속히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해라,
    라고 외치면 세상이 우리 뜻대로 변할까.
    그럴 일은 없다.
    세상은 우리의 뜻대로 움직여주기 위해 존재하는 녀석이 아니다.

    내가 힘겨운 게 지옥같은 세상 때문이라 한들,
    원인을 제공한 세상이 이 힘겨움을 해소해주는
    ‘결자해지’는 결코 벌어지지 않는다.

    해결은 누가해야 할까

    해결은 우리가 해야 한다.
    그게 바로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다.

    아니, 왜?
    내 잘못이 아니잖아?
    내 탓이 아닌데 왜 내가 그걸 해결해야 해?

    이 XX같은 생각을 뜯어고쳐야 한다.
    비난을 하는 게 아니다.
    그냥 우리는 모두 당한거다.
    학교에서 그리 가르치니까.
    그래야 옳은 것이니 우리에겐 책임이 없다고 가르치니까.

    하지만 우리의 삶은 오롯이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고,
    우리에게 잘못이 0.1도 없다한들 내 삶의 중심에 선 주인은 우리다.

    학폭

    이미 오래전부터 불거져왔지만 여전히 쉽게 해결되지 않는 학폭문제는
    요즘도 항상 거론되는 문제다.
    유명해진 연예인이 과거 학폭문제로 나락가는 일은, 이제는 놀랍지도 않은 익숙한 광경이 되었다.

    어떤 사람이 학폭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이 얼마나 개같은 경우인가.
    물리적인 힘에 짓눌려 나의 존엄이 짓밟히는 일은
    그 어떤 시대, 어떤 경우에도 인간에게 돌이킬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긴다.
    여기에 학폭 당하는 사람의 잘못이 뭐 얼마나 있을까.
    십중팔구 학폭가해자의 잘못이다.

    그런데 여기서, 결자해지?
    학교에서 가르치는 이 고상한 사자성어에 따르면,
    이 학폭 문제가 해결되려면 학폭가해자가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태어나 피해자에게 무릎꿇고 싹싹 빌며 사과하고 죄를 뉘우쳐 더이상 폭행을 하지 않아야 한다.

    물론, 그러면 너무 좋지!
    그런데 그 숱한 학폭문제의 결말을 인터넷으로 한 번 찾아봐라.
    그런 일이 벌어지냐고.
    그런 일이 안 일어난다는 걸 나도 알고 당신도 알고 세상 모두가 안다.

    이 때 피해자는 엄청난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피해로 심신이 피폐해진다.
    하지만 피해자가 ‘가해자가 새 사람이 되어 죄를 뉘우치고 저 악행을 멈춰야지.’ 라고만 생각한다면,
    그 피해자의 삶은 그 버러지같은 가해자 때문에 계속 흔들리고 허물어진다.

    분통이 터지더라도, 결국 선량한 피해자 본인이 힘을 내어 자신의 삶을 위해 움직여야 한다.
    신고를 하든, 고소를 하든,
    학교를 옮기거나 무단결석을 해서라도 가해자를 피하든,
    아니면 이악물고 MMA체육관에 가서 그 새끼를 죽여버릴 수 있을 때까지 힘을 기르든,
    무언가 움직임이 있어야만 한다.

    억울할 수 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내가 그 고생을 해야 하나.
    가뜩이나 이미 너무 고통스럽고 상처투성이에 피흘리는 중인데.
    하지만 내 삶을 위해 일어서서 움직여야 한다.
    여지껏 살아온 이 답답하고 공허한 삶, 후회와 불안으로 뒤범벅이 된 삶의 굴레를 끊어내고,
    될 수 있는 최고의 내가 되어 청량한 정신으로 기쁨과 희열이 가득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학창시절에 그런 일이 내게 벌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앞으로도 영영 나의 일은 아닐거라 장담하지 마라.
    장소가 학교가 아니고 벌어지는 일이 폭행이 아닐 뿐,
    힘에 의해 강제로 짓밟히거나 유린당하는 일은
    살다보면 부지불식 간에 인생에 불쑥 찾아오니까.

    그 때 가장 우리에게 중요한 건,
    ‘결자해지’는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 지옥같은 세상에 태어난 자의 운명

    지옥같은 세상에 태어난 자의 운명

    그의 이야기

    ‘해수’는, 열심히 살았다.
    참고 또 참았다.
    좋은 자식이 되고자.
    좋은 학생, 친구, 동료가 되고자.
    결혼도 했다.
    직장도 번듯하게 잡았다.
    돈도 모았다.
    하지만 불행했다.
    부모가 아팠다.
    작년부터는 아이도 아팠다.
    난 시간을 팔기 때문에 곁에 있어줄 수 없다.
    매일 연기를 했다.
    애써 웃고, 아파도 괜찮은 척, 힘들어도 안 힘든 척.
    몇번을 연기를 했을까.
    언젠가부턴 내가 연기를 한다는 느낌이 없어져버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나는,
    좋은 팀원, 좋은 학벌에 좋은 직장을 가진 착한 아들, 최고의 남편이고 아빠였지만.
    나는 언젠가부터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졌다.
    아니, 너무 지쳤다.
    아니, 뭔가… 진절머리가 났다.
    뭐 땜에 그런거지?
    다 가진 난데.

    애써 나를 위안했다.
    ‘아마 좀 요즘 바빠서 그럴꺼야.’
    그러던 차에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아이가 아픈 탓에 자주 자리를 비워서 그런건가, 하고
    혼날 마음의 준비를 하고 부장실로 들어갔다.
    ‘해고’.
    회사 상황의 어려움을 말하며, 그는 내게 사직을 권고했다.
    16년이었다.
    … 문득 퇴직 이후를 준비하느라 정신없던 선배들이 생각났다.

    아이가 눈에 밟혔다.
    아파서 우는 아이의 눈동자로 수척하게 쳐져 있는 내가 보였다.
    엄마는 오늘도 애기는 좀 괜찮냐며 전화를 했다.
    당신도 많이 아프면서.
    아내도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듯 했지만, 힘겨움이 느껴진다.
    괴롭다.
    회사에선 일단 권고사직을 고사하고 당분간이라도 버티기로 했다.
    눈치가 보여서 회사에 나가기가 힘들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가만히 돌아보니 나는…
    하루하루가, 매 시간 매 초가 두렵고 불안하고 힘겹다.
    고통의 연속.

    … 시키는대로 열심히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았는데,
    왜 이렇게 버겁고 힘들까.
    나는 무얼 잘못한 걸까.

    인생이 지옥같은 이유

    … 안다.
    아직 학생인데,
    난 무직인데,
    알바도 구하기 힘든데,
    취업은커녕 학자금도 못 갚고 있는데,
    난 몸도 아픈데.
    나는 ‘해수’보다도 훨씬 더 시궁창인데.

    하지만 다행히 가까스로 병을 고치고,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학자금도 갚고 돈도 모아도,
    다시 말해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목표를 다 이루고 나도,
    그런 것들이 무색하게, ‘해수’처럼 똑같이 저렇게 불행할 가능성이 높다.
    그게 지금 이야기한 ‘해수’의 노력에 대한 결과다.
    아니, 아마 우리 모두가 열심히 노력하고 나면 얻게 될 결과다.

    이룰 거 다 이루고 결국 누구나 원하는 걸 다 얻어냈는데,
    여전히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결말.
    … 언젠가 당신에게 저런 상황이 닥치면,
    당신은 오히려 열심히 살며 참고 견뎠던 세월이 원망스럽고 억울해질지도 모른다.

    왜 그럴까.
    왜 그렇게 되어버리는 걸까.
    그리고, 지금 우리는 왜 이런 걸까.

    원인이 우리에게 있지는 않지만,
    해결은 우리가 해야 한다.
    그게 바로,
    인생의 잔혹함이자 지옥같음이다.

  • 세상이 지옥같은 이유에 관한 십계명

    세상이 지옥같은 이유에 관한 십계명

    십계명

    본의 아니게 태어나고 보니, 요구사항이 너무 많다…. 후..

    태어나서 한동안은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곤 못 살아남는데,
    살기 위해 내가 의존해야만 했던 그들도 내게 요구사항이 많다.
    (만약 당신이 요구사항이 없는 보호자 밑에서 자랐다면,
    그건 다이아 수저도 아니고 그냥 은하계 수저다.)

    친구들, 학교 선생님, 친척들, 사회적 관습, 문화 등등 열 겹 스무 겹으로 겹쳐서 요구사항이 점점 더 많아진다.
    나이 좀 들어서 정신 차려 보면, 진짜 요구하는 게 X나 많다.

    요구사항을 내게 강요하는 인간들이, 하나같이 다 이렇게 말한다.
    ‘널 위해서야.’

    요구사항을 하도 들이대길래 그들은 ‘요구하는 자’, 나는 ‘요구받는 자’ 뭐 이런 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 사람들도 다 ‘요구받는 자’였다 ㅋㅋ
    (즉, 가해자-피해자 구도인가 싶었는데 죄다 피해자 밭이었다는 말이다.)

    정신없이 요구사항 들어주며 살다 보면,
    나중엔 남이 원하는 것만 들어주는 기계인형처럼 돼버려서
    내가 뭘 해야 행복한지조차 모르는 지경에 이른다.

    내 주위 사람에 대한 요구사항도 나에 대한 것일 때가 많아서,
    내가 요구사항을 거절하고 내가 원하는 걸 하려고 하면
    내 주위 사람들도 덩달아 ‘요구사항을 안 들어주는 나쁜 사람’이 되어버린다 ㅋㅋ

    요구사항을 계속 안 들어주면,
    내 세상에 존재하는 압도적인 절대다수가 나를 다구리 놓기 시작한다 ㅋㅋ

    요구사항을 다 들어주며 사는 사람일수록 대개는 사회에서 인정받는 ‘좋은’ 사람인데,
    이 ‘좋은 사람’들한테조차 미움과 원망을 받는다 ㅋㅋ
    (원래 요구사항 다 들어주며 사는 ‘좋은’ 사람일수록
    그렇게 살지 않는 ‘나쁜’ 사람을 보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용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는 시간을 팔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가장 냉혹한 부분은 싹 다 빼놓고 이야기해본 것들이다… ㅋㅋ

    추신

    정리하면, 애당초 인간은 ‘자유’를 상당히 구속당한 채 태어난다.
    자유라는 것은,
    ‘남이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대로’ 존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남이 원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면,
    그건 단지 노예일 뿐이다.
    그런데 내 의지와 전혀 무관하게 태어나고 보니,
    모든 인간들이 우리가 노예이길 바란다.
    그러니 ‘지옥같은 세상’이라고 말할 수밖에.

    물론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그렇게 살다 가지 않도록 렙업을 시작할 것이다.
    앞으로 당신은 원하는 모습으로 삶을 조각해 나갈 테니 걱정할 필요 없다.
    다만, 인간에게 주어진 ‘세상’이라는 게 애초에 좀 거시기하다는 걸 말하는 것뿐이다.
    그러니 당신이 ‘아.. 인생 지옥같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건,
    사실 자연스러운거다.

  • 구체적으로 무얼 줄 수 있는가

    구체적으로 무얼 줄 수 있는가

    이 책이 당신에게 구체적으로 줄 수 있는 건 세 가지다.

    첫째, 살아남아 몸과 마음을 최상의 컨디션으로 유지하는 법.
    둘째,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시간적으로 완전한 자유를 얻는 법.
    셋째, 하루를, 일상을, 최고의 나 자신을 조각하는 일을 실현하는 법.

    첫번째.

    이 책은 레벨1부터 레벨20까지 하나씩 레벨을 올려가는,
    RPG 게임처럼 ‘레벨업’(소위 ‘렙업’)을 하는 책이라고 여기면 편하다.
    (편의상 이 책에서 레벨은 Level의 약자인 Lv로 표시한다.)

    Lv1에서 Lv8까지는 ‘생존’하는 것에 대한 렙업을 하는 구간이다.
    살아남아야 뭐라도 할 거 아닌가.
    물론 여기서 ‘생존’은 단순히 살아남아 생명을 부지하는 걸 넘어서,
    아프거나 질병에 걸리지 않고
    내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육체적, 정신적 컨디션을 만들어
    이 컨디션을 유지한 채 하루하루를 보내는 걸 말한다.

    두번째.

    Lv9에서 Lv16까지는 ‘자유’를 얻는 일에 관한 렙업을 하는 구간이다.
    자유로워지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진정한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발견하지 못한다.
    즉, 나다운 나를 찾지 못하고 삶의 의미와 방향을 발견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타인의 시선과 사회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시간을 팔아 돈을 벌어야 해서 생기는 신체적 구속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지고,
    결국 내 삶의 시간 전부를 우리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시간적으로 자유로워지는 법은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다.

    세번째.

    Lv17에서 Lv20까지는 ‘의미’를 찾는 일에 관해 렙업을 하는 구간이다.
    진정한 나만의 길을 찾아 가장 나다운 나 자신을 발견하는 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스스로 발견한 삶의 목적을 늘 곁에 두고 최선을 다해 몰입하는 법을 알게 될 것이고,
    하루, 일상, 최고의 나, 이렇게 세 가지를 조각하는 법에 대해 이해하게 될 것이다.

    하루, 일상, 최고의 나

    하루는 곧 우리 인생 전체다.
    삶은 프랙탈 구조로 되어 있다.
    하루가 곧 삶이고 삶은 곧 하루다.
    우리는 매일 우리 인생 전체를 살 기회를 얻는 셈이다.

    하루를 완벽하게 조각하고 나면,
    이 하루들이 꾸준히 지속적으로 반복되면서 축적된다.
    이는 진하고 짙은 필압으로 삶을 변화시켜 나간다.
    완벽하게 조각된 하루들은
    조금씩 생존과 자유를 얻게 한다.
    생존과 자유를 얻고 우리가 조각해 나가는 일상은 점점 완전해져 간다.

    생존과 자유를 얻은 상태에서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나만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될 수 있는 최고의 나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
    상상하고 발견해 나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최고의 나를 조각해서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삶에서 공허라는 단어를 박살낼 수 있다.
    죽음, 무의미, 고독, 부자유에서 오는 공허가
    우리의 삶에서 힘을 잃고 사라지게 될 것이다.
    대신 그 자리를 청량감과 긍지, 확신이 가득 채울 것이다.

  • 무엇을 위한 책인가

    무엇을 위한 책인가

    나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이 잔혹한 세상에서 살아남도록 하는 것.
    당신이 될 수 있는 최고의 당신,
    즉, 가장 당신다운 당신이 되게 하는 것.
    그리하여, 당신의 삶에서 공허함을 몰아내는 것.
    그 공허감 대신 청량감으로 당신의 삶이 가득 차게 하는 것.

    공허하지 않으려면,
    내가 될 수 있는 ‘최고의 나’를 조각해서
    내가 원하는 인생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

    ‘최고의 나’는,
    우리가 저 단어를 듣고 1초면 떠올리게 되는,
    학교와 사회에서 떠들어대는 그런 게 아니다.

    최고란,
    남이나 세상이 최고라고 평가해 주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다.
    가장 나다운 것,
    내가 지니고 태어난 잠재력을 남김없이 발휘하는 것.
    진정한 나로서 내가 가진 소질과 예술성을
    모두 펼치는 존재가 되는 것.
    이게 ‘최고’라는 말의 진짜 의미다.

    그래서 ‘최고의 나’는 사람마다 각기 다르고,
    오직 나 자신만이 발견할 수 있다.
    내 삶에서 나만의 의미를 찾고
    내가 될 수 있는 진정한 나 자신을 조각하는 것이
    곧 최고의 나로서 진짜 나다운 인생을 사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이 나다운 것인지 모른다.
    그러니 최고의 내가 과연 어떤 것인지도 상상하지 못한다.
    짐작도 가지 않는다.
    오직 무얼 해야 남들이 우러러봐 줄지 고민해왔을 뿐이니.

    그걸 알려면,
    우선 진정한 우리 모습을 발견하지 못하게 하는
    많은 것들을 걷어내야 한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진정한 의미의 ‘생존’과 ‘자유’를 얻어내야 한다.
    그것들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그것들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고 그것들을 지배하는 순간,
    그때 비로소 우리는 최고의 나 자신이 무엇인지
    태어나 처음으로 조금씩 발견해가기 시작하게 될 것이다.

    하여,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생존’과 ‘자유’를 얻고 자유로워진 상태에서
    비로소 최고의 나 자신을 발견하고 조각해나가는 일을
    이해하고 터득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하루를 완벽하게 조각하고,
    생존과 자유를 얻어 일상을 완벽하게 조각하고
    결국 최고의 나를 조각해내서
    삶이 더 이상 공허하거나 불안하지 않고,
    청량감 넘치고 확신으로 가득하게 되는 경지에 이를 것이다.

    이게, 내가 이 책을 쓴 궁극적인 목적이다.

  • 누구를 위한 책인가

    누구를 위한 책인가

    당신에 대한 가설

    당신은 왜 이 책을 집어들었을까.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은 도대체 무얼까 정체가.
    그저 우연일 수도, 혹은 필연일 수도 있겠다.
    어지간해서는
    주위 동료들, 친구들, 가족들이 사는 방식과 똑같이,
    그렇게 하루하루 웃어넘기며 살고 있을 텐데.
    극단적인 상황에 몰려있을 수도,
    너무 ‘시궁창’일 수도,
    혹은 어떤 큰 계기가 당신의 머리를 야구배트로 후려친 것처럼
    당신의 세상을 찌그러뜨렸을 수도 있겠다.
    아니면 주위 사람들과 서로서로 “그래, 다 이렇게 사는데 뭐” 하며
    가까스로 외면하고 위안하며 버티다가
    이제는 이 지리멸렬하고 미래에 기대할 게 없는 쳇바퀴 같은 날들이 너무 지겨워져서
    입에서 단내가 날 지경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당신에게 제시하는 조건

    어떤 계기이든, 어떤 상황이든, 나는 당신을 환영한다.
    나는 당신과 함께 ‘우리’이고 싶고 당신을 돕고 싶다.
    우연이었다 한들, 우주가 생겨난 것도 빅뱅이라는 ‘우연’에 불과했음을 생각해 보면
    나는 여전히 이렇게 종이 쪼가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당신과 만난 게 가슴이 뛴다.

    하지만 이런 내게도 조건은 있다.
    나라고 무조건 내 책을 펼친 모든 사람들을 전부 환영하는 건 아니다.
    그건 내가 사람을 가리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번지수를 잘못 찾아와 서로 오해한 채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면
    당신도 실망, 나도 실망이기 때문이다.

    조건은 세 가지다.
    이 책은 내가 내거는 세 가지 조건을 동시에 만족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첫째, 매춘(봄날을 팔다.)

    팔 매(賣), 봄 춘(春).
    나의 봄을 파는 사람이어야 한다. (몸이 아니다. 봄이다.)
    즉, 생계를 위해 시간을 팔아야 ‘만’ 하는 상황일 것.
    혹은 지금 그러고 있지 않더라도,
    머지않아 나의 여생 중 가장 젊은 날을,
    나의 남은 인생 중 가장 풋풋한 봄날을 팔아야만 하는 상황이 될 것.
    (사랑하는 이가 당신 몫까지 짊어지고 봄을 팔고 있다면,
    이 책을 당신이 읽기 전에 그에게 먼저 건네주길 바란다.)

    둘째, 질식(숨통이 막히다.)

    내 생의 봄날을 팔고 있지만,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최고의 내 모습이 드러나지도,
    타고난 나의 예술성과 잠재력이 전혀 발휘되지도 못하고 있을 것.
    즉, 그냥 억지로 일하고 소리 없이 숨죽인 채 눈치 보며 살고 있을 것.
    최대한 눈에 안 띄게 지내는 게 지상목표인 것처럼 인생을 흘려보내고 있을 것.

    셋째, 한계(참을 수 있는 최대한의 한도에 다다르다.)

    매춘을 하며 질식해 가는 이 상황이 진절머리가 날 것.
    이대로 죽을 때까지 수십 년 더 버티는 걸 떠올리기만 해도
    끔찍해서 몸서리가 쳐질 것.
    당신의 소중한 사람이
    이런 상황에 빠져 살다 가지 않게
    그를 지켜내고 싶을 것.
    도저히 이대로만 살다가 죽는 건 용납이 안 돼서,
    어떻게든 다른 인생을 살아보고 싶을 것.

    아니, 너무 까다로운 거 아니냐, 저걸 세 가지 다 꼭 만족해야만 이 책을 볼 수 있다는 거냐,
    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내 대답은,
    그렇다.

    이 책은 저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사람들만을 위한 책이다.
    그러니 만약 세 가지 조건 중 두 가지만 충족한다거나 한다면,
    이 책은 과감히 집어던져라.
    이 책은 아직 당신을 위한 책이 아니니.

  • 무례한 환영인사

    무례한 환영인사

    나는 당신의 미래를 맞출 수 있다.
    점술가냐고?
    아니다.
    하지만 짧게는 3개월, 길게는 해를 두어 번 넘겨가며
    누군가의 심리상담을 한 경험들이 있기 때문에
    잘 안다.
    누군가의 짧은 과거 한 자락을 함께 꺼내 살펴보는 일조차,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
    섬세한 공감과 신뢰, 용기가 필요한지.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럼에도 나는 당신의 미래를 맞출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이미 일어나버린 과거도 아니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당신의 미래를 말이다.

    그럼 당신은 이쯤에서 슬슬 궁금해할 법도 하다.
    이 새끼는 뭔데 이런 말을 할까.
    뭘 말하고 싶은 걸까.

    예언

    어찌저찌 학교를 마치고 돈을 벌고 여행도 다니던 당신은,
    아마 언젠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게 되는 날을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 당신은,
    비로소 당신이 어떤 처지인지 알게 되기 시작할 것이다.
    쇠고랑만 없을 뿐,
    교도소 수감자처럼 목줄이 채워져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당신은 당신이 사랑하는 그 사람이
    공포와 싸우고 병마와 맞서며 눈물을 흘리는 동안,
    직장에서 애써 웃고 고개 숙인 채 업무 보고를 해가며
    아무렇지 않은 듯 일하고 있는 자신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서야,
    생각지 않고 살아왔던 것들에 대해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당신이 자유롭지도 않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줄 힘도 없으며,
    삶이라는 게 유한하다는 걸 느끼며
    산다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공허함을 느낄 것이다.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 이야기는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다.

    한 가지 더.

    그리고 한 가지 더 당신(그리고 우리 모두)의 미래에 대해 말해보자면,
    어지간해선 절대 그 미래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아무리 극심한 고통으로 찾아와
    그 고통과 좌절이 우리의 눈앞을 새카맣게 만들어도,
    어지간해서는 결코 그 미래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변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니까.
    그저 우리는 고통 앞에서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라고 늘 배워왔으니까.
    우리는 그게 익숙하다.

    이 책은,
    그때 우리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만약 답답함이 분노가 되고 변화에 대한 의지가 되어
    도저히 이대로 계속 살아가는 건 못 참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면,
    뭐라도 해서 어떻게든 이 잔혹하리만치 갑갑한 인생을 바꿔버리고 싶은 마음이라면,

    환영한다.

    우리는 아무래도 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