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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인을 설득해야 하는 최초의 이유

    타인을 설득해야 하는 최초의 이유

    타인이 존재하는 영역

    우리가 렙업을 해나가면서,
    아니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명확하게 이해해야 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통제영역’이다.

    통제영역이란,
    우리가 우리의 의지대로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말한다.
    우리는
    통제영역 안에 있는,
    즉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마음을 쏟아야 한다.
    물론 구체적인 통제영역이 어디까지인지
    칼같이 경계선을 긋는 건 어려우나,
    통제영역 안에서 무언가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삶을 살아야 하는 건 사실이다.

    자, 이제 타인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 세상에는
    나와 타인이 존재한다.
    타인은
    어디에 존재할까.
    통제영역 밖에 존재한다.

    관계에 대해서는
    Lv13에서부터 자세히 알아가게 되겠지만,
    모든 형태의 관계에서
    고통과 불행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이유는
    타인이 내 통제영역 밖에 존재한다는 걸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심해야 한다.
    우리자신을 제외한
    세상의 모든 사람은,
    철저히
    우리의 통제영역 밖에 존재한다.

    경계를 넘어야 하는 최초의 이유

    왜 이런 이야길 하느냐.
    돈을 버는 일은,
    타인에게서 돈을 건네받는 일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모든 인간은 돈을 벌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돈을 벌어야,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을 지킬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는 경계선을 넘어,
    통제영역 밖에 서있는 타인을
    설득해야 한다.
    그가 내게
    돈을 건네줄 수 있도록.

    돈을 버는 일은,
    인간이 태어나
    최초로 타인을 설득해
    내가 원하는대로 움직이게 만들려는
    시도다.
    사실 우리가 Lv1부터 Lv8까지 렙업을 하며
    살아남기 위해 배웠던 모든 것들은,
    타인을 우리가 원하는대로 움직이도록
    설득할 필요는 없다.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운동을 하는 일들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우리자신과 약속하기만 하면
    지킬 수 있는 일들이다.

    하지만
    돈을 버는 일은 다르다.
    우리가 우리의 생계를 스스로 책임지고
    소중한 이들을 지키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서는,
    반드시 타인이 우리에게
    돈을 지불하는 결정을 내리도록
    그를 설득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맞닥뜨려야 하는
    첫번째 과제다.
    타인을 설득해야 하는 과제.

    타인을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하는 일의 어려움

    타인이 내가 원하는 행동을 하게끔 하거나,
    타인이 원하는대로 내가 움직여주는 건,
    그리 썩 쉽게 되는 일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서는
    인간이 태어나
    한살에서 세살 사이에
    대소변을 가리는 시기를
    ‘항문기’라고 칭한다.
    대소변을 가리는 경험은
    한 인간에게 꽤 충격적인 경험이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 살아가기 위해,
    가장 처음으로
    내 본능에 반해
    타인이 원하는대로 움직이게끔
    강요받는(실질적으로 강제되는) 경험.

    이 시기에
    어떤 식으로 부모의 의지가
    내게 관철되느냐에 따라,
    인간은
    고집이 세거나
    복종적이거나
    지나치게 청결하거나 하는 등
    얼마나 강박적 성격을 가지는지가
    결정된다.

    한 인간의 성격을 결정지을만큼,
    타인에 의해
    내가 나의 욕구를 억누르고
    그의 요구대로 움직이게끔 강제되는 경험은
    인간에게 힘들고 고된 경험인 것이다.

    설득의 근원

    결국 우리가
    우리자신과 소중한 사람이 생존할 수 있도록
    지키기 위해서는
    타인을 설득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그런데
    애초에 자산이 너무 많아서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특수한 극소수를 제외하면,
    인간은
    자신의 시간과 자유를 팔아
    그 대가로 돈을 얻는다.

    이말인즉슨,
    우리가 설득해야 하는 상대방도
    자신의 귀한 시간과 자유를 팔아
    돈을 벌었다는 뜻이 된다.

    우리는
    그 귀한 시간과 자유를 판 대가로 받은 그 돈을
    다시 우리에게 지불하도록
    상대를 설득해야 하는거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타인이 그렇게 어렵사리 얻은 돈을
    나에게 건네주도록 설득할 것인가.

    설득의 원리는
    명확하다.
    상대가 내게 돈을 지불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 금액보다 더 가치있는 것을
    그에게 제공해야 한다.

    가치있는 것이라 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에게 ‘가치’란,
    ‘인간의 내면 깊숙이 있는 욕망을 충족시키거나
    두려움을 해소시켜주는 것.’
    이다.

    그리고 이 가치보다는
    더 적은 돈을 내고
    그 가치를 주는 무언가를 사고자 하는 게
    인간의 심리다.
    결국
    돈을 벌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우리가 받고자 하는 돈보다
    더 값어치있는 가치를
    상대에게 제공하는 일이다.

    이게 바로
    인간이 타인을 설득해야 하는 최초의 관문인
    ‘돈 버는 일’의 근본적인 의미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이 ‘최초의 설득과제’를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우리는 죽고 말 것이니.

  • 돈은 불행을 관장한다

    돈은 불행을 관장한다

    돈을 잘 벌고 있다면, 소중한 이를 지킬 수 있는가

    … 사실은,
    인간은
    시간을 팔아넘긴 대가로 돈을 벌기 때문에,
    돈을 퍽 잘 벌고 있더라도
    소중한 사람을 지켜주는 건
    쉽지 않다.

    만약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가족이
    어느날 갑자기 큰 병에 걸려
    위독하게 되었다고
    한 번 상상해보라.
    당신은
    갑자기 큰 병에 걸린
    당신의 부모님을 위해
    출근하지 않고
    마음가는대로 부모님 곁에서
    위독한 부모님과 함께해드릴 수 있는가.
    당신 자신이 아파도
    매한가지다.
    당신의 건강과 삶을 위해,
    얼마나 자유롭게
    당신에게 전념할 수 있을까.

    불행을 관장하는 가장 큰 문지기

    인간은 늘
    시련이 닥치지 않고서는,
    진짜 자신의 삶에 대해 돌아보지 못한다.
    하긴,
    어떤 또라이가 출근하면서
    자신의 정강이가 부러지지 않고 잘 붙어있는 것에 대해
    기뻐할 수 있을까.
    정강이가 부러져서
    6개월을 목발을 짚고 다녀봐야,
    비로소 우리는
    아무 가치도 없어보이던 것들에 대해
    감사하기 시작한다.

    돈은,
    그저 밥 먹고
    옷 사고
    여행 다니고
    술한잔하게 해주면
    충분한 듯 보이지만,
    정말 중요한 것을 위해
    우리가 시간을 할애해야 할 때
    그 진짜 모습을 드러낸다.

    돈은
    불행을 관장하는 가장 큰 문지기다.
    행복과 돈의 상관관계가
    일정 월급수준 이상이 되면 사라진다는
    한 연구결과가
    한 때 한창 유행처럼
    회자되던 적이 있었다.
    행복과 돈은
    결국 상관관계가 없다는 취지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들은
    방향을 잘못 잡았다.
    돈은
    행복을 관장하는 게 아니라,
    불행을 관장하는 존재다.
    돈이 있다고 행복하진 않지만,
    돈이 없으면 불행해진다.
    정말 필요한 것에 돈을 써야하는 상황이 닥쳤을 때,
    그 필요한 걸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설령 돈을 벌어 필요한 것에 쓴다 하더라도,
    시간을 팔아 돈을 버는 탓에
    중요한 순간에
    나의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돈이 가지는 의미

    그러니 여기서 당신은
    반드시 돈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명확하게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돈은
    우리자신과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의
    생존을 지키는 중요한 것이다.
    소중한 누군가가 돈이 없다면
    그를 살리기 위해
    우리는 그의 몫까지 돈을 벌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돈을 벌지 못해
    우리자신이나 소중한 사람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그로 인해 우리는
    엄청나게 지독한 불행에 휩싸이게 될
    공산이 크다.
    하지만 돈을 벌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신체적 자유와 시간을 팔아
    돈을 벌기 때문에
    여전히 우리는 불행할 가능성이 높다.
    이 오묘한 진실,
    돈에 관한 삶의 민낯에 대해
    우리는 충분히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단 확실한 것 한가지.
    돈은,
    불행을 관장한다.

  • 살아남으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살아남으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돈이 없으면, 죽는다

    우리가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씻고,
    똥도 싸고,
    안전한 곳에 몸도 뉘이고,
    아프면 병원도 가야 한다.

    그런데 이 모든 건,
    돈이 없으면 누릴 수 없는 것들이다.
    그건
    자본주의 경제를 받아들인 국가에서 태어난 이상,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아니,
    사실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돈은
    아주 오랫동안 인류가 서로 합의해 지켜온
    일종의 ‘약속’이다.
    돈은
    우리가 살아남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과
    일정비율로 교환이 가능하도록
    고안된 존재다.
    그래서 경제학에서는
    화폐를 Liquidity,
    즉 유동성(流動性)이라고 부른다.
    상황에 따라 어떤 것으로도
    유동적으로 변환될 수 있는
    성질을 가진 것.
    언제든지
    어디서나
    밥으로,
    치료약으로,
    집으로,
    옷으로,
    무엇으로든
    변할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돈’의 본질이다.

    돈이 없어도 죽지 않는 법

    이렇게 보면
    돈은 생존에 필수적인 존재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데 돈이 없어도
    죽지 않는 방법이 하나 있다.
    남이 내가 생존하는 데 필요한 돈까지
    대신 지불해주면 된다.
    예를 들면,
    국가가 복지의 일환으로
    내가 먹고 살 돈을 대신 내주면 된다.
    아니면 마음씨 좋은 자선사업가가
    우리를 도와줘도 좋다.
    문제는,
    그의 손에
    당신의 생사여탈권이 주어진다는 것과
    인간이든 국가든
    의외로 변덕스럽다는 것 정도가 되겠지만.

    변덕이 심하지 않고,
    내 목숨줄을 쥐고 있음에도
    나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지도 않고
    나쁜 생각을 하지도 않는 사람이 있다면 좋을텐데.
    그런 사람 어디 없을까.
    그 사람이
    나 대신 돈을 내서
    내가 생존하게 해준다면,
    정말 좋을텐데.

    있다, 그런 사람.
    바로 당신의 부모.
    보호자, 양육자로 불리는 존재들.
    당신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든,
    아기였던 당신은
    절대 혼자 살아남을 수 없었다.
    분명 삶의 어느 구간에서는
    ‘보호자’라 불리는
    부모의 역할을 하는 존재가 있었을 것이다.

    우리를 사랑하는 관계,
    즉, 대개는 부모나 그에 준하는 ‘소중한 사람’은
    우리가 돈이 없어도
    우리 대신 돈을 지불해서
    우리가 살 수 있게 해준다.
    그들은
    변덕을 부릴 가능성도 적다.
    하지만 이런 방식 또한,
    결국에는 살아남으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벗어나진 않는다.

    보호, 그리고 착취

    당신이 돈이 없고 돈을 벌 수도 없다면,
    당신의 소중한 누군가가
    당신의 몫까지 돈을 벌어야 한다.
    반대로,
    당신의 소중한 누군가,
    즉 당신의 연로한 부모나 어린 아이가 돈을 벌 수 없다면
    당신이 그들의 몫까지 돈을 벌어야 한다.
    그들이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도록.

    이는
    돈을 벌지 못하는 쪽이
    상대 몫까지 대신 돈버는 쪽을
    착취하는 것임과 동시에,
    상대몫까지 돈을 버는 쪽이
    돈을 못버는 쪽을
    보호하는 일이 된다.

    이것이 보호인지, 착취인지에 대한 고민은
    여기서 하진 않겠다.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한다면,
    돕는 쪽에게는
    사랑하는 이를 지키는 일이 되겠으나,
    도움을 받는 쪽에겐
    사랑하는 이를 착취하는 일이 된다는 건
    틀림없어 보인다.

    당신의 연로한 어머니가
    다리를 다쳐 못걷는 당신을 업고
    강을 건너야 한다면,
    그녀는 자식을 지키는 마음으로
    당신을 업고 걷겠지만
    당신의 마음 속에서는
    하염없이 비가 내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다리가 붓기 시작할 수 있다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고.

    내가 돈을 못 벌면 벌어지는 일

    결국, 내가 돈을 벌지 못하거나 돈이 없으면
    대개는 나를 사랑하는 소중한 사람이
    내 몫까지 돈을 벌게 된다.
    이는
    돈이 인간을 생존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만약 우리가 사랑하는 소중한 사람이
    돈을 벌지 못하는데
    우리가 그들의 몫까지 돈을 대신 낼 수 없다면,
    그들을 지키지 못하게 될 것이다.

  • Lv9. 목숨을 지켜낸 기사

    Lv9. 목숨을 지켜낸 기사

    우리는 이제
    한 인간으로서 죽지않고 살아남는 법을 익히는
    모든 레벨을 마쳤다.
    즉, 생존하는 법을 충분히 터득했다.
    인간으로 태어나
    아프거나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
    그리고 몸과 마음을
    최상의 컨디션까지 끌어올려 유지하는 것,
    그 엄청난 것들에 대해 우리는
    필요한 모든 것들을 이해한 셈이다.

    하지만 인간은
    세상이라는 잔혹한 세계 안에서 살아간다.
    이 세계는
    자본주의라는 구태의연한 개념이 활용되기 전부터,
    늘 ‘돈’을 중심으로 존재해왔다.

    돈은
    인간이 세계 안에서 생존할 수 있을지를 결정하고,
    그렇기에 인간에게 행복을 주진 못해도
    불행을 줄 수는 있다.

    우리는 이번 레벨에서,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과정에서
    돈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 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

    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

    영화 ‘아일랜드’를 보면, 인류는 환경오염으로 지금 우리처럼 지구에서 흙을 밟고 살지 못한다.
    인류가 과학기술로 외부환경과 격리시킨 인공공간 안에서 모든 신체컨디션과 성장, 질병 등을 완벽하게 모니터링하고 체크하는 최첨단 기술환경 하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마지막 남은 오염되지 않은 천상의 섬 ‘아일랜드’가 존재한다.
    인공공간이 아닌 옛 선조들처럼 자연에 존재하는 청정구역인 그 곳에 가서 살기를 누구나 소망한다.
    복권당첨을 해서 당첨이 되면, 그 사람은 그 천상의 섬, 자연에 남은 마지막 유토피아라고도 할 수 있는 아일랜드에 가서 살 수 있게 된다.

    여기서부터는 스포다.(읽기 싫으면 이문단 패스.)
    사실 이들에게 알려준 세계관은 가짜다.
    사람들은 자신과 완벽하게 똑같은 복제인간을 배양해 기를만큼 기술이 발전했고, 자신의 복제인간을 가짜 세계관 하에 그 인공공간에서 살게 하며 관리한다.
    그러다가 자신이 사고가 나거나 질병에 걸려서 장기를 대체해야 하거나 노화 등으로 필요해지면 그 복제인간을 복권당첨시켜서 가져다 부품재료로 쓰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어머 미래에는 저런 잔혹한 세상이 올까?’ 라고 생각한다면 약간의 오해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애당초 과거에도 지금도 세상은 똑같았다.
    저 영화와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의 유일한 차이는, 기술이 아직 그만큼 발전하지 못했다는 것뿐이다.
    사회와 문화의 핵이라 할 수 있는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미래에나 똑같았고 똑같을 것이다.

    내가 ‘X같은 세상’이라고 (집필 중인) 책제목에 상스러운 단어를 넣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은 잘 모른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몇살이고 어떤 상황에 처해있고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삶의 결정적 순간이나 큰 변화가 찾아오는 어떤 상황에서 진실은 드러난다.

    내가 나의 진실을 처음 목도한 건 30대가 되고나서였다.
    그 전의 나는 다행히도 운이 좋았고 진실을 경험할 일이 없었다.
    없었다기보다는,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아둔했다고 보는 게 맞겠다.
    직장생활을 하던 나는, 아빠가 쓰러지신 다음날 회사에 있는 팀장에게 아마 관둘거 같다고 사직을 예고했다.
    아빠랑 같은 나이였던 팀장은, 내게 아빠 입장에서 잘 생각해보라고 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회사에 계속 남았고, 아빠가 투병으로 접어드는 그 힘겨운 순간에 그의 곁에 있지 못했다.
    일하는 주중에는 근무지역에 있고, 주말마다 고향에 내려갔다.
    매주말을 내려가길 몇달이 지나자 아빠는 버럭 화를 냈다.
    내 생활이 그렇게 자신을 병문안 오고 안타까워하는 걸로 가득 채워지는 게 미안하고 슬펐던 모양이다.

    자, 여기서 문제는 무엇일까.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일까.
    내가 계속 생계를 유지하는 한, 신체적 자유가 없다는 데 있다.
    내가 내 몸뚱아리를 쓰러져버린 아빠 곁에 두고 있을 자유가 없다는 데 있다.
    그 자유를 다시 얻으려면, 나는 내 생계를 포기해야 하고 결국 내 생계는 내 스스로 유지하지 못한 채 누군가에게 그 책임을 지워야만 한다.

    애초부터 인간이 자신의 몸뚱아리를 자신이 원하는대로 자유롭게 둘 수 있는 ‘신체적 자유’는 아주 극소수에게만 주어져온 특권이다.
    그리고 그 불편하지만 다같이 외면해온 그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삶의 국면들이 존재한다.
    이 글을 읽고 나서, 내 부모나 아이가 아픈 그 누구에게라도 가서 물어봐라.
    그들은 병원비를 내고 내 생계와 투병중인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미어지는 마음을 안고 일터로 나간다.

    요양병원에서 일어나는 간병인들의 경악을 금치못할 비인간적인 행동들이 가끔 뉴스에 나온다.
    어린이집 보육원에서 애들이 시끄러우니 낮잠시간에 재우려고 수면제를 야쿠르트에 타고 CCTV가 있는데도 애를 때리고 상처내는 일은 모두가 언론보도를 통해 목격한 현실이다.
    이 상황이 닥쳤을 때, 그 부모의 자식이나 그 아이들의 부모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시간을 팔아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는 99.99%의 사람들은 전부 저 상황에서 신체적 자유가 없다는 걸 절감할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며 외롭게 시간을 보내도, 마음처럼 곁에 있어주지 못한다.
    신체적 자유가 제한당한 채 살아가니까.

    사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즉, 가족이 아픈 상황이 아니라 당장 우리가 아파도 직장에서 내 건강을 위해 눈치 안 보고 수술을 받고 치료를 받기도 어렵다.
    수술비도 감당이 쉽지 않거니와, 시간을 직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치료를 위해 쓰는 걸 직장은 좋아하지 않는다.
    (흥미로운 건, 같은 처지인 직장동료들도 눈치를 준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선 다음에 써보자.)

    이게 영화와 그리 다른 상황일까 과연.
    영화 ‘아일랜드’가 그렇게나 미래에 대한 상상이고 그저 흥미로운 상상일까.

    다시 말하지만, 영화 속 상황과 지금 우리 상황의 유일한 차이는 기술진보수준 밖에 없다.
    ‘개연성이 높은’ 작품이라는 이야기다.

    23년 12월, 미국에서는 리프제니아라는 약이 승인되었다.
    이 약제는 유전자치료제인데, 약값이 약 40억 정도다.
    40만원도 아니고 40억이다.
    앞으로 수많은 유전자치료제들이 점점 유전자 기술이 발전하면서 많아질 것이다.
    혈우병치료제도인 햄제닉스도 40억을 넘는 고가에 판매되고, 어린이척수근위축증 치료제 또한 20억이 넘는다.

    가족이 그런 병에 걸려도 지금 동시대를 사는 압도적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약으로 치료를 할 수가 없다.

    다라프림 사태에 대해 들어본 적 있을지 모르겠다.
    2015년 튜링제약 대표 마틴 슈크렐리는 에이즈 치료제인 다라프림의 가격을 5500% 인상시켰다.
    에이즈 환자들은 그 약값으로만 연간 3억을 써야 하는 수준이었다.
    그는 실제로 이 일로 청문회까지 불려나갔지만, 싫으면 안 사면 되지 않냐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아직도 영화 ‘아일랜드’는 허구 속 이야기이고 지금 우리의 현실과는 괴리가 있는 이야기일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영화 속 상황과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의 유일한 차이는 기술수준 밖에 없다.

    인류가 지금 모습으로 진화하기 전 지구도 여전히 약육강식의 세계였고 인류가 지구의 최상위 지배자가 된 지금도 그 원리는 여전하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표면적인 현상과 상황들에 가려진 그 안의 진짜 모습을 잘 이해하고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세상이 X같다고 하니, 어쩌면 혹자는 이걸 세상을 비판하고 사회를 비난하고 상황탓으로 돌리는 데 요긴한 방패막이로 쓰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아, 역시 세상이 잘못됐네. 라고 불평불만을 쏟고 싶어질지 모르겠다.
    뭐, 불평불만을 뱉는 건 자유다.
    하지만 언제나 말하듯이, 우리의 통제영역 바깥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자꾸 탓하고 바꾸려고 하는 일은 ‘삽질’이 될 공산이 매우 크다.

    슬프고 잔혹한 일이지만, 윤리와 도덕을 자꾸 들이대고 당위를 잣대로 세상을 비난하는 일은 결국 우리의 삶을 갉아먹는 일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 우리 각자가 처한 상황이 이런 상태인 원인이 우리가 아니라 우리 바깥에 있다고 할지언정, 그걸 해결해나가는 방안이 우리 바깥에서 올 수는 없다.
    우리 바깥에 있는 거의 모든 존재들은 우리의 통제영역 밖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이 올바르고 그른지를 함께 논의하고 싶지 않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삶을 현명하게, 완벽하게 조각해나갈지에 대한 일이다.
    그 일은, 명백히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 내에서 찾아야 하는 일이다.
    그러니 세상 탓을 하지 마라.
    그 분노와 슬픔을 잘 정제해서, 최고의 우리 자신을 조각해나가는 데 활용할 연료로 쓰는 기개와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오늘 하루도 완벽하게 조각할 수 있기를.

  • 우리는 무얼 주고 돈을 버는가

    우리는 무얼 주고 돈을 버는가

    살기 위해서,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돈을 벌어야 한다.
    아마 나와 당신도 그 절대다수에 속할거고.

    돈을 벌기 위해 우리는 계약을 한다.
    모든 건 기브&테이크라고 했던가.
    테이크는 ‘돈’인데, 그렇다면 기브는 무엇일까.
    무얼 내어주고 그 대가로 돈을 버는가.

    거의 모든 것들은 사실 돈을 버는 대가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돈은 세상에 있는 거의 모든 것들과 교환이 되는 녀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제학에서는 화폐를 Liquidity라고 부른다.)
    청소를 해주거나 상대가 갖고싶은 물건을 건네면 돈을 벌 수 있다.
    원하는 음식을 만들어줘도 되고, 좋아하는 게임을 줘도 된다.
    심지어 인신매매나 매춘같은 불법행위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 또한
    그러한 것들로도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절대다수인 우리는 무얼 대가로 돈을 벌까.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자유를 판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신체적 자유를 판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면, 특정 시간동안의 신체적 자유를 판다.
    가령, 일반적인 직장인은 이렇게.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는 일단 사무실에 나가거나 현장에 나가
    당신이 시키는 일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제게 월급을 주시죠.”

    아침9시부터 저녁6시까지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곳이 아닌 사장님이 원하는 곳에 앉아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닌 사장님이 원하는 것을 한다.
    이것을 ‘시간을 판다’고 말한다.
    그 시간동안은 우리가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자유를 대가로 내어주고 돈을 버는 거니까.

    뭘 그리 거창하게까지 가냐,
    중간에 잡담도 하고 인터넷도 보고 담배도 피고
    커피도 마시는데 뭘. 사람 사는 게 그런거지.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명백히 자유를 대가로 치른 게 맞다.
    당신은 갑자기 큰 병에 걸린 당신의 부모님을 위해
    출근하지 않고 마음가는대로 부모님 곁에서
    위독한 부모님과 함께해드릴 수 있는가.
    당신이 아파도 매한가지다.

    이것도 거창하다면, 좀 더 사소하게 가보자.
    당신은 자고싶을 때 잘 수 있나.
    일하다가 너무 졸리면 편안하게 어디 소파에 가서
    몸이 원하는 꿀잠을 잘 수 있나.
    잠조차도 마음대로 못자지 않나.
    정 너무 몸이 힘들어하면 화장실에 조용히 가서 자야되지 않나.
    9시부터 내 시간은 사장님꺼라서,
    아침에 알람을 듣고도 5분만 더 자고 싶은데
    안간힘을 써가며 내 건강이 갉아먹히는 건 뒤로 하고
    다급히 눈을 떠서 출근할 채비를 하지 않나.
    맹수에게 쫓기지 않는 한,
    이 지구 상에 어떤 동물이 매일 이렇게 잠조차 마음대로
    못자면서 살아갈까.
    안타깝게도 우리는 자유를 대가로 치르는 게 맞다.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사실 거창한 일이다.

    물론, 여러 가지를 제공하지.
    그냥 신체적 자유만, 달리 말해 시간만 내어준다고
    누가 쉽게 돈을 주지는 않는다.
    결국 상대방에게 가치가 있는 무언가를 주어야만 하고,
    그를 위해 시간이 제약당하는 건 기본전제일 뿐이다.
    상대방이 원하는 어떤 과업을 수행해서 제공해야지.

    하지만 우리의 시간을 일단 내줘야 한다.
    그리고 이 신체적 자유를 파는 일이
    실은 우리 삶이 버겁고 힘든 근본적인 이유가 된다.

    명심하라.
    우리는, 시간을 대가로 돈을 번다.
    우리의 24시간 중 사실 우리 꺼는 극히 일부다.
    나머지는 타인꺼다.
    우리 대부분의 경우, 사장님꺼다.

    우리가 진짜 우리의 삶을 발견하고 살기 위해서는,
    그 전에 어느 정도 자유를 되찾아야 한다.
    (‘되’찾는 게 맞는지에 대해서는 언젠가 또
    이야기해볼 기회가 있겠지.)

    두 발은 땅을 딛고 두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라
    고 마키아벨리가 그랬던가.
    딛을 곳이 넓고 단단해야,
    우리는 비로소 안정된 자세로 하늘을 마음껏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삶의 의미를 찾기 전에,
    생존과 자유를 좀 성취해두어야 한다.

  • 돈을 벌기 위해 필요한 준비물

    돈을 벌기 위해 필요한 준비물

    • 돈 벌 시간
    • 돈 벌 공간
    • 돈 벌 체력
    • 돈 벌 능력
    • 계약

    그리고,
    누군가에게 제공할 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