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고독하다
인간은, 누구나 외롭다.
인간은, 누구나 고독하다.
인간이 지닌 실존적인 문제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죽음,
고독,
부자유,
무의미.
(이 네 가지는
실존주의 심리치료에서 말하는
인간의 4대 실존과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태어나,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죽는다.
그리고 그 사이 잠시 존재하는
80년 남짓의 시간 동안,
우리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지닌 채
살아가게 된다.
그 중에서도
외로움, 즉 고독은
가장 근원적인 문제가 된다.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니는 한계
인간이 고독하다는 건,
사실 그 누구도
나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
의미한다.
인간은 절대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건 신체적인 측면에서든,
정신적인 측면에서든,
모든 측면에서 그렇다.
영화 아바타처럼
모든 신체감각과 생각과 정서를 연결시켜
공유하는 마법이 일어나지 않는 한,
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일지라도,
그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관계로의 도피
하지만 인간은
외로움이 가져다주는 끔찍한 고통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어떻게든
나를 이해하고
내 마음을 공감해줄 수 있고
나와 뜻이 같은 사람을
찾아헤맨다.
수많은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
그건 부모자식 간의 관계일수도 있고,
피를 나눈 형제자매의 관계일수도 있다.
사랑하는 배우자, 연인과의 관계일수도 있고,
뜻을 함께 하기로 한 의형제나
친우와의 관계일수도 있다.
그 외에도
동료, 선후배, 동창, 지인 등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인간은 어떻게든
애초부터 주어진 형벌이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느껴지는
‘고독’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친다.
나를 가장 먼저 생각해주고,
나를 진심으로 아끼고 위해주고,
나의 아픔에 나만큼 고통스러워해주는
누군가와의 관계를 찾아
끝도없이 헤맨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런 소중한 관계를 통해
우리의 본질적 문제인 ‘고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결코 벗어날 수 없다.
하늘 아래 그 누구도
나의 심정과 외로움, 나의 이 고통을
헤아려주지 못하는 것 같아
느끼게 되는 극도의 고독함.
이 외로움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그런 어떤 사람과의 관계.
무슨 말인지 너무 잘 알겠으나,
그런 건 없다.
칸트는
‘비사교적 사교성(ungesellige Geselligkeit)’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이 개념은,
인간이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자연스럽게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지만,
그 관계의 근본적인 목적은
상대와의 진정한 연결이 아니라
자기자신의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임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그게 뭐 어쨌냐고?
지금껏 이 글에서 한참을 내가 써내려간 게,
바로 저 이야기다.
인간은
고독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개인적인 목적 추구의 수단으로,
타인과의 진정한 관계를 찾아나서는 존재라는 걸
말하는거다.
만약 개개인 모두가 그런 마음이라면,
인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그저 자신의 고독을 해소시켜주기 위한 수단으로서
향유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런 마음으로
관계를 아무리 찾아헤매봤자,
그런 목적으로 맺는 관계가 과연
진짜 인간의 고독을 해소해줄 수 있겠는가.
당신이라면,
당신의 사랑하는 배우자가, 절친이, 가족이,
당신이 좋고 당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실은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당신과 관계를 맺는거라는 걸 알면
어떤 마음이 들 거 같은가.
인간이 극도의 고독함을 달래기 위해
타인과 어울려 지내려고 하고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싶어하는 한,
애초에 그 관계가 인간의 고독을 해소해주는 건
불가능하다는 말을 하는거다.
이 역설에 대해
우리는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