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상은 진화적으로 중요했다
‘위상’이란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떤 사회 내에서,
자신이 자리한 지위, 위치를 말한다.
얼마나 우월하고
영향력이 있는 위치에 있는지,
다른 이들의 위협이나 배신으로부터
얼마나 안전한지,
무리 내에서 얼마나 힘이 있는지
같은 것 말이다.
이게 인간에게 중요한 이유는
인간이 소외되고 버려져서
혼자가 되는 걸 두려워하는 이유와 같다.
인류가 지구에 존재했던 대부분의 기간 동안,
인간은
부족사회나 무리집단 내에서
낮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어선 안 됐다.
그래서는
내가 먹을 음식과 내 아이가 먹을 음식을
충분히 얻을 수가 없었다.
위상이 낮으면,
발언권도 영향력도 힘도 없으니까.
아프거나 다쳐도
한정된 자원인 약초나 치료제를 얻기 어려웠다.
혼자 버림받을 가능성도 늘 높았다.
예를 들어
부족원 중 일부를 포기해야 하거나 떼놓아야만 한다면
낮은 위상에 있는 부족원을 가장 먼저 포기할테니까.
이러한 진화적 이유로
인간은 집단에서 낮은 위상을 가지는 걸
극도로 두려워한다.
정말 혼자 버려지는 것만큼 생존에 위협적일까
인간은
그 어떤 동물들보다 높은 사회적 연대를 통해
종의 생존을 얻어낸 동물이다.
각 개체 하나하나가 가지는 생존력이나 전투력으로만 보면,
인간은 그 어떤 동물보다도 취약한 편에 속한다.
그러니 아마 그 집단에서
약간만 변두리에 위치하는 것만으로도
개인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낮은 위상이 충분히
생존에 위협적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동물 중에는
자신의 집단 내 사회적 지위나 위상이 낮아서
제대로 새끼를 기르고 자신이 살아남는 게 어렵다고 판단하면,
임신상태에서 태아를 다시 흡수해버리거나
태어난 새끼를 다시 잡아먹어버리는 동물도 있다.
이는,
위상이 개체의 생존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두려움을 이용하는 세상
세상은
그 두려움을 이용해
인간을 길들인다.
학교에서는
고분고분하게 순종하는 일을
미덕이라 가르치고,
어른들은
자신들이 말하는 정답에 의문을 가지는 걸
비정상이라 세뇌시킨다.
남들이 하는 대로,
남들이 따르는 대로
복종하고 따르는 것이
가장 올바르고
모범적이고
도덕적인 것이라 가르친다.
개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얼 위해 살아야 하고
어떤 삶의 방식과 마음가짐을 택해야 하는지는
이미 다
‘올바른 모범답안’이 정해져있다.
시키는 대로 잘 해내고
정해놓은 규칙대로 잘 지키면,
충분히 이쁨받고
인정받고
사랑받고
무시당하지 않게해주겠노라
약속한다.
하지만 만약
집단의 규율과 절차를 무시하면,
낮은 위상을 가지게 함으로써
개인이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끼게 만든다.
각자가
자신의 개성과 고유한 정체성을 반영해
독자적인 삶의 노선을 걷는 건,
비도덕적이고 부적응적인 것이므로
절대 허용할 수 없다.
사람들은
그런 이단아에 대해
비웃고,
조롱하고,
손가락질하고,
비난하고,
업신여기며,
무시한다.
이건
남이 정해놓은 대로 살지 않으면,
영원히 지속될 고통이자 협박이다.
모나지 않은 평균적인 삶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리 목놓아 외치는
‘모나지 않은’,
‘평범한’,
‘남부럽지 않은’ 삶이란
어떤 모습인가.
우리는
이미 하도 들어서
삶의 정답을 다 알고 있다.
어른 말씀 잘 듣고,
남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이기적으로 굴지 말고,
늘 상대에게 양보하고,
학교 가서 열심히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아무리 좀이 쑤셔도
자리에 앉아 수업 잘 듣고,
과제 착실히 잘 제출하고,
시험 열심히 보고,
좋은 대학 가서 남들에게 인정받고,
학점 열심히 따고,
스펙 쌓아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군말없이 힘든일 척척 잘 해내서,
회사에서 인정받고,
남들에게 미움받거나 찍힐 일 하지 말고,
적당히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집도 사고,
대출 갚아가며 성실히 저축하고,
퇴직 후에는
이제 모아둔 돈으로 자식 결혼시키고,
나나 배우자가 아플 때는
모아둔 돈으로 병원다니며 치료받고,
그렇게 시간이 다 되면
미련없이 눈을 감는 삶.
이런 일련의 모습들을 합친 게,
바로 우리나라가 숭배하는
‘남들 눈에 튀지 않는 삶’이다.
아니, 정확히는
시키는대로 살아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모범적인 삶.
사회, 국가, 조직, 집단은
모든 개개인이 딱 저렇게만 살다 가길 바란다.
우리 입장에선
그저 사회가 시키는대로만 하면,
완벽하게 같진 않아도
의외로 엇비슷하게 살아진다.
그런데,
대충 읽어보면 사실 꽤 그럴싸한데
왜 이리 자살률과 출산률은
미쳐날뛰는걸까.
아, 물론 그런 건 있다.
저걸 지키지 않으면,
개인은
그 무리에 있는 다른 구성원들로부터
거친 비난과 조롱, 모욕을 얻게 될 것이다.
자발적으로 저런 삶을 산다기보다,
그저 두려움에 굴종한 결과일 수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