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대장장이 휴

  • 세상은 당신의 두려움을 이용한다

    세상은 당신의 두려움을 이용한다

    위상은 진화적으로 중요했다

    ‘위상’이란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떤 사회 내에서,
    자신이 자리한 지위, 위치를 말한다.
    얼마나 우월하고
    영향력이 있는 위치에 있는지,
    다른 이들의 위협이나 배신으로부터
    얼마나 안전한지,
    무리 내에서 얼마나 힘이 있는지
    같은 것 말이다.

    이게 인간에게 중요한 이유는
    인간이 소외되고 버려져서
    혼자가 되는 걸 두려워하는 이유와 같다.
    인류가 지구에 존재했던 대부분의 기간 동안,
    인간은
    부족사회나 무리집단 내에서
    낮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어선 안 됐다.
    그래서는
    내가 먹을 음식과 내 아이가 먹을 음식을
    충분히 얻을 수가 없었다.
    위상이 낮으면,
    발언권도 영향력도 힘도 없으니까.
    아프거나 다쳐도
    한정된 자원인 약초나 치료제를 얻기 어려웠다.
    혼자 버림받을 가능성도 늘 높았다.
    예를 들어
    부족원 중 일부를 포기해야 하거나 떼놓아야만 한다면
    낮은 위상에 있는 부족원을 가장 먼저 포기할테니까.

    이러한 진화적 이유로
    인간은 집단에서 낮은 위상을 가지는 걸
    극도로 두려워한다.

    정말 혼자 버려지는 것만큼 생존에 위협적일까

    인간은
    그 어떤 동물들보다 높은 사회적 연대를 통해
    종의 생존을 얻어낸 동물이다.
    각 개체 하나하나가 가지는 생존력이나 전투력으로만 보면,
    인간은 그 어떤 동물보다도 취약한 편에 속한다.
    그러니 아마 그 집단에서
    약간만 변두리에 위치하는 것만으로도
    개인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낮은 위상이 충분히
    생존에 위협적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동물 중에는
    자신의 집단 내 사회적 지위나 위상이 낮아서
    제대로 새끼를 기르고 자신이 살아남는 게 어렵다고 판단하면,
    임신상태에서 태아를 다시 흡수해버리거나
    태어난 새끼를 다시 잡아먹어버리는 동물도 있다.
    이는,
    위상이 개체의 생존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두려움을 이용하는 세상

    세상은
    그 두려움을 이용해
    인간을 길들인다.
    학교에서는
    고분고분하게 순종하는 일을
    미덕이라 가르치고,
    어른들은
    자신들이 말하는 정답에 의문을 가지는 걸
    비정상이라 세뇌시킨다.
    남들이 하는 대로,
    남들이 따르는 대로
    복종하고 따르는 것이
    가장 올바르고
    모범적이고
    도덕적인 것이라 가르친다.

    개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얼 위해 살아야 하고
    어떤 삶의 방식과 마음가짐을 택해야 하는지는
    이미 다
    ‘올바른 모범답안’이 정해져있다.

    시키는 대로 잘 해내고
    정해놓은 규칙대로 잘 지키면,
    충분히 이쁨받고
    인정받고
    사랑받고
    무시당하지 않게해주겠노라
    약속한다.

    하지만 만약
    집단의 규율과 절차를 무시하면,
    낮은 위상을 가지게 함으로써
    개인이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끼게 만든다.
    각자가
    자신의 개성과 고유한 정체성을 반영해
    독자적인 삶의 노선을 걷는 건,
    비도덕적이고 부적응적인 것이므로
    절대 허용할 수 없다.
    사람들은
    그런 이단아에 대해
    비웃고,
    조롱하고,
    손가락질하고,
    비난하고,
    업신여기며,
    무시한다.

    이건
    남이 정해놓은 대로 살지 않으면,
    영원히 지속될 고통이자 협박이다.

    모나지 않은 평균적인 삶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리 목놓아 외치는
    ‘모나지 않은’,
    ‘평범한’,
    ‘남부럽지 않은’ 삶이란
    어떤 모습인가.
    우리는
    이미 하도 들어서
    삶의 정답을 다 알고 있다.

    어른 말씀 잘 듣고,
    남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이기적으로 굴지 말고,
    늘 상대에게 양보하고,
    학교 가서 열심히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아무리 좀이 쑤셔도
    자리에 앉아 수업 잘 듣고,
    과제 착실히 잘 제출하고,
    시험 열심히 보고,
    좋은 대학 가서 남들에게 인정받고,
    학점 열심히 따고,
    스펙 쌓아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군말없이 힘든일 척척 잘 해내서,
    회사에서 인정받고,
    남들에게 미움받거나 찍힐 일 하지 말고,

    적당히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집도 사고,
    대출 갚아가며 성실히 저축하고,
    퇴직 후에는
    이제 모아둔 돈으로 자식 결혼시키고,
    나나 배우자가 아플 때는
    모아둔 돈으로 병원다니며 치료받고,
    그렇게 시간이 다 되면
    미련없이 눈을 감는 삶.

    이런 일련의 모습들을 합친 게,
    바로 우리나라가 숭배하는
    ‘남들 눈에 튀지 않는 삶’이다.
    아니, 정확히는
    시키는대로 살아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모범적인 삶.
    사회, 국가, 조직, 집단은
    모든 개개인이 딱 저렇게만 살다 가길 바란다.
    우리 입장에선
    그저 사회가 시키는대로만 하면,
    완벽하게 같진 않아도
    의외로 엇비슷하게 살아진다.

    그런데,
    대충 읽어보면 사실 꽤 그럴싸한데
    왜 이리 자살률과 출산률은
    미쳐날뛰는걸까.

    아, 물론 그런 건 있다.
    저걸 지키지 않으면,
    개인은
    그 무리에 있는 다른 구성원들로부터
    거친 비난과 조롱, 모욕을 얻게 될 것이다.
    자발적으로 저런 삶을 산다기보다,
    그저 두려움에 굴종한 결과일 수 있다는 말이다.

  • Lv15. 비웃음을 견뎌낸 왕

    Lv15. 비웃음을 견뎌낸 왕

    이제 우리는
    인간이 극도로 혼자 소외되고 버려지는 걸 두려워하는 본능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인간은 혼자가 되어 버려지는 것 외에도
    타인에게 지배당할만한 습성을 지니고 있다.
    그건 바로,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낮은 위상을 가질까봐
    두려움에 떠는 습성이다.
    이건 인간의 유기불안과 함께,
    세상이 인간을 농락하는 데 쓰이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

    이번 레벨을 통해 우리는,
    인간이 얼마나 위상에 집착하는 존재인지,
    그리고 세상은 그걸 어떻게 이용하는지,
    그 조종과 세뇌에 정말 당해주며 살 이유가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이 레벨까지 렙업을 마치고 나면,
    이제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정신적으로 속박당하는 삶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정신적인 자유를 얻은 존재의 관점에서
    삶을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할 것이다.

  • 혼자 남겨지고 나서야, 삶이 시작된다

    혼자 남겨지고 나서야, 삶이 시작된다

    학교를 관두는 일

    우리가 이름을 아는 사람들,
    지금 현 시대를 이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여러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 공통점 중에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대학중퇴’다.
    스티브 잡스는 대학교를 중퇴했고,
    델 컴퓨터로 유명한 마이클 델은
    의대를 중퇴했다.
    마크 저커버그는 하버드 중퇴,
    빌게이츠도 하버드 중퇴,
    조르지오 아르마니 의대 중퇴,
    심지어 그 바른생활 사나이 같은 유재석도
    서울예대 중퇴,
    뭐 사실 조금만 검색해보면
    이런 사람들은 너무 많아서
    열거하기 힘들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학교를 중퇴해야 크게 성공한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사실,
    이건 단순히 농담거리로 치부하고 말 사안이 아니다.

    중퇴가 가지는 의미는 ‘거절’이다

    중퇴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내가 보기에 중퇴는
    성공한 사람들의 엄청나게 큰 용기와 안목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요소다.
    이건 우리가
    혼자 무리에서 튕겨나와
    소외되는 일에 가지는 두려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학교를 중퇴한다는 건,
    내가 내 인생을 위해 해야할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
    학교 커리큘럼을 따르는 데 드는
    시간과 에너지가 아깝다는 생각에서 비롯되는
    대단히 대담하고 용기있는 행동이다.
    그런데
    이 용기있는 행동의 이면에는,
    훨씬 더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중퇴는,
    주위 사람들과 내가 속한 문화,
    사회에서 내게 보내는 기대와 요구를
    정면으로 거절한다는 걸 의미한다.
    사회에서 짜놓은 보편적인,
    하지만 크게 나에게 해가 되지도 않을 루트를
    굳이 걷어차버릴 정도의 소신과 신념을 가지는 건
    단언컨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보편적 루트’를 지켜내고 유지시키는 건
    비단 큰 규모의 국가, 사회만이 아니다.
    당장 우리가 얼굴을 맞대고 지내는
    친구, 동료, 가족들도 그에 포함된다.
    다시 말해,
    그 일반적인 삶의 궤도를 끊어버리려면,
    내 주위의 기대와 압박,
    나아가 비난과 적대, 손가락질을
    기꺼이 감내하고 이겨내야 한다.
    철저하게
    모든 사람들에게 소외당해야 하고
    외톨이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자기자신과 삶을 원하는 모습으로 조각해
    세상에 구현해낸 거의 모든 인물들은
    상당기간 동안 주위의 기대를 저버린 채
    비웃음과 동정, 냉소 등을 견뎌가며
    가시적인 결과없이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구간을 거친다.

    ‘거절’에 대한 주위의 반응

    이러한 것들,
    즉 학교를 중퇴하고
    남들이 뭐라고 하든 비웃든
    나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일들은
    앞서 말했듯이 사실상 ‘거절’이다.
    주위 사람들, 사회와 관습이 요구하는 역할과 기대에
    ‘거절’을 시전하는 일이다.
    그러면 그 때부터 난리가 난다.
    온갖 조언과 걱정,
    비난,
    조소와 멸시,
    설득과 타이름이
    미친듯이 일어난다.

    그런데,
    자신의 삶에서
    무언가를 조각해내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럼 이제,
    우리 차례다.

    사람들의 기대와 요구를 거절할 용기를 내고,
    남이 짜놓은 판에서
    남이 짜놓은 규칙대로 움직이고 행동하는 걸
    단호하게 거부하는 일은,
    우리가 비로소
    진짜 우리자신만의 길을 걷기 시작할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는 걸
    상징한다.

    끝도 없는 눈치보기와
    남들이 날 어떻게 바라볼까 걱정하고 전전긍긍하는 삶을
    벗어던져버리고,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 위장해야할
    말과 행동과 표정을 내려놓고,
    진정으로 우리의 내면에 깃든
    고유한 잠재력과 예술성을 따라 걷는
    최고의 삶을 시작하는 용기를
    이제 내야 한다.
    그 용기를 내고
    기꺼이 소외되어
    혼자 나의 길을 걷는 결정을
    당당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의 진짜 삶을 시작하는
    출발신호다.

  • 혼자 버려져도, 죽지 않는다

    혼자 버려져도, 죽지 않는다

    세상의 겁박

    모든 사회와 문화는
    절대 혼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구성원들을 겁박한다.
    지시한 규칙과 룰을 따르고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면
    큰 일이 날 거라 호언장담한다.

    이렇게 인간을 길들인다.
    모나면 안 되고
    튀어서도 안 되고
    니 생각을 남들 앞에서 말하지 말고
    그저 조용히 숨죽인 채
    남들이 하는 걸 비슷하게 따라 하면서
    나도 마치 그들과 같은 생각을 하려했고
    같은 행동을 하려했던 것처럼 미소지으며
    그렇게 순종적으로 살아가라고 말한다.
    만약 니 마음대로 하다간,
    혼자 버려져서
    비참한 처지에 놓일 거라고 말한다.

    그건 지배하는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대처다.
    구성원들이 그렇게 순종적이고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서로가 서로를 속박하는 게
    가장 통제하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자신의 삶이 소중한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그게 무서워 눈치보며 순종하는 삶이
    그리 합리적인 선택이 되지 못한다.

    전혀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으면,
    인간은 안정감을 느낀다.
    정확히는
    혼자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공포로부터
    벗어나있다는 안도감을 얻는다.

    하지만 더이상 그 두려움은
    합리적이지 않다.
    우리가 그 공포 때문에
    우리자신의 삶을 사는 대신
    남의 눈치를 보고
    사람들의 시선에 쩔쩔매는 꼭두각시 인형이 되는 건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을 위해
    우리의 심장을 내어주는 꼴이다.

    혼자여도 죽지 않는다

    이미 세상은 더이상
    소속된 집단이나 무리가 없이 혼자 지낸다고 해서
    도저히 생존할 수 없는 그런 환경이 아니다.
    몸이 건강하면
    당장 아르바이트를 구해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혼자가 되는 걸 두려워할 이유는
    더이상 없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이 그리 두려워
    주인이 아닌 노예가 되길
    자처하는 삶을 살고 있는걸까.

    인간은 그저
    내 몸과 마음에 각인된 진화적 본능에
    휘둘리고 있을 뿐이다.
    이걸 노골적으로 이용하려는 집단에게
    세뇌당했을 뿐이고,
    통제가능한 구성원을 길러내려는 학교에게
    속았을 뿐이다.
    일론머스크가 한 인터뷰에서 한 말처럼,
    학교는 그저
    누가 더 성가신 지시들을 잘 참아내고 순종하는지를
    가려내는 곳일 뿐이다.

    우리는 더이상
    진화의 결과물 중 하나일 뿐인 미련한 공포에
    끌려다니며 살 이유가 없다.
    굶어죽기 딱 좋은 환경에서 진화해온 인간이
    아직까지도 단 걸 먹으며 쾌감을 느끼고
    잉여에너지를 지방으로 축적하는 것처럼,
    혼자 남겨지는 걸 상상만 해도 두렵고
    머리가 새하얘지는 건
    더이상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맞지 않는
    느릿느릿한 진화의 함정일 뿐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남들의 요구와 지시 대신에
    당신의 삶과 당신 내면의 소리를 따라 살았을 때
    당신이 처하게 될 곤경이라고는,
    당신 인생에 전혀 관심도 없고
    당신을 알지도 못하며
    당신 삶에 하등 가치도 없는
    멍청한 자들의 삐죽거림밖에 없다.

    그게 두려워
    평생을 남들의 노예로 전락해서 살 순 없지 않나.
    우리의 소신을 지키고
    원하는 삶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혼자가 된다고 해도,
    우리의 진화적 각인이 우리에게 경고하는 것처럼,
    사회와 세상이 우리를 겁박하는 것처럼,
    죽지 않는다.
    걱정마라.

  • 소외되는 것에 대한 진화적 공포

    소외되는 것에 대한 진화적 공포

    얼마 안 됐다

    인간이
    주위 사람들의 비위나 눈치를 살피지 않고,
    부족의 우두머리 눈밖에 나도,
    죽지 않고 생존할 수 있게된 건,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인류가 출현한 이래
    거의 모든 시간동안,
    개인은 절대
    자기가 속한 부족의 룰이나
    기득권층의 심기를 거슬러선 안 됐다.

    부족 무리에서 벗어나 혼자 행동하면
    결말은 뻔했다.
    어디 짱박혀서 자다가
    산짐승을 만나 물려 죽거나,
    어디 잘못된 곳에 빠져서
    못나와서 굶어 죽거나.
    이래나 저래나 혼자 살아남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부족장이나 부족원들의 미움을 사면,
    부족에서 쫓겨나 죽게 되는 게
    너무나 자명한 수순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모양이다

    지금 이 시대에 생존해있는
    우리들의 조상 중에,
    쿨하게 부족장 말을 어기고
    혼자 산딸기 따러 무리에서 벗어났거나
    남이 날 싫어하든 말든
    개무시했던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러던 애들은
    자손을 못 남겨서
    우리 조상이 되지 못한 채,
    어느 시기엔가 결국엔
    죽어 사라졌을테니까.

    진화란 그런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남 눈치를 보고
    남이 날 보고 뭐라고 하는지에
    극도로 예민한 건,
    사실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죄다 그런 애들만 살아남아
    자손을 낳고 길러온 기간이
    어마무시하게 길고,
    우리는 그런 애들의 후손이니까.

    진화는 더디다

    진화는 매우 더디고,
    큼직한 단위로 일어난다.
    빠르고 디테일한 인간문명의 발전과
    현대사회 환경을 정확히 반영할만큼
    신속하고 섬세하지는 못하다는 의미다.

    인간은
    잉여에너지를 어떻게든 지방으로 축적해
    늘 도사리는 굶어죽을 위험에
    대처하는 방향으로 진화했지만,
    지금 모든 병의 근원이 비만인 걸 보면
    진화가 실제로 디테일한 환경변화에 잘 적응하기에는
    너무 많이 더디다는걸 알 수 있다.

    소속안정감을 느끼는 일의 대가

    혼자가 되는 것이 두려워
    무리나 집단에
    어떻게든 붙어있으려고 하다보면,
    그 집단의 지배를 받게 된다.
    내 생각이 그들과 달라도
    그들과 생각이 같은 척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고,
    내게 더 큰 기쁨을 주는 일이 있지만
    그 일 대신 집단이 내게 강요하는 일을 하고,
    내 마음이 원하는 행동 대신
    사람들이 내게 기대하고 바라는 행동을 하며
    살게 된다.

    어느 순간,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타인의 시선에 의해 결정되고,
    나의 자존감은
    타인의 기분에 따라 뒤바뀌고,
    나의 존재가치는
    타인의 평판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는 이러한 삶을 사는 존재를
    ‘노예’라고 부른다.
    계급제도가 사라진 지금,
    실제로는 여전히 계급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거다.

    이제 더이상 과거처럼
    목이 잘리거나 굶어죽고
    맞아 죽게 되진 않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자신이 원하는대로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살고,
    다른 누군가는
    타인이 원하는대로 복종하고
    그들의 눈치를 보며
    내 자유를 헌납한 채 살아간다.

  • Lv14. 소외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

    Lv14. 소외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

    우리는 Lv13에서
    진정한 관계, 사랑하는 관계에 대해 배웠다.
    하지만 현실에서 인간의 삶은
    그렇게 1:1로 맺어지는 관계가 아닌,
    무리와 집단에 속해서 맺어지는 집단관계로
    점철된 경우가 더 많다.
    앞으로 이번 레벨부터 Lv16까지
    우리는 그렇게 집단으로 맺어지는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무리에 소속되어 있고 싶어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집단에 속해있지 않은 채 혼자 남겨지는 걸
    극도로 무서워한다.

    이번 레벨에서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것은,
    인간이 혼자 버려져서 소외되는 일에 대한 진실이다.

  • 진정한 사랑을 위한 준비

    진정한 사랑을 위한 준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진심으로 누군가와 서로 사랑하는 관계를 맺는 건,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어쩌면
    살면서 단 한번도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 기적같은 누군가와 만나는 일은
    애초부터 우리의 통제영역 밖에 존재하는 일이니,
    사실 우리가 의지대로 어찌 해볼 도리도 없다.

    하지만 이렇게 진정한 사랑이
    우리의 통제영역 밖에 있는 것과 별개로,
    인간이 누구나 다
    타인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도 결코 아니다.
    그런 기적같은 누군가를 만나는 천운이 따랐음에도
    내가 준비되어 있지 못한 바람에,
    상대방과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그 기회를 날려버린다면
    그건 정말 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사람이 되어있어야 한다

    진정한 관계를 쌓아나갈 수 있을 만큼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과연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일까.

    내 삶이 충분히 의미있고 행복해야 한다.

    관계가 우리의 개인적인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는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바로 그 관계가 있기 전까지의 내 삶이
    고통스럽고 불행으로 가득할 때다.
    내가 우울하고
    힘들고
    고통스럽고
    공허할 때는
    단지 그걸 달래준다는 이유만으로
    관계를 시작하게 되는 경우가 매우 많다.
    힘든 일을 토로할 때만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두시간씩 하소연을 하는 친구,
    삶에 마음 둘 곳이 없어
    아이를 낳아 육아에 전념하며
    내 젊음의 무의미함을 덮으려는 부모,
    혼자 지내는 게
    외롭고 초라하게 보이는 것 같아서
    누군가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는 배우자,

    주위에 너무 많이 보여서 슬프기도 하지만
    이제 우리는
    이런 류의 관계를 통해
    헛된 기대로 삶을 낭비하는 사람으로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이런 식으로는,
    내 삶에서 공허함이 사라지지도,
    삶이 기쁘고 충만해지지도 못한다.

    타인으로부터 정신적으로 자유로워야 한다.

    인간은
    자기자신을
    자신의 의지와 관점을 가지고 판단한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인간은 애초에
    그럴 정신적 자유를 얻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아간다.
    그래서
    남들이 좋다고 여기는 걸
    자신도 좋다고 생각하고,
    주위 사람들이 업신여기는 걸 따라서
    누군가를 업신여기고,
    사회에서 박수치는 걸 그대로 따라서
    나도 박수친다.

    그래놓고서는,
    마치 자기자신의 철학과 숙고를 통해
    스스로를 판단하고 인지한 것이라고
    큰 착각을 한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인 라캉은,
    ‘인간이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걸
    세상에 널리 알렸다.
    문제는,
    스스로를 이해하고 판단할 때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착각하는 사람은,
    절대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가 없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그는 상대방을 보고 느끼고 경험할 때도
    타인의 시선으로 상대방을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부모는
    아이를 오롯이 자신의 마음으로
    사랑하고 바라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남들이 자신의 아이를 부끄러워하면
    부모 본인도 속으로 부끄럽게 느낀다.
    학교나 학원에서
    자신의 아이가 문제아라고 말하면
    부모도 거기에 이끌려 그렇다고 여긴다.
    내 사랑하는 연인을 보고
    친구들이 입을 모아 ‘키가 작다, 못생겼다’
    비웃고 은근히 무시하면,
    나도 괜히 내 연인이 덜 사랑스러워 보이고
    괜시리 작은 일 하나에도 짜증이 나려고 한다.
    내 친구가 반에서 은근히 무시와 따돌림을 당하면,
    나도 다른 애들처럼
    내 친구가 좀 별로인 것처럼 느껴지고
    괜히 같이 있는 게 부끄러워진다.

    그래서
    애초에 타인의 시선과 잣대에
    삶의 무수한 경험들이 질질 끌려다니는
    많은 사람들은,
    귀인을 만난다한들
    진정한 관계를 쌓아가며
    상대를 진실되게 사랑할 수 없다.

    용기를 내서 두드리자

    걱정하지 말자.
    진실은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우리에겐 그것만이
    결국 최고의 삶을 조각하는 양분이 되어줄 것이니.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만났고,
    진짜 사랑하는 관계를 위한 준비를 하는 데 필요한 모든 걸
    우리는 남아있는 레벨을 통해 모두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가령,
    타인으로부터 정신적으로 자유로워지는 법은
    Lv14부터 Lv16까지 레벨업을 하면서
    그에 필요한 모든 걸 알게 될 것이다.
    삶이 충분히 행복하고 만족스러워지는 법은,
    이 책 전체에 걸쳐 우리가 실현하고자 하는 목표이니
    그에 필요한 것들 또한
    이 책의 마지막까지 계속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그 준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할 필요는 전혀 없다.

    다만, 당신이 진짜로 해야할 일은 따로 있다.
    그건 바로,
    이 책을 읽으며 레벨업을 하고 나서
    알아야할 것들을 충분히 터득한 후에,
    알게 된 것들을 용기내서 도전하는 일이다.
    실제로 용기를 내서 실천하는 도전을 감행하는 일은,
    내가 당신에게 해줄 수 없는 영역이다.
    그것에 있어서만큼은,
    내가 이 책을 통해 돕거나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아니, 세상 그 누구라도
    당신을 대신해 실천해줄 수 없는 영역이다.

    진정한 사랑을 찾고
    진짜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관계를 맺는 일도
    역시 마찬가지다.
    거부당하고,
    내쳐지고,
    거절당하고,
    모욕당하고,
    그렇게 망신만 당하고 바보처럼 보이게 될 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
    그 모든 위험에도 불구하고
    저 사람이
    나와 진정한 관계를 쌓아나갈 그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
    용기를 내서 상대방에게
    진심을 담아 내 손을 내밀어보는 일.
    결국 우리에게 기적을 가져다주는 건,
    마지막 그 용기를 내는 일에서 시작된다.

  • 사랑의 역설

    사랑의 역설

    모든 관계의 본질

    우리가 삶을 통해 경험한,
    경험하는,
    그리고 앞으로 경험할 모든 관계는
    본질적으로
    각자가 자신의 목적과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로서 맺는
    타인과 나의 연결이다.

    인간은 애초에 이기적이기 때문에,
    당신이 그 불편한 진실을 외면한 채 관계를 맺는다면
    필연적으로
    반복적인 배신과 상처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설령 나와 피를 나눈 가족이라고 할지라도,
    관계의 본질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오히려 가족이라는 미련과 일말의 희망이,
    더욱 크고 깊은 상처와 절망을 안겨줄지도 모른다.

    기적같은 관계

    하지만,
    우리가 진심을 다해
    진정한 내자신과 삶을 추구하며 살다보면,
    거기에 더해
    아주 희박한 확률의 기적같은 운이 따른다면,
    우리의 삶에도
    꿈에서나 보던 그런 진정한 관계가
    나타나기도 할 것이다.

    앞서 말한 세상 모든 관계의 본질에서
    완전히 벗어난 관계.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상대의 행복과 안녕을 소중히 여기고
    마음을 다해 바라는 관계.
    상대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관계.
    그 마음이
    관계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그런 신뢰와 애정의 결합.

    사랑의 역설

    만약 우리가
    최고의 우리자신을 조각하고 원하는 삶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이런 기연을 만나게 된다면,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그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나를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
    아까는 각자가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는 존재로서 맺는 관계가
    부정적인 것처럼 말하더니.
    이제 와서는 자신을 가장 먼저 생각해라니 뭔 이야기냐,
    라고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진정한 관계,
    진정으로 사랑하는 관계를 만들게 된다면
    당신은 반드시
    당신 자신을 가장 먼저 생각하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

    상대가 가장 바라는 게 그것이기 때문이다.

    나를 진심을 다해 사랑하는 상대방은,
    진심으로 내가 행복하길 바란다.
    내가 행복한 것이,
    그에게 가장 큰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준다.
    우리가 상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우리는 상대가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상대가 행복한 것이,
    우리에게 가장 큰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준다.

    즉, 진정한 관계에서 상대를 위한 최고의 사랑은,
    바로 우리가 행복하고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반대로 나를 위해 상대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은,
    바로 상대방이 자신의 삶에서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찬 날들을 누리는 것이다.
    진짜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관계에서는
    ‘희생’이 없어야 하고,
    ‘죄책감’이 없어야 한다.
    내가 나의 마음을 따라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상대가 자기자신의 마음을 따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
    나를 가장 위하는 것이 곧 상대의 가장 큰 기쁨이 되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고귀하고 소중한 선물이 되어주는 것이
    진정한 관계의 특징이자,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누릴 수 있는
    기쁨이자 눈물이다.

    이는,
    아주 잠깐의 침묵으로
    나의 성공에 대한 질투를 가까스로 감추고,
    겉으로는 상대의 불행을 보며 위로하지만
    속으로는 내가 그래도 쟤보다는 낫다며 안도감을 느끼는,
    혼자 외로운 것보다는 덜 고통스러워서
    누군가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는,
    서로가 서로에게 끊임없이
    나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는
    ‘현실 속의 관계’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다.

    그들은
    상대방이 나를 위해 희생하면 고마워하지만,
    진정으로 사랑하는 관계에서는,
    상대방이 나를 위해 희생하면
    너무나 고통스러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그래서 상대의 정신적 안녕과 행복을 위해,
    우리는 우리자신을 가장 1순위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사랑의 역설이다.

  • 기적같은 관계

    기적같은 관계

    한계를 받아들이는 일

    인간은 한계를 깨닫고 나면,
    크게 두가지 중 하나의 반응을 보인다.
    하나는,
    그 한계를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는 것.
    다른 하나는,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

    얼핏 보면 한계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그 한계를 부정하고 뛰어넘는
    원동력이 되는 것처럼 보여질 수 있으나,
    사실 이는
    오히려 현실을 부정하는 것에 가깝다.

    정말 그 한계가 공고함에도 불구하고
    부러지지 않고 무릎꿇지 않는 이들은
    한계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다.
    이는 빅터 프랭클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겪었던 일을 써놓은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서도
    나오는 내용이다.
    새해가 되면
    분명히 이 지옥같은 전쟁이 끝나고
    우리도 해방될거라 철썩같이 믿는 사람들은
    더 긍정적이고 굳건한 신념으로 버티는 듯 보였으나,
    새해가 지나고도 풀려나지 못하자
    시름시름 앓다가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이야기.
    오히려 비극적인 현실을
    비관적으로 직면하고 받아들이는 비관주의자들이
    낙관주의자보다
    더욱 강한 생명력을 보여준다는 이야기는
    심리학 분야에서 한번씩 회자되곤 하는 이야기다.

    인간은 절대
    타인의 마음을 완전히 공감해줄 수 없다는 한계,
    그리고 이로부터 파생되는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고독은
    부정하기 어려운 인간의 근원적인 한계점이다.

    이를 부정하고
    분명히 나의 모든 심정과 마음을 다 헤아려줄 수 있는
    만화 속 주인공같은 관계가 있을거라 믿으며
    그러한 관계를 찾아 이곳저곳을 떠도는 사람이 있고.
    인간의 근본적인 한계를 인정하고,
    그럼에도 그 한계에 갇힌 채
    모든 진심과 최선을 다해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사람의 아픔과 감정에 공감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기적같은 관계

    그런 마음을 내어주는 사람과의 진정한 관계는,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분명한 것은,
    그런 마음을 서로 내어주며
    진심으로 상대를 위하고 아끼는 관계가
    세상에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극히 희박한 확률이긴 하지만,
    살다보면
    내가 배가 아플 때
    내가 얼마나 배가 아픈지 몰라서 전전긍긍하며
    오히려 나보다 더 큰 고통을 상상하며
    곁에서 느껴주는 그런 존재를
    만나게 되기도 한다.

    그런 기적같은 축복은,
    우리가 명백한 한계를 지닌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그 한계를 잊고
    말로 형언하기 힘든 고마움과 사랑을 느끼게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처럼,

    한사람이라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
    그 인생에는 구원이 있다.

  • Lv13. 사랑을 배운 외톨이

    Lv13. 사랑을 배운 외톨이

    우리는 이제 고독을 이해한다.
    인간은 애시당초 고독한 존재지만,
    살다보면 진정한 관계를 통해
    기적같은 존재를 만나게 되기도 한다.
    아니 오히려 자신이 고독한 존재라는 걸 받아들여야만,
    희박하고 소중한 진짜 사랑하는 관계를 얻을
    가능성이 생긴다.

    이번 레벨에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바로 ‘사랑’에 대한 것이다.
    사랑은 얼마나 큰 기적인지,
    그렇기에 사랑이 어떠한 역설을 가지는지,
    사랑의 진정한 모습은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는 이제 이해하게 될 것이다.

  • 고독의 필요성

    고독의 필요성

    고독만이, 우리를 우리자신과 만나게 한다

    인간은 늘
    외로움으로부터 도망친다.
    그건 진화적 본능이기도 하고,
    고통으로부터 달아나려는
    자연스러운 몸부림이기도 하다.

    하지만 고독으로부터 끝없이 도망다녀서는,
    진짜 자기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무엇을 선택하고 있고 무엇을 숭상하는지,
    어떤 것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잃어버린 것인지,
    어떤 것을 위해 삶을 매진해야 하는 것인지
    죽을 때까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Lv18에서 알게 되겠지만,
    진짜 나다운 나자신,
    내가 될 수 있는 최고의 내자신을 발견하는 일은
    오롯이 혼자일 때만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다.

    남들이 걷는 길이 아니라,
    누군가가 걸었던 길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나의 길’은
    철저히 고독 속에서
    차분히 나 자신과의 대화를 이어나가는 과정에서만
    비로소 발견할 수 있다.

    정신분석의 대가인 프로이트나 융이
    오랜시간 혼자 틀어박혀 자기분석에 빠져있었던 것처럼,
    우리 또한
    진짜 우리자신과의 조우를 위해
    고독을 기꺼이 환영해야만 한다.
    수많은 철학자들과 예술가들이
    고독을
    우리 자신의 진짜 내면과 만날 수 있는 기회로 찬양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내 자신의 본질과 마주할 수 있는 이유

    세상이 근본적으로 지옥같은 이유는,
    어떻게든 우리를 세뇌시켜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우리를 이용해먹는 구조로 만들어져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모든 인간은 부지불식 간에
    어떻게든 타인이 날 위해서 행동하고 살아가길 바란다.
    그건 동물로서 생존하기 위한 진화적 본능이기도 하고,
    온갖 욕구와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몸부림의 일환이기도 하다.

    이런 세상 속에서
    외부와의 접촉, 타인과의 관계는
    거의 대부분
    우리가 진짜 우리자신을 바라보는 데
    방해가 된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고독이 자기자신의 진정한 본성과 조우할 기회를 준다고 말했고,
    사르트르는 심지어
    고독을 받아들일 때에야 비로소 진짜 자유를 얻는다고 말했다.

    모든 억압과 속박은,
    사실 외부와의 연결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이 억압은 필연적으로
    우리가 우리 내면에 있는 우리 자신의
    진정한 잠재력과 소질, 개성과 예술성 같은 것들을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인간이 진짜 자신을 발견하고 그를 위해 매진하면,
    그 인간에겐 더이상
    세뇌나 통제가 먹혀들지 않기 때문이다.

    더이상 타인이 요구하는 대로 살지 않고,
    그 대신 자기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기 시작하는 인간이 탄생하는 사건은
    오직 ‘고독’을 통해서만 벌어지는 일이다.

  • 받아들여라

    받아들여라

    통제영역 밖에 있는 문제는 방도가 없다

    고독은
    처음부터 우리와 함께 태어나,
    삶이 끝나는 날까지 함께 한다.
    우리가
    우리의 통제영역 하에 두고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고독에 대해서 가질 마음가짐은
    단 하나다.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는 것.
    받아들여라.
    인간은 원래 고독한 존재다.

    인간이 자주 하는 실수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며
    인간이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는,
    첫번째 글에서 말했듯이
    온갖 관계를 만들며
    그 관계의 대상을 내 고독을 해소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그런 게 아니라고 자신을 설득하겠지만,
    인간은 애초부터
    자신의 치부와 더러운 모습을
    스스로에게조차 숨기는 일에
    매우 능하다.

    결국 상대방은
    ‘이 관계가 어쩌면 나를 사랑해서 아닐 수도 있겠구나’
    라는 느낌을 어느 순간 가지게 된다.
    이는 오랜 고민과 망설임을 거쳐,
    결국에는
    실망과 배신, 분노와 냉대로 이어진다.
    그럼 인간은
    그 관계에서 배신당했다며
    자신이 저지른 짓은 알지도 못한 채
    다시 또다른 관계를 찾아헤맨다.
    하지만 그건 부질없는 짓이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황하는 일의 대가

    내 고독을 달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의 진정한 행복과 기쁨을 누리기 위해
    기적같은 진정한 관계를 지향하는 건
    매우 가치있는 일이다.

    그런데 고독은 종종,
    애초에 그런 기적이 일어날 여지 자체를 없애버린다.
    왜냐하면 인간이
    고독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자꾸 도구적인 관계를 맺고 다니기 때문이다.
    나의 외로움과 고독을 견디지 못하고
    이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이런 저런 관계를 맺고
    그 관계의 상대방을 도구로 이용하려는 행동은,
    도덕적으로 나쁘고 미성숙한 문제라서가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일어날수도 있는
    가장 가치있는 기적이 일어날 가능성을 없애버리는 짓이라서
    결코 그런 행동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이 사실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니 외롭고 고독하다고
    이런 저런 무리나 집단에 기웃거리거나,
    그리 기쁘고 즐겁지도 않은 관계유지를 위해
    시간과 체력을 쓰지 마라.
    그건 단순히 시간낭비 체력낭비가 아니라,
    진짜 소중한 가능성을 말살시키는 희대의 삽질이다.
    그냥 혼자 고독과 어울리는 게
    백배는 낫다.

    거기에 더해,
    사실 우리가 원하는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