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함(ft. 유한함)

유한함

제행(諸行)은
무상(無常)이다.
즉,
모든 것은
변한다.
모든 게 변한다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걸 의미한다.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늘
있어주었으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어떤 경우에도 일어나지 않는다.

죽음

변화란,
지금 이 모습은
언젠가는 소멸한다는 걸 의미한다.
우리가 죽음이라 말하는 것.
늘 우리 가까이 있지만,
반드시 외면해야만 하는 것.
그래야만 숨을 쉴 수 있는 것.

톨스토이는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죽음을 망각한 생활과
죽음이 시시각각 다가옴을 의식한 생활은
두 개가 서로 완전히 다른 상태다.
전자는
동물의 상태에 가깝고,
후자는
신의 상태에 가깝다.

반성

나는,
그 누구보다도
동물의 상태에 머문 채
삶의 대부분을 살았다.
천성적으로
감사보다 불만을 민감하게 느끼던 내가,
얼마나 많은 걸 잃고서야
비로소 모든 것들에 감사할 수 있게 되었는지를
가만히 돌이켜보면
지금도
눈앞이 아득해지는 것만 같다.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
아직 잃지 않았다고 해서
내일도 여전히 그럴 것이라는
XX같은 착각은,
인간을
지옥의 바닥 끝으로 떨어뜨리는
가장 끔찍한 패착이 된다.
나에게나 당신에게나,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더이상 단 0.1초도 듣지 못하게 되는 그 순간은
반드시 온다.
우리는 단지,
그게 언제가 될 지
그 타이밍을 모를 뿐이다.

신의 상태

톨스토이가 말한
‘신의 상태’에 가까운 삶을
살아야 한다.
즉, 시시각각 죽음이 다가오고 있고
어쩌면 지금 당장 눈앞에 펼쳐질 수도 있다는 것을
늘 의식하고
곁에 두는 삶을
살아야 한다.
두렵고 고통스러워 망각할 뿐,
죽음은
엄연한 인생의 진실이고
우리에게 늘 가장 중요한 사실이다.

감사하지 않는 일의 어려움

학교에서는
도덕 교과서와 옛 성현들 말씀을 이야기하며
‘모든 것에 감사하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나는
‘성숙한 인간이라면 마땅히’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걸
싫어한다.
그리고 또
그리 규정된대로,
지켜야하는 교리를 따르느라
감사하며 사는 것 또한
싫어한다.
그건 흔해빠진 위선이고,
가장 변절하기 쉬운 굴종의 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순간,
모든 사소하고 당연한 것들에
깃들어있는 기적과 축복에 감사하는 일은,
그 모든 것들이
반드시 언젠가는 그 모습을 잃고 사라질 거라는
강렬하고 선명한 자각에서 탄생한다.
도망치지 않고
죽음과 유한함을 마음 깊숙이 받아들이고
시시각각 이를 인식하며 사는 한,
인간이 매순간 감사하지 않는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이제 당신은,
늘 곁에 죽음을 두고
하루하루를 살아야 한다.
그 용기와 강인함이,
인간에게
가장 깊고 순수한 감사함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이것이,
최고의 나를 발견하기 위해 지녀야 할
첫번째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