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상징하는 또다른 가치
우리는 Lv10에서
돈이 없어 우리의 시간영토를 팔아넘긴 채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가 원하는 걸 하면서 보낼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
진짜 우리의 시간은 극도로 적다.
시간을 팔아야 돈을 벌 수 있으니까.
이게 돈이 중요한 이유라는 것도 배웠다.
그런데 앞서 이야기한
인류의 역사가 돈의 역사인 이유는,
돈이 단지
시간적 자유를 좌우하는 녀석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렇다고만 이야기하는 건,
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인간이 그저
자신이 생존하기 위한만큼만 돈을 추구했다면
인류의 역사는
지금처럼 돈의 역사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부유한 자들이
그저 자신의 시간을 팔지 않아도 되는만큼만
돈을 숭상했다면,
돈은
인류 역사의 모든 씬에 등장하는
씬스틸러가 되진 못했을 거라는 말이다.
하지만 돈은
신체적 자유 외에도
또다른 것을 상징한다.
그건 바로,
‘타인’이다.
타인의 인정과 질투
돈이 세상 모든 것을 사들일 수 있는
절대반지가 되면서,
돈은 점차 어떤 시대 어떤 문화권에서든
가장 가치있는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있는 것이니,
이는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문제는 이러한 돈의 엄청난 힘이,
타인의 관심과 존경까지
불러일으켰다는 데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충분히 돈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돈을 벌고 부를 쌓는 데 매달려
자신의 에너지와 젊음과 체력을 쏟아붓는 사람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들은 왜 그렇게 돈에 집착할까.
수많은 철학자들이 입을 모아
돈은 바닷물과 같아서
많이 가질수록 갈증이 난다고 말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돈은
타인의 환심과 마음을 가져다주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질투와 부러움을 사게 하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질투와 부러움도 바란다고?
물론이다.
인간은
그걸 간절하게 바라는 존재다.
인간이 타인에게 민감한 진화적 이유
도대체 인간은
타인에 왜그리 민감하게 반응할까.
(이 주제는
Lv12 이후로 여러 레벨에 걸쳐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그래도 여기서 간단히는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그건 바로,
타인에게 예민해야만 생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마치,
우리 몸이 단 것을 먹으면
도파민이 분비되며 쾌감을 느끼는 것과 같다.
(덕분에 최근 당뇨병 유병률은
연령대를 불문하고 미친듯이 고공비행하는 시대다.)
인간이 출현한 이래 수십만년 동안
인류는
절대 부족사회에서 버림받아서는 안 됐다.
그 작은 소규모 사회에서
만약 부족사람들에게 밉보이거나 찍히면,
그래서 혹여나 부족에서 퇴출이라도 당하면,
그냥 그대로 뒈지는 것 말고는
예상할 수 있는 결말이 없었다.
그 나약하고 쉽게 부서지는 몸뚱아리로는,
산과 들에 돌아다니는 그 어떤 맹수와도
붙어서 살아남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타인에게서 소외당하거나 버림받는 것에
극도로 예민할 수밖에 없도록 진화했다.
게다가 버림받지 않고 무리에 있어도,
자신의 위상,
즉 상대적인 지위가 어떤지에 따라
내자신과 내 가족을 먹여살리고 지킬 수도 있고,
아니면 언제든 손쉽게 버려지거나
내팽개쳐질수도 있었다.
그래서 인간은
더욱이 타인이 날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하는지에
아주 극도로 예민한 생명체로 진화해왔다.
돈이 가져다주는 위상
돈을 많이 가지고 있고 돈을 잘 벌면,
사람들은 그 사람을 높이 우러러본다.
발렛파킹을 할 때
내 차가 뭔지에 따라 직원의 태도가 달라지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돈을 잘 버는 능력이 있으면,
사람 자체는 매력이 없어도
늘 구혼을 받고 주위에 사람이 모인다.
이제 어린 아이들도
비싼 아파트에 사는지 값싼 아파트에 사는지로
친구를 평가하고,
초등학생 아이들은
체험학습으로 해외여행을 갈 형편이 안 되는 가정의 아이들을
‘개근거지’라며 조롱한다.
돈이 있어야
내가 낳아기른 자식들 내외가
내게 자주 찾아오고 잘한다는 세상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세태 속에서,
타인들의 그런 시선과 반응에
엄청난 스트레스와 모욕감을 느낀다.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히말라야 등반에서나 필요할법한
수백만원 어치 장비와 옷들을 사고,
달릴 곳도 없는데
제로백이 3초면 되고
최대속도가 300km가 나오는 스포츠카를 사는 이유는,
그 제품들의 기능이 실제로 필요해서가 아니다.
그걸 사면 사람들의 환심과 부러움을 사고,
그를 통해 우월감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돈은
타인에게 비춰지는 나의 존재가치와 위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녀석이다.
돈은 곧,
나의 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