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와 도덕이라는 허상

살인범의 살인 이유

얼마 전 우연히 유튜브에서 범죄자 프로파일러를 소재로 제작한 드라마를 리뷰한 영상을 봤다.
현실고증이 잘 된 것인지를 판단할 지식이나 안목은 없지만, 그래도 감정선의 흐름이나 연출이 드라마덕후인 내 입맛에 맞아서 어쩌다보니 30분 남짓 되는 영상을 다 봤다.
보다 보니, 중간에 잔혹하게 살인을 저지른 살인범이 형사들에게 이런 말을 하는 장면이 나왔다.
“아니.. 걔가 괜히 거기 있었어가지고.”
형사가 그 아이 잘못이라는거냐 되묻자, 범인은 당연하다는듯이 ‘걔가 괜히 거기 있는 바람에 상황이 재수가 없었다’는 식의 이야기를 태연하게 한다.

모든 이들에겐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한명도 빠짐없이 전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살인범조차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항상 항변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본 드라마에서 아이를 잔혹하게 살해한 살인범이 말하는 걸 봐라.
괜히 걔가 거기 있는 바람에, 라고 한탄하지 않나.
그 어느 상황의 그 어느 누구도, 다 자기 입장에서는 자신의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

드라마 속 살인범의 사례를 들어서, 윤리와 도덕이 허망하다는 걸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단지, 도저히 ‘나는 정당하다. 그럴 이유가 있었다.’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은 자들도 언제나 자신에겐 자기 나름의 정당성과 정의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거다.

윤리와 도덕의 무력함

여기에 윤리와 도덕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있다고 보는가.
일단 이것부터 생각해보자는 이야기다.
어떤 누구라도 충분히 납득할만한 윤리와 도덕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가정한다고 해도, 이 도덕과 윤리가 도대체 여기서 어딜 비집고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인가.
윤리와 도덕은 결정적인 순간에 힘이 없다.
그저,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행동을 정당성을 주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 때 비로소 윤리와 도덕은 쓰임을 가지게 될 뿐이다.

윤리와 도덕의 작용원리

물론 윤리와 도덕은 사회구성원들을 예측가능하게 만들고 통제가능하게 길들이는 데 탁월한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윤리와 도덕은 그 이름처럼 정의와 타당성, 올바른 이상 등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비난과 손가락질, 사회적인 처형 등과 같이 인간이 진화적으로 가장 두려워하는 철퇴를 들고 사람들을 길들일 뿐이다.

인간은 태어날때부터 누구에게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상대방의 고통에 공명하며 슬퍼하고 안타까워하고 도우려 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게 윤리와 도덕 때문인 건 아니다.
도덕은 인간의 그런 면모를 숭상하고 자신들의 깃발로 삼긴 했지만, 그 이상으로 훨씬 더 많은 것들을 규율하고 강제한다.
윤리와 도덕은 누군가의 이해득실과 실용성을 근간으로 이용되어왔고, 모든 인간의 깊은 내면에는 윤리가 아니라 내 욕망과 두려움이 모든 행동의 뿌리로서 자리잡고 있다.

윤리와 도덕의 타락

처벌이 두려워 행하는 모든 도덕적인 행위들은 결국 사라지기 마련이다.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도덕을 어길 때 내가 겪게될 고통보다 더욱 큰 고통이 날 위협하기 때문이다.
더 큰 고통을 피하고자 덜한 고통을 감수하는 건 인간의 본능적인 선택이다.
사람들은 도덕 그 자체에 대한 깊은 수긍과 공감, 헌신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도덕은 언제나 결정적인 순간에 실패한다.

결국, 도덕과 윤리는 언제나 도구로 이용되고, 설득이 아닌 협박으로 퍼져나가며,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다.
그러다보니, 도덕은 그저 꼰머나 지배층이 타인을 원하는대로 움직이고 싶을 때 입맛대로 가져다쓰는 방패막이로 전락했다.

윤리와 도덕의 허상을 깨달아야 하는 이유

이것을 깊게 고민해보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를 원하는대로 조종하려고 하는 많은 존재들이 도덕과 윤리를 ‘악용’하기 때문이다.
윤리적이지 않는 XX라는 비난을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는 우리로서는, 그 악용에 기민하게 대처하기가 어렵다.
누누히 말하지만, 타인의 뜻대로 움직여서는 삶을 원하는 모습으로 조각하는 게 녹록치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꼭 찬찬히 숙고해보길 권한다.
당신 삶에서 윤리와 도덕이 어떤 위치에서 어떤 영향력을 당신에게 발휘하고 있는지.

당신의 하루하루를 완벽하게 조각해나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