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않아야 한다.

건강 잃으면 다 잃는거다.
라는 말이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말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마치 건강은 한 번 잃으면 절대 다시 회복할 수 없는듯한 뉘앙스를 주기 때문이다.
쉽진 않겠지만, 혹시 한동안 잃게 되더라도 다시 되찾으면 된다.

하지만, 건강이 그만큼 우리 인생에서 중요하다는 데는 동의한다.
건강하지 못해서 우리가 삶을 조각하는 데 지장을 주는 상태에서는, 모든 일들이 녹록치 않게 된다.
예를 들어, 나는 10살 때부터 안경을 쓰고 있는데 사실 이 또한 건강하지 못해 장애가 있는 것이다.
그건 실수로 안경이 부서졌을 때 내가 얼마나 발을 헛디디고 아무것도 알아보지도 읽지도 못하는지 보면 어렵지않게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게 사실 내가 내 삶을 조각하는 데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
시각능력이 아니라 청각능력이 떨어져 보청기를 끼거나, 다른 장애가 있더라도 마찬가지다.
만약 이게 우리가 삶을 조각하는 일에 치명적인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그건 그저 불편한 것일 뿐이다.

하지만 건강하지 못한 상태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하루를 조각하는 데 지장을 받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극심한 통증으로 원하는 일을 하다가 계속 머리를 두드리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뒤로 젖혀 쉬어야만 한다면 이건 실로 ‘건강하지 못한 상태’로 사는 것이 된다.
육체적 건강만이 건강은 아니다.
정신적 건강도 마찬가지다.
내가 회사에서,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주위 상급자나 동료의 눈치를 보고 긴장을 하느라 내가 하는 일에 온전히 몰입하지 못한다면, 이 또한 ‘건강하지 못한 상태’다.

이렇게 건강을 잃은 상태에서, 우리는 진정한 삶을 조각하는 작업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건강, 건강 거리니 좀 영 딱딱하니 이제 이 ‘건강’을 ‘아프지 않는 일’로 적겠다.

아프지 않아야 하는 첫번째 이유는,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아프게 되면 우리가 진정한 삶을 살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공허함’을 날려버리고 자유롭고 의미있는 시간으로 충만하게 살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리 자신을 조각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게 방해를 받게 되니, 실로 치명적인 일이다.

그리고 또다른 하나의 이유는, 만약 당신에게 모든 걸 내어줄만큼 소중한 사람이 있다면 그 소중한 사람도 같이 아프게 된다는 데 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크게 아프면, 우리도 크게 아프다.
그건 사랑하는 사람들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게 부모든, 배우자든, 자식이든, 연인이든, 은인이든 매한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기본적인 생존과 안전을 생각할 때 반드시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는 한 사람, 혹은 몇 사람도 같이 고려해서 삶을 조각해나가야 한다.

그건 사랑하는 이를 위한 일이기도 하고,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반대로, 우리는 아프지 않아야 한다.
그건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

아프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우리의 몸은 알아서 외부의 침입을 물리치고 스스로를 회복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잘 자고, 잘 먹고, 잘 움직이면 우리는 아프지 않는다.
물론 여기서 자고 먹고 움직인다는 말은 일상적인 의미에 더해 좀 더 추가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자는 건 잘 이완하고 잠재의식을 변화시키는 것을 포함한다.
먹는 건 영양소를 흡수하는 일 외에도 독소를 흡수하지 않는 일을 포함한다.
움직인다는 것은 신체를 단련하고 강건한 몸을 만들어나가는 성장을 포함한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아프지 않기 위해 필요한 건 잘 자고 먹고 움직이는 일이 전부다.

몸에 대해서만 아프지 않는 일이 중요한 건 아니다.
우리의 마음도 아프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렇다면 마음이 아프지 않기 위해서는 무얼 해야 할까.
사실 마음 또한 스스로 방어하고 생존하기 위한 나름의 자구책들을 이미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방어작용 자체가 우리가 삶을 조각해나가는 일에 큰 걸림돌이 된다.
아주 어린 나이의 아이들은 자신들이 자기 욕망을 따라 어떤 행동을 했다가 크게 엄마에게 꾸지람을 듣고 나면 그 행동을 안했던것처럼 되돌리고, 싫어하게 된다.
그래야 내게 중요한 존재인 엄마에게 수용받고 이쁨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성인과 달리 아주 어린 아이들은 진짜로 자기가 좋아하던 행동을 진심으로 싫어하게 순식간에 자신의 선호를 바꾼다.
(물론 좀 더 크면 개기기 시작하지만 ㅋㅋ 이건, 잘 자라고 있다는 증거다.)
혹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스트레스를 무의식에 억압하기도 한다.
가령, 우리 팀의 팀장이 나만 너무 싫어하고 자꾸 쪽을 주고 괴롭히면, 그 팀장에게 극심한 분노와 무력감을 느끼지만 무력감을 감당하기 힘들어 무의식에 억압한다.
그래서 그냥저냥 괜찮고 견딜만하다고 느끼게 된다.
정신분석에서는 이런 마음의 방어책들을 방어기제라고 부른다.

문제는 이런 방어기제들이 당장의 정신적 고통이나 긴장은 줄여주지만, 크게 놓고 보면 삶을 조각하는 우리의 작업에 큰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가령, 괴롭히는 팀장의 패악질에도 괜찮다고 여기던 팀원은 어느날부턴가 컨디션이 나빠지고 일에 더욱 집중이 안 되고 자꾸 저녁 먹을 때마다 소주를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내 삶을 위해 계획한대로 삶을 조각하는 일을 자꾸 미루거나, 작업을 할 때도 온전히 몰입하지 못하고 자꾸 잡생각이 많아지게 된다.

마음이 아프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자유로워지는 일이다.
그게 전부다.
읭, 이라고 갸우뚱하기 쉽지만 사실이다.
이 자유에는 우리가 우리의 신체적 자유와 시간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굴레를 끊어내는 일과 정신적으로 남에게 지배당하지 않는 정신적 자유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신체적 자유와 정신적 자유를 얻는 구체적인 방법은 이 글에서 풀기 시작해서는 끝이 없겠지만, 한가지 명확한 것은 마음이 아프지 않기 위해서는 정신적자유 뿐만 아니라 금전적인 속박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금전’ 이야기가 불편한 이야기인 걸 잘 안다.
많은 자기계발서나 인문학 서적들은, ‘돈이 전부가 아니다.’ , ‘돈은 행복과 무관하다.’, ‘돈은 많이 벌어보니 부질없더라.’ 같은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돈이 충분하지 않은 우리가, 시간을 팔아 돈을 버는 우리가 ‘듣고싶어 할만한 말’일 뿐이다.
회사 연말회식에서 부장님에게 ‘부장님 진짜 나이보다 한 10살은 더 어려보이세요.’ 라고 그냥 듣고싶은 말을 던지는 것이란 말이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 중에 돈에 진짜 쪼들리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최소한 ‘돈이 중요하지 않다’ 부르짖는 그 책이나 강연을 열심히 팔아서 돈을 엄청 벌어들이고 있을텐데.
내가 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돈은 행복과 직결되는 문제다.
신체적 자유를 돈과 바꾸는 계약을 맺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진실이 불편하다고 외면하면, 나중에 더 큰 낭떠러지에 서있게 된다.

핵심은, 경제적 자유든 정신적 자유든 마음이 아프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일이다.

아프지 않는 사람으로 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엄청나게 많은 걸 해내고 사는 사람이라고 나는 단언할 수 있다.

자이언티의 노래 가사처럼,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는 아주 긴 이야기들을 통해 내가 들려줄 것이니 걱정마라.

당신의 오늘 하루도 완벽하게 조각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