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의 언어와 당신의 분위기
언어다.
사용하는 언어가, 그 사람의 색깔을 자아낸다.
왜냐하면, 언어는 사고를 결정(최소한 지대한 영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집단마다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
그래서 어떤 무리에 속한 사람이나 오랫동안 거기에 속해있었던 사람은, 그 무리의 색깔이 묻어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경상도에서 태어나 작은 시의 읍 밑에 있는 ‘리’에서, 즉 저기 시골 구석에서 자랐다.
이제는 서울에서 산 지 어언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생각을 하는 언어는 경상도 사투리다.
무슨 말이냐면, 마치 모국어로 생각하고 외국어로 내뱉는 것처럼 머릿속에서는 사투리가 흘러가고 이걸 도시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표준어(비스무리한 걸로) 바꿔서 뱉어낸다는 이야기다.
이러면, 생각도 표준어로 하는 사람과는 풍기는 분위기가 미묘하게 달라진다.
언어는 사고를 반영하고 사고는 곧 행동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니까.
기본적으로 경상도 사투리는 조금, 짧다.
내가 머릿속으로 하는 문장들을 들여다보면 내가 ‘번역’해서 뱉어내는 문장들에 비해 확실히 그렇다.
가령, 무언가를 보고 이상하다고 느끼거나 의문점이 들거나 그 상황이 바로 이해가 안 가서 들여다볼 때 나는 그에 대해 주위 사람에게 묻곤 한다.
“아,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난걸까요? 지나가다보니 상황이 뭔가 사고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해서요.” 이런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 때 내 머릿속에 문장은 조금 더 단답식이다.
‘뭐고.’
이게 별 의미의 차이도 없고 사소한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저걸 알잘딱으로 번역해서 뱉는거랑 처음부터 저렇게 생각하는거랑은 꽤 다른 분위기를 가지게 된다.
사투리 뿐만이 아니다.
각 나라의 모국어를 쓰는 사람들은 당연히 모국어로 쓰는 언어마다 가지는 특징이 다르기 때문에 이는 각 나라 사람들이 서로 다른 사고방식과 느낌을 가지게 되는 핵심적인 요인이 된다.
군대라는 집단에서 살아온 군인들, 아이들을 가르치고 계도하는 집단인 교사들, 창작을 하는 집단인 예술가들, 각 집단은 그들이 주로 쓰는 단어나 표현이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이는 각 집단구성원들이 무리마다 가지는 색깔을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나고 자란 가정의 느낌을 분명히 가지고 간다.
집단의 영향일까, 원래 내 모습일까
왜 이 이야기를 하느냐.
우리가 우리자신을 이해하는 데 이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절대 환경의 영향에서 아무 노력없이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고 우리 자신의 잠재력과 소질을 발견할 때 내가 속한 집단의 영향을 잘 가려내서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
내가 ‘발견’을 자유 파트 직후 단계에 넣어놓은 이유는 자명하다.
우리가 환경의 영향에서 자유로워지고, 진짜 우리 것인지 주위로부터 받은 것인지를 구별할 줄 알아야만 진정으로 우리 자신의 진짜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내가 쿨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냥 내가 속해있던 집단이 쿨한 걸 지향하고 높이 사서 나도 그런 줄 알고 살아왔을 수도 있는거다.
사실은, 나는 섬세하고 작은 걸 배려할 줄 알고 디테일한 상대의 감정을 미묘한 수준까지 파악할 줄 아는 강점이 있는 사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중간정리
중간정리, 같은 걸 한 번 해보자.
삶에서 공허감을 흩날려버리고 후회없는 인생을 살아가려면, 우리는 최고의 자기자신을 조각해야 한다.
그를 위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하고, 우리 자신의 삶이란 곧 우리가 발견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지향하고 실현시키는 삶이다.
그런데 나만의 의미를 발견한다는 게 쉽지가 않다.
이를 위해서는 자유로워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 자유란 신체적 자유와 정신적 자유다.
정신적 자유는 타인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심리적 차원의 자유를 의미하고, 이는 곧 내가 속한 집단으로부터 내 안으로 흘러들어온 것과 내 안에 원래 있던 내 고유의 것을 구분하는 능력을 전제로 한다.
이 글은, 그러한 능력을 기르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사항을 전달하기 위해 썼음을 여기 간략히 밝혀둔다.
헷갈리면,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보길 권한다.
당신의 하루하루를 완벽하게 조각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