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이 개인을 세뇌시키는 메커니즘

타인이 우리에게 가지는 기대와 믿음

타인이
우리에 대해 가지는 믿음은
무엇일까.

내 입장을 대변해주고
나에게 유리한 이야기를 해주면,
인간은
그 주장이 옳은 것이며
그 사람이 현명하고 합리적인 사람이라
생각한다.
인간의 믿음이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기보다는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인 경향이
매우 강하다.
결국 우리에 대한 타인의 믿음이란,
지 맘에 들게 행동하고
지한테 유리하게 말하면
좋은 사람,
아니면 나쁜 사람이라는
정해진 결론 위에
세워진다.

그러니 우리는
타인의 믿음과 기대를 배신하지 않으며 살수록,
자연스럽게
타인들로부터 이쁨받고 인정받는 삶을 살 수 있다.
우리의 모습이
그들의 인생이나 가치관을
늘 지지하는 일종의 증거로서
그들 눈에 비춰질테니까.

권력을 부여하다

집단은 깨달았다.
인간의 이런 특성을
잘 활용하면 되겠다는 사실을.
집단을 구성하는 개인들을
예측가능하고 통제가능하도록
내 입맛에 맞게 길들이기 위한 방법을.

집단은,
정해진 룰대로,
이미 잘 길들여진 기존의 구성원들이 하는 대로,
명령과 규칙에 잘 순종하는 개인들에게
지위와 권력을 부여했다.

이는 곧
순종적으로 굴며 고분고분하게 살면
남들보다 높은 위상을
보상으로 얻게된다는 걸 의미했다.
착실한 모범수가 되면,
그 집단 안에서
더 높은 지위와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잘 길들여진 모범수들이
힘을 가지게 되면서,
그들은
집단의 규율대로 움직이지 않는 이단아들을
좀 더 위력적으로 처단할 수 있게 되었다.
힘을 가진 모범수들은
자신들과 다른 각양각색의 개성 강한 이단아들에게
효과적으로 모욕과 수치를 주고
그들이 손가락질 당하고 비웃음을 사게 만들었다.

이는 실제로
처벌받는 자들에게 큰 고통을 주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진화적인 이유로
남들 사이에서 무시당하고 낮은 위상을 가지는 걸
극도로 두려워하고 고통스러워하기 때문이다.
위상을 곤두박질치게 만들고 나면,
집단의 모든 구성원들은
큰 고민없이 그가 낮은 위상을 가진 사람이라 생각하고
마음껏 조롱하고 멸시했다.
그리고 두려움에 떨며 생각했다.
‘시키는대로 순종하며 눈에 띄지 않아야지.’

왜 힘을 얻은 모범수들은 이단아를 미워했을까

권력을 부여받은 모범수들이
자신의 개성을 따라 살아가려는 이단아를
그렇게까지 미워하지 않았다면,
혹은 그를 처벌하고 싶어하지는 않았다면,
집단이 개인을 세뇌시키는 메커니즘은
지금처럼 효과적으로 작동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집단의 세뇌 메커니즘은
매우 잘 작동했다.
모범수들은
집단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이단아들을 증오했기 때문이다.

왜 그리 미워했을까.
타인이
자기처럼 집단의 룰을 따르든
자신의 개성을 따라 마음대로 살든,
그게 그들과 사실 무슨 상관일까.

상관이 매우 많다.
비루한 자일수록
탁월한 자와 함께 있으면
자신의 비루함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사람들은
불만없이 남들이 하는대로,
집단이 시키는대로 따르면서
만족스럽게 잘 지내는 것 같으면서도.
실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그런 삶이 비루하고 슬프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자신처럼 남들이 기대하고 원하는대로,
집단이 정해놓은 규율대로 살지 않고
자신만의 의미를 찾고자 노력하는 사람을
불편해하고
어떻게든 짓밟고 싶어한다.
심지어 발을 동동 구르며 초조함을 느낀다.

모범수들에게 가장 끔찍한 존재는,
자신들에게 굴종을 종용하는 ‘집단’이 아니라
바로 자신과 다르게
진정한 삶을 살아가려는 이단아다.

평범한 자들의 시기와 질투

앞서 말한 이유로,
평범하게 고분고분 룰을 잘 따르는 사람들에게
탁월한 자들은
가장 악랄한 적이었다.
끝없이
자신의 비루함과 고루함을 깨닫게 만들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괴테의 말처럼,
내 옆에 있는 누군가의 고결함은
나의 품위를 땅에 떨어뜨린다.

이와 관련한 절박함은
생각보다 너무 강력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눈앞에 나타난 탁월한 자는
말 그대로 ‘미친XX’여야만 했다.
어떻게든 그 자는
탁월한 게 아니라
부적응적이고
멍청하고
아둔하며
최악인 인간이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그 자와 대비되는 내가,
실은 그저 초라하고 비참한
꼭두각시처럼 사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의구심을
떨쳐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세뇌당했다

그들의 절박한 몸부림을 보며,
집단은 깨달았다.
순종적인 모범수들에게
권력을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까스로 자신만의 길을 걸으려는 못된 자들을
척결할 수 있구나.

게다가 인간은
타인의 믿음에 쉽게 흔들리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누구나 삶의 의미나 목적을 찾지 못한 채
공허함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모로 인간은,
아주 효과적으로
집단에 세뇌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