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가 시작되는 순간
그 날은 마지막 상담이 있던 날이었다.
심리상담에서는 마지막 상담회기를 ‘종결회기’라고 부른다.
종결회기 날이었다.
그간 내담자가 호소했던 문제들, 그간 우리가 해왔던 상담내용들, 앞으로 상담없이 생활할 때 도움이 될 수 있을만한 사항들, 여러 가지를 준비해서 상담 마지막 회기를 하기 위해 상담실에 앉아 그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는 평소와 비슷한 표정으로 상담실에 들어왔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그간 우리가 해왔던 상담내용들을 짚었다.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종결회기가 다 끝나고, 10분 남짓이 남아 이제 마지막 인사를 나누려던 순간 그는 불쑥 이렇게 이야기했다.
혹시 다른 주제로 더 상담을 연장해도 괜찮냐고.
물론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가만히 날 말없이 지켜보더니, 자신이 앓고 있던(하지만 전혀 내게는 알려주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의 ‘진짜’ 상담이 시작되었다.
여담이지만, 그 후로 그는 나와 1년을 넘게 더 상담을 했고 다행히 앓고 있던 그 문제도 잘 해결하고 상담을 잘 마쳤다.
여기서 중요한 건, ‘진짜’가 시작된 건 우리의 종결회기였다는 것이다.
(그 이전이 무의미했다는 말을 하는 게 절대 아니다.
그 이전의 시간들도 모두 진실이었고 진심이었다.
다만, 그 시간들이 없었다면 ‘진짜’는 절대 우리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
진짜 속마음을 입밖으로 내뱉는 일에서, 모든 것은 시작된다.
죽어도 속마음을 내뱉지 않는 우리
우리는 일상 속에서 절대 진심을 말하지 않는다.
진짜 우리의 생각이나 감정을 숨기고 산다.
왜냐하면, 그렇게 배우기 때문이다.
어릴때부터, 우리는 진짜 속마음은 내뱉지 않아야 한다고 배웠다.
진심을 타인에게 말하면 나중에 그게 약점이 되고, 내 진심이 사람들의 술자리 가십거리가 되기도 하고 등등.
음, 뭐 부정하지 않는다.
사실이다 ㅋㅋ
진심을 입밖으로 내뱉는 순간, 그 진심은 세상에서 평가받게 된다.
(물론 무관심이 가장 먼저 오는 반응일 공산이 크지만, 그 또한 일종의 반응이나 평가다.)
진심을 뱉는 건, 그런 의미에서 분명 위험한 일이 맞다.
하지만, 우리가 진짜 나로서 살기 위해서는 진심을 입밖으로 내뱉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진짜 나로서 존재해야, 삶의 진실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 위험을 자발적으로 감수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최고의 나를 조각할 수 있다.
진짜 속마음이 무엇인지를 잃어버린 우리
굳이 속마음을 입밖으로 내뱉지 않고도 충분히 진짜 나를 찾아갈 수 있지 않느냐,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엔 우리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너무 오래 웅크리고 살았다.
너무 많이 와버렸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하도(이거 사투린가..?) 오랫동안 진짜 속마음을 말하지 않고 꽁꽁 숨긴 채 살다보니, 진짜 마음을 말하는 법을 잃어버렸다.
이런 상태로, 우리가 삶에서 자유를 찾고, 최고의 나를 조각하는 건 불가능하다.
진짜 나로서가 아니라, 어떤 인간상을 흉내내고 가면을 쓴 채 연기하는 삶이 진정한 삶일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더 나간다.
우리는, 내 진짜 속마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실제로, 우리는 내 진짜 마음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사실 어린 시절에 우리는 학교에서 배우지 않고도 내가 뭘 할 때 가장 행복한지 귀신같이 알았다.
아이들은 누구나 다 안다.
무얼 할 때 자신이 가장 행복한지.
보통 그걸 제지하고 만류하는 건 ‘어른’이다.
그렇게 자신의 진짜 마음을 잘 알던 아이가, 자라서 성인이 되면 자기 행복이 뭔지 잘 모르게 된다.
이상하지 않은가.
더 똑똑해지고 현명해지고 성숙해진다는데, 점점 자기가 무얼 하며 살아야 행복한지 모르게 되는거다.
누가 이 아이에게 독약을 먹였을까.
공허한 관계들만이 우리의 삶을 채우고
우리는 ‘관계’가 필요하다.
그 형태가 점점 비대면적으로, 조금 더 느슨한 형태로 바뀌고 있지만 인간은 기본적으로 혼자서만 존재하기는 힘든 존재다.
하지만 세상에는 진정한 의미의 ‘관계’가 과거에도 없었지만 더욱더 찾아보기가 거의 불가능해지고 있다.
섬세하게 찬찬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우리가 맺는 대부분의 관계는, 사실 진짜가 아니다.
압도적인 대다수 사람들의 삶에서, 내 진짜 속마음을 아무 거리낌없이 나눌 수 있는 관계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부모님과의 관계도, 형제자매와의 관계도, 배우자와의 관계도, 자식과의 관계도, 절친과의 관계도 예외는 아니다.
하물며 학교에서 같은 반, 같은 전공, 같은 동아리에 있고 회사에서 같은 부서, 같은 건물에 있다고 해서 시간을 많이 쏟는 일은 의외로 공허한 마음을 키울 때가 많다.
각자가 느끼는 공허함, 외로움이 일상 속의 관계에서 해소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진짜 속마음을 입밖으로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숨죽이고 눈치를 살피며 다수의 생각과 이야기가 내 의견인 것처럼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맞장구를 친다.
내 진짜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대신.
그 누구와도 진심이 서로 가닿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공허한 관계가 거의 사는 평생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진짜 관계를 경험하지 못하고 평생을 살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진짜 속마음을 내뱉는 일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하지만 이러한 지경에서, 나는 지금 진짜 속마음을 내뱉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얼마나 그런 일이 우리 삶에서 일어나지 않는지, 그게 얼마나 위험하고 누구나 두려워하고 힘든 일인지 알지만 그럼에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진짜 속마음을 내뱉는 일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타인에게 어렵다면, 혼자 있을 때 나 자신에게 먼저 진심을 내뱉고.
궁극적으로는, 온세상에 내 진짜 마음을 선보여야 한다.
진짜 나로서 존재하는 것만이, 삶에서 최고의 나를 조각하는 유일한 길이다.
우회로는 없다.
그리고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하는 대신 진짜 나로서 세상앞에 서게 되면, 진짜 관계를 경험할 수 있다.
(좋은 리더가 운영하는 ‘집단상담’에 가면, 진짜 관계에 대한 새로운 세상, 소위 ‘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단, 리더가 목표와 소신이 확고한 훌륭한 전문가여야 한다.)
두려워할 것 없다.
우리가 진짜 속마음을 세상에 보여줘도, 의외로 별 일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진심을 담은 말과 행동과 작품이 세상에 나오면, 반드시 우리와 공명하는 사람이 우리를 그냥 지나치지 않게 된다.
진심과 열정을 담은 배우의 연기가 우리를 사로잡듯이, 반드시 우리의 진심을 느끼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것이 그간 도처에 퍼져있는 가짜 관계와 가짜 인생의 가면을 깨부숴버리고, 진짜 관계와 진짜 나 자신을 조각해나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