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같은 세상에 태어난 자의 운명

그의 이야기

‘해수’는, 열심히 살았다.
참고 또 참았다.
좋은 자식이 되고자.
좋은 학생, 친구, 동료가 되고자.
결혼도 했다.
직장도 번듯하게 잡았다.
돈도 모았다.
하지만 불행했다.
부모가 아팠다.
작년부터는 아이도 아팠다.
난 시간을 팔기 때문에 곁에 있어줄 수 없다.
매일 연기를 했다.
애써 웃고, 아파도 괜찮은 척, 힘들어도 안 힘든 척.
몇번을 연기를 했을까.
언젠가부턴 내가 연기를 한다는 느낌이 없어져버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나는,
좋은 팀원, 좋은 학벌에 좋은 직장을 가진 착한 아들, 최고의 남편이고 아빠였지만.
나는 언젠가부터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졌다.
아니, 너무 지쳤다.
아니, 뭔가… 진절머리가 났다.
뭐 땜에 그런거지?
다 가진 난데.

애써 나를 위안했다.
‘아마 좀 요즘 바빠서 그럴꺼야.’
그러던 차에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아이가 아픈 탓에 자주 자리를 비워서 그런건가, 하고
혼날 마음의 준비를 하고 부장실로 들어갔다.
‘해고’.
회사 상황의 어려움을 말하며, 그는 내게 사직을 권고했다.
16년이었다.
… 문득 퇴직 이후를 준비하느라 정신없던 선배들이 생각났다.

아이가 눈에 밟혔다.
아파서 우는 아이의 눈동자로 수척하게 쳐져 있는 내가 보였다.
엄마는 오늘도 애기는 좀 괜찮냐며 전화를 했다.
당신도 많이 아프면서.
아내도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듯 했지만, 힘겨움이 느껴진다.
괴롭다.
회사에선 일단 권고사직을 고사하고 당분간이라도 버티기로 했다.
눈치가 보여서 회사에 나가기가 힘들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가만히 돌아보니 나는…
하루하루가, 매 시간 매 초가 두렵고 불안하고 힘겹다.
고통의 연속.

… 시키는대로 열심히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았는데,
왜 이렇게 버겁고 힘들까.
나는 무얼 잘못한 걸까.

인생이 지옥같은 이유

… 안다.
아직 학생인데,
난 무직인데,
알바도 구하기 힘든데,
취업은커녕 학자금도 못 갚고 있는데,
난 몸도 아픈데.
나는 ‘해수’보다도 훨씬 더 시궁창인데.

하지만 다행히 가까스로 병을 고치고,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학자금도 갚고 돈도 모아도,
다시 말해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목표를 다 이루고 나도,
그런 것들이 무색하게, ‘해수’처럼 똑같이 저렇게 불행할 가능성이 높다.
그게 지금 이야기한 ‘해수’의 노력에 대한 결과다.
아니, 아마 우리 모두가 열심히 노력하고 나면 얻게 될 결과다.

이룰 거 다 이루고 결국 누구나 원하는 걸 다 얻어냈는데,
여전히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결말.
… 언젠가 당신에게 저런 상황이 닥치면,
당신은 오히려 열심히 살며 참고 견뎠던 세월이 원망스럽고 억울해질지도 모른다.

왜 그럴까.
왜 그렇게 되어버리는 걸까.
그리고, 지금 우리는 왜 이런 걸까.

원인이 우리에게 있지는 않지만,
해결은 우리가 해야 한다.
그게 바로,
인생의 잔혹함이자 지옥같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