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자유를 얻는 일

최고의 자기자신을 조각한 사람들

최고의 자기자신을 조각해
세상에 널리 알려진 수많은 위인들은
대개 주위 사람들이 가진 삶에 대한 믿음대로
그런 모습의 삶을 살았던걸까.
아니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절대 그게 가능할 리 없다고 말하는 것들에 대해
오롯이 혼자의 믿음으로,
세상 모두의 반대와 상반된 믿음을 부숴버리면서
무언가를 창조해낸걸까.

어쩌면 그렇게
세상 모두의 확신을 깨부숴버리고 나서,
뒤늦게 세상 사람들이
‘아, 저게 되는 일이었구나.’라며,
사후적으로 위인들을
위대한 사람이라 믿기 시작한건 아닐까.

타인의 믿음과 나의 믿음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믿음을 가지고
누군가를 평가하거나 어떠한 상황을 판단하면,
실제로 그렇게 흘러가는 것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그 믿음의 대상이 되는 존재가
그 믿음에 영향을 받기로
스스로 결정했을 때다.

그래서
우리자신의 믿음이 중요하다.
타인의 믿음은
그 타인의 수가 많을수록
마치 우리에게 영향을 미쳐 우리를 바꿔버리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1912년 국제육상경기연맹이 세계기록을 관리하기 시작한 이후,
육상 100m 달리기의 마의벽은 언제나 10초였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선수들이
10초 초반대까지 밀어붙였으나
인간이 100m를 10초 전에 주파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모두가 믿었다.
하지만 56년이 지난 후,
짐 하인즈 선수가 9초대로 100m를 주파해버렸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인간의 한계라 믿었지만,
그는 타인들의 믿음 대신 자신을 믿었다.
재밌는 건,
그 일이 있고 나서 우후죽순
다른 선수들도 10초라는 마의 벽을
넘어버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타인의 믿음은 강력하지만,
그 믿음은 오직
남의 눈치를 보고 순종적인 자에게만 유효하다.
그래서
우리가 타인의 믿음에 따라
우리의 믿음을 바꾸기로 결정하지 않으면,
타인의 믿음은
사실 아무런 힘이 없다.

이제 믿음을 깨부술 차례다

당신은 이 레벨에서 알게 된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한가지 믿음을 깨부숴야 한다.
그건 바로,
‘남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하다.’는 신념이다.
진화적으로 우리 뼛속 깊숙이 새겨진
이 잘못된 믿음은,
먹는 족족 지방을 늘리고
매일 단 음식만 찾아다니는
인간의 진화적 본능보다
100배는 더 해롭다.

이미 우리는
인간이 어떤 마음으로
타인을 평가하고 판단하는지 알고 있다.
인간은
전혀 합리적이거나
타당하거나
현명한 방식으로 상대를 이해하지도 못할뿐더러
사실 타인에게는 일말의 관심도 없다.
한없이 편협하고 속물적인 관점으로 타인을 평가하는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그저 두려움과 시기심이 전부다.
쇼펜하우어의 말마따나,
속물들은 탁월한 정신적 능력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애써 감추던 열등감과 은밀한 시기심이 새어나와
고요한 원망감과 혐오감을 느낄 뿐이다.

타인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정말이지
우리 인생에 하등 무의미하다.

정신적 자유와 해방의 놀라운 경지

타인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전긍긍하는
‘인간적인 굴레’에서 자유로워지면,
인간은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억지스럽지 않은 자연스럽고 편안한 모습으로
늘 존재하게 될 것이고,
인간이 집착하는 거의 모든 것들에 대해
전혀 지배당하거나 휘둘리지 않는
의연하고 당당한 존재가 되어갈 것이다.

물론, 마음의 각오는 단단히 해둬라.
세스고딘이 말한 것처럼,
사람들은 이단자를 어떻게든 화형시키려고 하니까.
당신을 어떻게든
흠집내고 끌어내리고 싶어할 것이다.
아마 타인의 평판에 매달리고
절절 매는 습관을 끊는 건,
탄수화물 중독이나 라면 중독을 끊는 것보다
10배는 어려울수도 있다.

하지만 그 중독성이 아편수준이라한들,
마약중독자가 마약을 끊어야하듯이
결국에는 끊어내야 하는 일이다.
적어도 지옥같은 세상에서 살아남아
최고의 자신을 조각해
원하는 삶을 누리고자 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