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미쳐버린 사람들
2021년 실시한
미국여론조사기관 조사결과에 따르면,
설문대상 17개국 중에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돈’을 꼽은
유일한 국가는 한국이었다.
다른 17개국의 평균결과는
1위가 ‘가족’이었던 걸 보면,
겉으로만 그저 가식을 잘 떨어왔을 뿐
우리는 유독 돈에 미쳐가는 중인 것 같다.
이는
자살률과 출산률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추세를 보이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제 우리는 알게 되었다.
돈이 상징하는 것들을.
그래서 우리는
이제 왜 우리나라가
이렇게 돈에 미쳐버린건지도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는 돈에 미친 게 아니라
타인이 날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하는지,
즉, 남의 시선, 남눈치에 미쳐버린 나라다.
내가 얼마나 비싼 집에 살고,
연봉이 얼마고,
어떤 집안의 사람과 결혼했고,
어느 지역에 살며,
어떤 직장에 다니고,
해외여행을 얼마나 자주 가고,
어떤 차를 타고,
어떤 옷을 입고,
얼마나 비싼 걸 먹는지,
내 아이가 얼마나 좋은 곳에 다니는지,
이 모든 것들은
사실 돈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과 평판에 관한 문제다.
직관적으로 딱 수긍이 가지 않나.
왜이리 객관적으로, 물질적으로
그 짧은 시간에 그렇게나 많이
풍요로워지고 살기 좋게 발전했는데
이렇게까지 주관적인 삶의 행복도가 낮은가.
왜 이렇게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많고
자식을 낳는 걸 꺼리는 극단적인 사회가 되었나.
간단하다.
남이 날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목숨을 걸기 때문이다.
금욕주의의 기만
돈에 허덕이고,
주위 사람들보다 연봉도 적고
빚은 많고
변변찮은 자산 하나 없는 사람들에게
소위 ‘위대한 멘토’들은 늘 말한다.
“과도한 욕심은 스스로를 괴롭힐 뿐이니,
물욕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워라고.”
이건 사실
모든 종교의 공식이기도 하다.
욕심의 크기를 줄이면,
자연히 그 욕심에 의해
일어나는 고통과 번뇌도 줄어든다는 것.
하지만 이 이야기는 틀렸다.
오랜 종교적 전통과
과거 현인들의 지혜에 담겼던 정수는
온데간데 없이
껍데기만 차용되고 있다.
지금 이시대의 ‘전문가’들은,
그저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듣고싶어하는 말을
앵무새처럼 떠들어댈 뿐이다.
원하는 게 있고
그걸 갖고 싶어서 돈을 갈망하는데,
거기서 ‘참아라’는 이야기가
왜 나오는건가.
그들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
원해봤자 스트레스만 커지니
그냥 단념해라는 말을
보기좋게 포장할 뿐이다.
이 시대에 회자되는 금욕주의는
틀렸다.
정신적 자유가 부르는 풍요
지금 여기서,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원하는 것에 돈을 쓰는 건,
그게 얼마나 큰 돈이 들어가는 것이든
무조건 옳다.
원하는 게 있지만
원하는대로 족족 다 돈을 쓰면 안된다는 식의 기만은
거짓이다.
실은 원하면서 원하지 않는 척 애써 외면해라는 건,
단념하고 포기하라는 건,
위선이고 도망이다.
우리는 이미
해답의 실마리를 알게 되었고,
해답의 코앞까지 다다랐다.
돈은
곧 타인의 시선이자
부러움이고
갈망이며
우월감이다.
돈은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가지는
지위이자
위상이다.
그런데 인간이
타인의 시선에 민감한 존재로 진화해온 역사를
이해하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돈에 대한 갈망은
사실 우리가 바라는 것이라기보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파생된
부수적 결과일 뿐이다.
이 사실을 이해하고
정신적으로 타인의 평판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우리는
더이상 지출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돈이 있어봤자
쓸 데가 없다는 이야기다.
이게 바로
우리가 진정으로 도달해야 할 목적지다.
쉽게말해,
정신적 자유를 얻고 나면
그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돈을 쓰려는 짓거리 자체를
안하게 된다.
남에게 인정받으려,
잘보이려,
이쁨받으려 애쓰는 짓을 관둔다면,
당신은
그 어느때보다 급속도로 부유해질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우리는,
돈을 도대체 얼마나 벌어야
궁극적인 수준의 행복을 누릴 수 있을지
명확히 알게 된다.
그건 바로,
시간을 팔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걸 다 할 수 있는
딱 그만큼이다.
물론 이 때 ‘원하는 것’에는,
남들에게 잘보이고 싶은 허영심 때문에
얻길 원하는 것들이 하나도 없는 개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