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이 낮아지는 우리의 숨겨진 비밀

“아, 요즘 자존감이 바닥이야.”

이런 이야기가 심심찮게 귀에 들린 지 몇년 된 거 같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자존감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고, 많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심리학에서는 이걸 ‘자아존중감’이라고 부른다.
내 존재의 가치와 잠재력에 대해 가지는 기대, 믿음 같은거다.
나라는 사람의 가치는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가.

저 질문이 실제 어떠한지를 묻는거라면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아마 주위 사람들, 사회, 소속된 집단, 문화 등 타인이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정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최근에 자존감이 떨어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타인의 반응을 목격했거나 경험했던 경우가 많다.

놀라운 비밀을 하나 말할까 한다.
충격적이게도, 우리의 가치는 주위 사람들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너무 교과서에 자주 나오는 진부한 말이라 당황했을지도 모르겠다.. ㅋㅋ
안 믿기겠지만, 사실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 말을 책에서도 보고 유튜브에서도 듣고 강연에서도 듣는데 왜 그게 와닿지 않을까.
왜 우리는 여전히 상사에게 깨지고 내 뒷담화를 전해들으면 자존감이 낮아지는 거 같을까.

그렇게 진화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주위 사람들의 비위나 눈치를 살피지 않고, 부족의 우두머리 눈밖에 나고서도 죽지 않을 수 있게된 시기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인류가 출현한 이래 거의 모든 시간동안 개인은 절대 자기가 속한 부족의 룰이나 기득권층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됐다.
부족무리에서 벗어나 혼자 행동하면 결말은 뻔했다.
어디 짱박혀서 자다가 산짐승을 만나 물려 죽거나, 어디 잘못된 곳에 빠져서 못나와서 죽거나.
이래나 저래나 혼자 살아남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부족장이나 부족의 집권층의 미움을 사면, 부족에서 쫓겨나 죽게되는 게 너무나 자명한 수순이었다.

지금 이 시대에 생존해있는 우리들의 조상 중에, 쿨하게 부족장 말을 어기고 혼자 산딸기 따러 무리에서 벗어나고 남이 날 싫어하든 말든 개무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러던 애들은 우리 조상이 되지 못하고, 자손을 못 남긴 채 어느 시기엔가 결국엔 죽어 사라졌을테니까.
진화란 그런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남 눈치를 보고 남이 날 보고 뭐라고 하는지에 예민한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죄다 그런 애들만 살아남아 자손을 낳고 길러온 시기가 어마무시하게 길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애’들의 ‘애’다 ㅋㅋ

결국 우리가 남눈치를 보는 건, 애초에 그렇게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화는 매우 더디고 큼직하다.
빠르고 디테일한 인간문명의 발전과 현대사회 환경을 정확히 반영할만큼 섬세하지 못하다는 의미다.

지금 우리는 이제 그런 세상에서 벗어난지 오래다.
사회와 문화는 모나면 안 되고 튀어서도 안 되고 니 생각을 남들 앞에서 말하지 말고 그저 조용히 숨죽여 남들이 하는 걸 비슷하게 따라 말하면서 지내라고 말한다.

그건 지배하는 입장에서는 구성원들이 그렇게 순종적이고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서로가 서로를 속박하는 게 가장 통제하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각자의 입장에선 그걸 곧이곧대로 따르기엔 문제가 생긴다.
아까 말했듯이, ‘자존감이 떨어진다.’
남들의 반응이나 판단에 의해서.
타인에 의해 내 존재가치가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건 꼭두각시 인형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실제로 우리 각자의 가치는 누군가의 변덕스럽고 합리적이지도 않은 생각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그따위 꺼는 사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그들이 뭐라고 말하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우리가 그것에 쩔쩔매게 진화해왔다고 해도 그걸 따를 이유는 없다.
포도당이 중요 급원이라서 달달한 맛만 나면 좋아하는 우리가 그럼 맨날 혈당을 치솟게하는 꿀 듬뿍 찍은 식빵만 허구한날 먹다가 당뇨로 사망할 순 없지 않나.

하지만 사람들은 의외로 당뇨가 심해질만큼 달달구리한 음식만을 찾는 건 나쁘다 생각하면서도, 정신이 망가질만큼 남눈치를 보고 남의 비위를 맞추려고 굽신거리는 건 의외로 나쁘다고 자각하지 않는다.
그저 힘들다고 생각할 뿐이지.

내가 딱 말해주겠다.
그건 ‘나쁜거’다.
윤리적으로 옳고 그르고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냥 남의 비위를 맞추느라 애써 웃고 내 생각을 감추고 가면을 쓰고 남들이 하는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건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나쁜 일’을 하는거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게 되지 않나.
그렇게까지 해서 얻고자 하는 게 무어란 말인가.
남들의 칭찬? 썩 좋은 사람이라는 인정?
끊임없이 남들이 날 어떻게 보는지만 눈치보며 살다가는.
삶에는 ‘공허함’만이 더욱 번져가고, 진정한 자유와 의미, 행복은 절대 찾아오지 못할 것이다.

진화를 남눈치를 보는 모냥으로 해왔다는 것 외에 하나 더 있다.
우리가 끝도 없이 남의 눈치를 보고 남의 평가에 휘둘려 자존감이 낮았다가 높았다가 휘둘리는 이유가.

그건 바로 우리가 우리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 채 살고 있다는 데 있다.
남들에 의해 내 가치가 결정되지 않는다는 걸 진심으로 받아들인다고 치자.
그러면 이런 질문이 날아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니 존재의 가치는 뭔데?”

근데 내가 내 가치가 무엇인지, 내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본적도 없고 모르겠다.
도무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가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거다.
“… 너 그렇게 안 봤는데,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보기보다 별로네 너.”

크윽.
자존감에 타격이 팍 간다.
어차피 난 내가 무슨 의미가 있고 어떤 가치가 있는 존재인지 모르는 상황인데 누가 와서 그 문제의 답은 00이야. 하고 알려주는 형국이니까.

그러면 결국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자신의 삶이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지 발견해야 한다.

그래서 ‘발견’하는 단계가 필요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더 자세히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테지만, 지금 여기서 명확하게 말하고 싶은 건 이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가치를 모르고,
타인들은 끊임없이 우리를 판단해대고,
우리는 남눈치를 오지게 보게 진화해왔고,
고로 우리는 타인에 의해 자존감이 휘둘리며 산다.
하지만,
사실 그따위 꺼 신경쓸 이유가 전혀 없다.

(남한테 이쁨받아야 생존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