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체의 활약
편도체는
걱정이나 불안함, 그 무엇이든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할만한
아주 사소한 자극에도
극도로 보수적인 반응을 한다.
그것도
그게 다 사라질때까지.
그러면 우리는
계속 스트레스 상태로 부정적 감정을 겪으며
하루를 보내게 된다.
물론 인간은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
예민하게 대응하도록 진화했다.
그래서 이런 반응은
적어도 원시시대의 수십만년 동안은
현명한 반응이었다.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시대에도
편도체는 여전히 보수적으로 반응한다.
즉, 맹수를 마주쳤을 때나
괴한을 마주쳤을 때가 아니라도,
담임선생님이 표정만 차가워도,
상사가 기분만 안 좋아도,
길가다가 덩치큰 사람과 눈만 마주쳐도,
우리는 똑같은 스트레스 반응을 보인다.
나아가, 이제는
내일 화가난 친구와 만날 일을
아주 잠시 상상만 해도
불안함이 편도체를 작동시키고,
내가 심장이 뛰고
살짝 호흡이 빨라지는 스트레스반응을 보이면
편도체는
그 스트레스 반응을 보고
또 2차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는
무한루프를 시전한다.
여전히 맹수가 득실거리는 시대
이제 더이상 인간은
일상 속에서 맹수에게 목을 물려 죽을 일은 없다.
하지만 오히려
작고 사소해서 생명에 위협을 가하지는 않지만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일들은
원시시대보다 훨씬 많아졌다.
원시시대에 비해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여러 형태의 접촉을 하며
원하든 원치않든 다양한 관계를 맺게 되고,
문명이 발전하면서 사회가 복잡해지고
이는 개인들이 정말 수만가지 일들을
인지하고 반응하고 엮이게 만든다.
문제는,
편도체는 여전히 맹수들과 살던 원시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편도체는 모른다.
무엇 때문에 우리가
불안이나 위협을 느끼는지.
그저 조금이라도 걱정거리가 오면,
원시시대에도 그랬듯
즉각적으로 온몸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비상사태용 스트레스 반응을 만들어낸다.
인사이드아웃2를 얼마 전에 봤는데,
거기에 나오는 ‘불안이’와
굉장히 유사한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열대우림에 사는 것도 아닌데
하루에도 수백번
맹수를 마주칠 때나 했을법한 스트레스 반응을
일으키며 산다.
그런데 이 스트레스반응은
애초에 일단 살고 봐야 해서
몸의 모든 내분비계와 신경계 등
신체전반적인 체계를 전시상태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균형적인 상태가 아니다.
그럼에도 반복적으로
이런 계엄령을 반복적으로 선포해대면,
우리의 몸은 균형을 조절하지 못하고
점점 망가져버린다.
그리고 이게 지금
현대사회를 사는 절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운동은 불안을 줄인다
운동을 하면
우리를 늘 괴롭히는
불안, 걱정, 공포와 같은 감정들을 해소시켜
평온하고 안정적인 마음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운동은
뉴로펩타이드Y라는 신경전달물질을 만들고
분비를 촉진시켜
우리의 마음상태를 안정시켜준다.
이는 트라우마와 같은 큰 사건에 대한
심리적 장애에도 효과적이지만,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불안들을 경감시키고
마음을 회복하는 데도 효과가 있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하루에 30분 주 3회 남짓의
적당한 강도로 하는 운동만으로도
충분히 우리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불안을 이겨내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우울할 때도 운동은 우리의 마음을 정화한다
불안의 시대는
곧 우울의 시대다.
사람들은 단기적인 스트레스에는
불안해하고 걱정하고 초조해하지만,
만성적으로 지속되는,
그럼에도 해결되지 않는 불안은
결국 우울을 가져온다.
우울할 때도 운동은
우리의 마음을 청결하게 해준다.
운동은
베타-엔돌핀을 증가시키고
세로토닌 분비를 안정화시켜
우울함을 줄이고
마음이 편안하게 만든다.
그리고 항염증 작용을 일으켜
두뇌의 염증수준과 연관성이 있는
부정적 감정수준의 해소를 유도하고,
뇌신경영양인자의 분비를 촉진해
전체적인 정서상태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킨다.
강인해진 신체는 더 강인한 정신을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했다.
그건 전적으로 맞는 이야기다.
그리고 신체가 강인해질수록,
정신도 분명 강인해진다.
충분한 여유와 넘치는 에너지의 신체는,
약해진 정신도 다시금 원기를 되찾고
활력을 지닐 수 있게 만드는 그릇이 되어준다.
운동은
수없이 많은 단련을 통해
신체를 강화시킨다.
이렇게 강인해진 신체는,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어떤 상황에서도 의연하게
버티고 이겨낼 수 있는 강인한 것으로
바꾸어나간다.
몸과 마음은,
결국 하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