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을 통제하는 방법

우리는 혼자 있는 걸 두려워한다.
1인 가구가 이렇게 늘고 다들 혼자 사는 개인이 된 마당에 무슨 소리냐, 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그렇기 때무네, 전화하는 게 부자연스럽다는 어린 친구들조차도 끝도 없이 DM하고 카톡하고 그러는 거라고 본다.

왜 우리는 혼자 있는 걸 두려워할까.
혼자 있으면 외롭기 때문이다.
세상을 혼자 살아간다는 건, 불가능하기도 하지만 외롭고 고독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야기가 있다.
외로움은 술, 담배보다도 더 건강에 해롭다고.
한 연구에 따르면, 외로움은 매일 담배 15개피를 피는 것보다 더 해롭고 심지어 만병의 근원인 비만보다도 2배 이상 해롭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외로움을 측정하는 척도와 외로움을 얼마나 세분화해서 문항화했는지에 대해 하나하나 따져물으려는 건 아니지만.
실제로 외로움과 관련된 각종 연구들을 보면, “내가 잘 아는 사람과 일정 빈도 이상 만난다” 이런 식으로 설문조사 문항이 만들어져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잘 아는”… 이라…)
이런 논문이나 통계적 연구방법론을 철썩같이 믿는 사람들은 좀 더 기초적인 차원에서 척도설계와 표본설계, 통계방법 등을 면밀히 살펴보길 권한다.
비허위적 관계(Nonspurious relation)가 맞는지, 이런 연구에서 얼마나 통제변수가 잘 통제되는지,에 대해서도 찬찬히 잘 생각해보길 권한다.
(자, 이번 글은 이제 연구, 통계 이런 이야기 더 안 한다 ㅋㅋ)

한 번 생각해보자.
외로움이 진짜 담배 15개피를 매일 피는 것보다 해롭다고?
내가 담배를 피진 않지만, 저건 헛소리다.

일단, 인간은 누구나 외롭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다.
외로움은 사실 거의 모든 부정적인 정서에 수반되는 감정이고, 곁에서 타인이 대신 해결해줄 수 있는 그런 만만한 녀석도 아니다.
‘잘 아는’ 사람을 자주 보고 산다고 해서 그가 덜 외롭다고 보기는 힘들다.
자신의 분야를 평생 연구하며 홀로 지내는 누군가는 서로 ‘도원결의’를 외치며 매달 100명 이상의 ‘진짜 친구’들과 어울리는 누군가보다 훨씬 덜 외로운 삶을 살수도 있다.

외로움을 달래보고자 누군가와 친구관계를 맺고, 자주 만나고 술잔을 기울이는 건 사실 공공연한 비밀이다.
하지만 막상 그런 사람도 상대방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자신을 찾는다는 걸 알면 입맛이 쌉싸름할지도 모를 일이다.
당신의 연인이, 알고보니 외로워서 당신을 곁에 두고 있다고 한다면.
그런데 당신은 상대방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면, 당신은 더없이 외로워질지도 모른다.
외로움을 잊어보려고 다같이 모여 자주 놀러도 가고 회식도 하는 삶이, 과연 정말 그들의 외로움을 해소시켜주긴 하는걸까.
아니면, 그저 마취총을 맞는 것처럼 아주 잠시 마비가 되는걸까.

일단 외로움이 이렇게 여러 양상을 지니고 사람마다 다 기준도 정도도 느낌도 다른 관념이라는 걸 머리에 넣어두고 조금 더 생각해보자.

외로움을 서로 달래며 살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와 관계를 맺고 외로움을 잊기 위해 이 관계가 달라지지 않도록 계속 신경을 써야 한다.
난 외로우니까, 이 관계가 계속 이대로 잘 이어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사실 이 문제는 우리가 맺는 모든 관계의 근본적인 문제다.
우리는 우리와 관계맺는 사람들에게서 소외당할까봐, 내쳐질까봐 전전긍긍한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이 날 미워하거나 적대하지 않도록 내 진심을 숨기고 솔직한 표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안 괜찮아도 괜찮은 척 한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가 내 생각과 일치하는 척 그들이 하는 말을 똑같이 읊는다.
실은 크게 재미없어도 리액션을 하고, 속으로는 동의하지 않는 말에도 고개를 끄덕인다.

이렇게라도 많은 사람들과 가까이서 어울려 지내면, 정말 외롭지 않게 되는 것일까.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외로움은 분명 한결 해소된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에서 접하는 절대다수의 관계는, 미안하지만 절대로 외로움을 해소해줄 수 있을 정도의 ‘진짜’가 아니다.
그럴 수가 없지.

일단 인생 대부분의 관계는 그저 비슷한 인생루트와 비슷한 공간에 처해있게 되는 ‘바람에‘ 그냥 친해진 관계인데.
집단관계라면 더욱 말할 것도 없다.
그 집단에서 당신이 얼마나 진정한 유대감과 공감, 아늑함을 느끼며 내면 깊숙이 자리잡은 외로움을 해소할 수 있을까.
그저 같이 비슷한 곳에 떨어졌다는 이유로 맺어진 관계일 뿐인데.
물론 그럼에도 벼락맞을 확률로 삶의 진정한 친구를 만나는 경우가 없진 않겠지만,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진정한 관계의 핵심은,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연기하지 않는 것.
내가 진짜 나의 모습을 아무 주저함이나 고민없이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낼 수 있는 것.
이런 관계는 삶에서 그리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식도 부모 앞에서 온전히 다 드러낼 수 없고, 부모도 자식 앞에서 매한가지다.
연인도 배우자도 말할 것도 없다.
친구는 더욱더 말할 것도 없다.
집단은? 에라이 그건 그냥 포기해라.

삶에서 그런 소중하고 천운이 따르는 관계는 많아야 한 두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관계를 삶에서 가져가기 위해서는 다분히 용기를 내고 노력하고 배려하고 애써야 한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그 양반은, 평생 쉽지 않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접근하면 되는 관계는, 타인과의 관계가 아니라 나 자신과의 관계다.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는 그 접근이 통한다.
하지만 타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기자신에게조차 그렇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거의 없다.
지가 지한테도 안 그러는 걸 남한테 하는 건 선넘는거지 ㅋㅋ

사실 인간은 자기자신과만 진정한 관계를 잘 맺어도 평생 충분히 외롭지 않게 삶을 조각해나갈 수 있다.
내가 어떤 순간에 행복한지를 알고, 도저히 내 마음의 일부라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도 있는 그대로 애정을 가지고 잘 받아들여주고, 내가 가진 재능과 잠재력을 두려움을 딛고 잘 세상에 드러날 수 있게 자기자신의 하루하루를 조각해나간다면.
그에게 외로움이나 공허함은 찾아오지 않는다.
대신, 매순간이 자유롭고 의미있고 자랑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우리 모두가 살았으면 하는 조각가의 삶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결국 관건은, 잘 아는 친구녀석들과 자주 보는 게 아니라 나 자신과 진짜 관계를 맺고 내 삶을 잘 조각해나가는 일이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외로움을 잘 극복하며 삶을 채워나갈 수 있다.
거기에 만약 같은 삶의 방향을 바라보는, 하지만 서로 진솔할 수 있는 그룹에 소속될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겠지.

사실 그런 그룹, 크게는 마을을 만드는 건 내 계획 중 하나다.
그건 내가 할테니, 우리 각자는 우선 우리 자신과 좀 더 진솔한 관계를 맺어나가는 데 집중하자.

어차피 우리가 삶의 고유한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거쳐야 하는 과정이니까.

당신의 하루하루를 완벽하게 조각해나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