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
부모에게서 자식이 물려받아
무언가가 대를 이어 내려오는 걸 말한다.
DNA와 생물학이 곁들여지다보니
그리 재밌다고 환영받는 주제는 아니다만,
다행히 지금 말할 건 그런 건 아니다.
내가 지금 말하려는 이야기는,
그저 마음에 관한 것이니까.
소통방식
소통하는 방식, 스타일은
유전된다.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저게 다다.
당신이
친구,
동료,
연인,
선생님,
가족
주위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식은
아주 높은 확률로 유전된다.
적어도 유전된 후 변형된다.
여기서 소통이라는 건,
타인과의 소통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나자신과의 소통을 의미하기도 한다.
자기자신에게 유독 엄격한 사람
뭐 그런 걸 생각해보자.
당신이 당신 스스로에 대해
꽤 엄격하고 가혹하게 구는
스타일이라면.
왜 그런걸까.
대부분은 내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서,
라고 이야기들을 한다.
문제는 왜 그리 나에게
유독 기대치가 높냐는 것이다.
물론 여러가지 이유가
존재하지만,
자기자신이 힘들어하는 걸
그다지 가엾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각자의 삶에 도사리는 이유와 절박함을
하나의 일률적인 관점에서 단정지을 순 없다.
누군가는
내가 내 가족을 이끌어나가야만 하고,
이 빚을 나라도 꼭 갚아야만 하고,
이 병에서 어떻게든 벗어나 아이를 지켜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하고 엄하게 구는 건,
대개 내가 힘들고 지치는 게
그렇게 크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말이 좀 길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기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잘 모른다.
자신이 힘들고 외롭고 지칠 때,
스스로를 위로해주지는 않는다.
곁에 있는 다른 사람이 힘들어하면
잘 다독여주고 이야기도 들어주면서,
내가 두렵고 불안해서 외치는 비명은
들은 채 만 채 경청하지 않는다.
요즘 사회가 각박하다면서
길가에 칼맞고 피흘리면 보고서도
못본 척하고 지나가지 않나.
그거 사실 예전이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50년 전에도, 200년전에도,
인간은 자신에게 위해가 될 거 같은 일은
그게 어떤 일이든 어지간해선 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걸 자기자신에게도
그렇게 한다는거다.
길가에 피흘리며 쓰러져있는 나를
내가 본둥 만둥 못본 척 지나가버린다.
소통방식의 유전
이런 스스로에게 유독 엄격하고 가혹한
사람들은 세상에 매우 많다.
그 원인도 여러 가지,
양상도 여러 가지이나,
나는 지금
자기자신의 나약하고 연약한 모습을
보다듬어주지 못하는 태도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다.
(오늘 주제는 그거니까..? ㅋㅋ)
자.
이런 소통의 방식이나 태도는,
유전된다.
자기자신과의 소통방식이 저러하다면,
이건 유전이 된다.
당신이 당신의 아이를 키운다면,
당신의 아이도 그 방식을 물려받는다.
아이는 세상과 처음 마주하면서부터
부모의 소통방식을
말하는 법, 말을 듣는 법이라 느끼며
그걸 그대로 내재화한다.
이럴 때 대개 던지는
‘진절머리가 나서 난 부모랑 전혀
반대인데요..? ‘
라는 말은,
유전을 운명으로 잘못 이해해서 하는 이야기다.
부모가 대장암이었다고
자식이 대장암에 걸리지 않고,
부모가 서울대 교수라고
자식이 좋은 대학에 가는 건 아니다.
… 하지만 그럴 소지는 다분하다.
부모가 스스로에게 가혹하고
자기자신의 연약한 면을 감싸안을 줄 모르면,
자식도
자기자신이 살다가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스스로 자신에게 위로를 해줄 줄 모를
소지가 다분하다.
유전은 반복된다
개인상담에서 내담자들이 종종 묻는 질문 중 하나는,
바로 이거다.
“아니, 저랑 부모님 관계가 제 고민이 아닌데,
이거에 대한 것도 이리 자세히 이야기하나요..?”
한 인간에게
부모와의 관계와 그 안에서의 소통방식은
그 인간이 세상, 타인, 자신과 소통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뿌리가 되고,
사실 아주 빈번하게 거의 유사한 형태로 재연된다.
이건 후기정신분석이론 중 하나인
대상관계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하고 명확한 개념이다.
(자세한 설명은 일단 오늘은 제끼자.)
그러면 이제 느낌이 팍, 올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스스로에게 가혹하고
힘든 상황에 처해 주저앉아있는 자기자신을
진심으로 위로해주고 가엾어해주지 못한다면,
이건 어디서 왔을까.
그렇다.
당신의 부모에게서 왔을 확률이,
결코 낮지 않다.
아까도 말했지만 운명이라는 게 아니다.
부모님이 심한 당뇨병을 앓았다고 해서,
아이가 무조건 당뇨병에 걸리진 않는다.
그런데 그럴 가능성은 높다.
그래서 심리상담을 할 때,
나는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해서
내담자와 부모님과의 관계를,
나의 가설에 비추어볼 때, 필요하다 생각되면
조부모님과 부모님과의 관계를 묻기도 한다.
아는 것이 힘이다
프랑스 시인 아그리파 도비녜의 말이다.
“악의 어머니는 지식일 수 없고,
정의는 무지함의 딸일 수 없다.”
아는 게 힘이다.
이 말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건,
우리가 도저히 그걸 감내할 힘이 없다고 생각될 때
합리적일 수 있는 말이다.
무언가를 아는 것만큼,
근본적인 해결의 뿌리가 되는 건 없다.
소통방식은 유전된다는 걸 이해하면,
당신은 당신의 아이에게
좀 더 좋은 부모로서 현명한 양육을 해줄 수 있다.
그리고 당신의 부모를 좀 더 이해할 수 있다.
(그들도 아마
그의 부모로부터 유전받은 소통방식으로
당신을 키웠을테니까.)
당신 스스로에게 좀 더 다정할 수 있는
실마리가 떠오를지도 모르는 일이고.
이 글이
당신이 누군가(자기 포함)를 사랑하며 사는 데
약간의 도움이 되어줄 수 있길
진심으로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