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2019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한국인의 19%는 종종 소외감을 느낀다고 대답했다.
우리가 오늘 얼굴을 마주친 5명 중 1명은 평균적으로 소외감을 느끼며 지낸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종종 느낀다는 것일뿐, 실제로 종종은 아니어도 잊을만하면 ‘한번씩’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훨씬 많겠지.
2년반 넘게 상담수련을 할 때 만났던 내담자들 중, 소외감을 말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사실 정말 속을 터놓게 된 친구들 중에서도 소외감을 말하지 않았던 사람은 정말 소수의 몇명을 빼곤 없었다.
설문조사와 달리, 내가 보기에 압도적인 절대다수는 삶에서 소외감을 느낀다.
소외의 두 가지 의미
소외란 무엇일까.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소외는 다음 두가지 의미를 가진다.
1. 어떤 무리에서 기피하여 따돌리거나 멀리함.
2. 인간이 자기의 본질을 상실하여 비인간적 상태에 놓이는 일.
첫번째 의미는 따돌림당하는 일상적인 의미의 소외, 두번째 의미는 철학적 관점에서 보는 본질적인 차원의 외로움, 소위 말하는 인간소외, 자기소외를 말하는 걸로 보인다.
내가 소외의 ‘역학’이라고 말한 이유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정의하는 두가지 ‘소외’ 간의 역학을 이야기해볼 생각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는 통제가능하지 않은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소외를 예기치않게 겪게 될 확률이 매우 높다.
물론 그 확률을 낮추려고 대다수가 안간힘을 쓰며 살고 있는 형국이지만, 그럼에도 본질적으로 그건 우리 통제영역 밖에 있다.
그리고 그 소외감이 두렵고 괴롭고 절망적이어서 그 소외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다보면, 사전에서 정의하는 ‘두번째 소외’가 어느샌가 가슴에 머무른다.
즉, ‘자기의 본질을 상실’한다는 의미다.
누구나 느끼고 사는 ‘소외감’의 이야기
무슨 이야긴지 조금 쉽게 이야기해보자.
어떤 집단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는 생각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진 A라는 사람이 있다.
사람들은 무언가 그들과 다른 생각을 가진 것처럼 느껴지는 A가 불편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람들은 A를 멀리 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본다.
A는 소외감을 느낀다.
A는 소외감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자기 생각이 아닌 다른 대다수의 생각이 맞다고 말한다.
실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타인의 생각이 마치 자기생각인 양 연기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점차 A도 자신들과 같은 부류라는 생각에 덜 따돌리기 시작한다.
A는 점점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
라고 이야기가끝나면 좋겠지만,
그 광대놀음에 점점 A는 어딘지 모르게 공허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 공허감은 곧 ‘자기의 본질을 상실’하는 두번째 사전적 의미인 ‘소외’다.
진짜 자기자신이 스스로에게조차 외면받고 소외받는 것이다.
또다른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볼까.
내향적인 B라는 사람이 있다.
B는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에서 거의 유일하게 내향적인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은 다 외향적이고 활발해서, 일주일에 몇번이고 서로 만나고 여행도 다니고 거의 항상 카톡과 전화를 하면서 서로 즐겁게 지낸다.
B는 사실 일주일에 하루이틀만 저녁 약속을 잡아도 기가 다 빨려서, 다른 날에는 퇴근하고 나면 집에서 쉬는 게 필요하다.
하지만 친구들은 B가 좀 자기들과 지내는 게 재미가 없거나 자신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건지 의심하며 점점 B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쳐다본다.
B는 초조하다.
원래도 말수가 많지는 않고 조용한 성격인 내향적인 성향의 B는 친구들이 삐죽거리면 웃으며 그런거 아니라고 손사래친다.
B는 이 집단 안에서 혼자 소외감을 느끼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열심히 친구들이 일주일에 몇번이고 모임을 잡고 놀러 다니고 할 때마다 꾸역꾸역 그 약속에 다 나간다.
사실 가서 하는 거라곤 앉아서 누군가가 재밌는 농담을 하면 웃어주고 박수쳐주는 것뿐이지만, 그래도 그렇게라도 하면 사람들이 날 나쁘게 보진 않을테니까 그렇게 한다.
문제는, 계속 그렇게 자기마음 대신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더 신경쓰고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다보면, 점점 그런 삶이 버거워지기 시작한다.
B는 결국 친구들에게 소외받지 않기 위해, 진짜 자기자신을 소외시키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B는 언젠가부터 별 사건사고도 없는데, 한번씩 이유없이 지치고 눈물이 날 것 같다.
소외감의 문제는, 결국 우리가 결정하는 문제
화두는 ‘소외’지만, 사실 핵심은 내 마음과 타인의 마음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 것인지의 문제다.
그리고 이 문제는 단순히 소외의 문제가 아니라, 자유에 관한 문제이자,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삶을 조각하는 일에 관한 문제다.
얼마만큼 나를 포기하고 내 마음 대신 타인의 마음을 따라 살 것인가.
이건 곧 주인으로서 자유로운 삶을 내 마음을 따라 누릴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가 만약 우리 자신보다 타인을 더 우선순위에 두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주위 사람들에게 소외받지 않는 대신 진짜 우리자신을 소외시키게 될 것이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우리가 타인의 마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마음을 더 우선순위에 놓고 살게 되면 아마 최소 언젠가 한 번은 사람들에게 소외받는 상황이 생길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오는 첫번째 소외와 두번째 소외 중 한가지를 포기하고 더 중요한 한가지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에 처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소외의 ‘역학’이다.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비법
아니, 그럼 사전에 나오는 두가지 소외 중 하나는 무조건 감수해야 된다는 이야기냐, 하고 항의할지도 모르겠다.
그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일단은 ‘그렇다’이다.
뭐 동화처럼 타인에게도 소외받지 않고 나자신에게도 소외받지 않는 게 공짜로 턱 주어지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삶이 그렇게 아름답고 행복하기만 한 줄 아는가.
그렇지가 않다 ㅋㅋ
국어대사전의 첫번째 소외와 두번째 소외를 각각 타인과의 관계에서의 소외,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의 소외라고 부를수도 있겠다.
이 양쪽에서 오는 두 가지 소외가 모두 없을 수 있는 방법이 있긴 있다.
그건 바로, 진짜 내 마음이 집단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과 완전히 같으면 된다.
그리고 이 ‘같음’이 시간이 흘러도 계속 변하지 않고 유지된다면, 그렇다면 인간은 두가지 소외를 모두 겪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게 되겠냐고 ㅋㅋ
안된다, 미안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에 그런 인간은 없다.
그렇게 ‘고장나있을수는‘ 있어도, 진실로 그런 인간은 없다.
모든 인간에겐 각자만의 고유한 잠재력과 개성, 예술성이 잠들어있다.
집단의 구성원들과 내 생각이 진짜로 계속 같으려면, 내가 그 집단의 독재자가 되면 된다.
그럴 순 없지 않나.
자, 그러면 이제 가급적 두가지 소외가 발생할 확률을 최소한으로 낮추는 방향을 이야기해보자.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에서 생활하면 된다.
우리가 집단이라고 소속되는 거라고 해봐야, 초중고는 그냥 나이가 같고 동네가 같아서고, 남자라면 군대도 매한가지다.
대학은 성적에 따라 모이고, 직장은 알다시피 되는대로 지원서 뿌려서 가는 것이니 생각이 같은 사람이 모이는 게 애당초 비현실적인 기대다.
동호회라고 나가면 자전거든 와인이든 캠핑이든 다 동호회 활동 자체보다 이성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경우가 허다하다.
진짜로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소속감과 유대감을 느끼며 머물고 교류할 수 있는 진정한 공동체를 만드는 건, 생각보다 쉽지는 않지만 꼭 필요한 일이다.
그저 가볍고 편안하면 될 뿐이다.
그런 공동체는 안타깝게도 기존 집단 중에 거의 극소수를 제외하면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럼 결국 누군가가 그런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만들 생각이다.)
우리는 가급적 소외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집단에 소속되어야 한다.
내 생각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고,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지 않고, 엄근진 말고 자유롭고 가볍고 편안할 수 있는 그런 공동체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확률이 최소한이 될 뿐, 근본적으로 소외는 일어날 수 밖에 없는 문제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나로부터의 소외와 타인으로부터의 소외 중 하나를 택하는 일이다.
적어도 그 둘 간의 우선순위는 확실히 정립해놓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타인에게 소외당하지 않기 위한 노력은 십중팔구는 진짜 나 자신을 소외시키는 일로 이어진다.
이 소외의 역학을 이해하고 무엇을 선택할지 차분히 생각해보길 권한다.
무슨 선택을 해라고 말하진 않겠지만, 뭘 권할지 짐작하리라 생각한다.
건투를 빈다.
당신의 하루하루를 완벽하게 조각해나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