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으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돈이 없으면, 죽는다

우리가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씻고,
똥도 싸고,
안전한 곳에 몸도 뉘이고,
아프면 병원도 가야 한다.

그런데 이 모든 건,
돈이 없으면 누릴 수 없는 것들이다.
그건
자본주의 경제를 받아들인 국가에서 태어난 이상,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아니,
사실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돈은
아주 오랫동안 인류가 서로 합의해 지켜온
일종의 ‘약속’이다.
돈은
우리가 살아남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과
일정비율로 교환이 가능하도록
고안된 존재다.
그래서 경제학에서는
화폐를 Liquidity,
즉 유동성(流動性)이라고 부른다.
상황에 따라 어떤 것으로도
유동적으로 변환될 수 있는
성질을 가진 것.
언제든지
어디서나
밥으로,
치료약으로,
집으로,
옷으로,
무엇으로든
변할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돈’의 본질이다.

돈이 없어도 죽지 않는 법

이렇게 보면
돈은 생존에 필수적인 존재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데 돈이 없어도
죽지 않는 방법이 하나 있다.
남이 내가 생존하는 데 필요한 돈까지
대신 지불해주면 된다.
예를 들면,
국가가 복지의 일환으로
내가 먹고 살 돈을 대신 내주면 된다.
아니면 마음씨 좋은 자선사업가가
우리를 도와줘도 좋다.
문제는,
그의 손에
당신의 생사여탈권이 주어진다는 것과
인간이든 국가든
의외로 변덕스럽다는 것 정도가 되겠지만.

변덕이 심하지 않고,
내 목숨줄을 쥐고 있음에도
나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지도 않고
나쁜 생각을 하지도 않는 사람이 있다면 좋을텐데.
그런 사람 어디 없을까.
그 사람이
나 대신 돈을 내서
내가 생존하게 해준다면,
정말 좋을텐데.

있다, 그런 사람.
바로 당신의 부모.
보호자, 양육자로 불리는 존재들.
당신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든,
아기였던 당신은
절대 혼자 살아남을 수 없었다.
분명 삶의 어느 구간에서는
‘보호자’라 불리는
부모의 역할을 하는 존재가 있었을 것이다.

우리를 사랑하는 관계,
즉, 대개는 부모나 그에 준하는 ‘소중한 사람’은
우리가 돈이 없어도
우리 대신 돈을 지불해서
우리가 살 수 있게 해준다.
그들은
변덕을 부릴 가능성도 적다.
하지만 이런 방식 또한,
결국에는 살아남으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벗어나진 않는다.

보호, 그리고 착취

당신이 돈이 없고 돈을 벌 수도 없다면,
당신의 소중한 누군가가
당신의 몫까지 돈을 벌어야 한다.
반대로,
당신의 소중한 누군가,
즉 당신의 연로한 부모나 어린 아이가 돈을 벌 수 없다면
당신이 그들의 몫까지 돈을 벌어야 한다.
그들이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도록.

이는
돈을 벌지 못하는 쪽이
상대 몫까지 대신 돈버는 쪽을
착취하는 것임과 동시에,
상대몫까지 돈을 버는 쪽이
돈을 못버는 쪽을
보호하는 일이 된다.

이것이 보호인지, 착취인지에 대한 고민은
여기서 하진 않겠다.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한다면,
돕는 쪽에게는
사랑하는 이를 지키는 일이 되겠으나,
도움을 받는 쪽에겐
사랑하는 이를 착취하는 일이 된다는 건
틀림없어 보인다.

당신의 연로한 어머니가
다리를 다쳐 못걷는 당신을 업고
강을 건너야 한다면,
그녀는 자식을 지키는 마음으로
당신을 업고 걷겠지만
당신의 마음 속에서는
하염없이 비가 내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다리가 붓기 시작할 수 있다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고.

내가 돈을 못 벌면 벌어지는 일

결국, 내가 돈을 벌지 못하거나 돈이 없으면
대개는 나를 사랑하는 소중한 사람이
내 몫까지 돈을 벌게 된다.
이는
돈이 인간을 생존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만약 우리가 사랑하는 소중한 사람이
돈을 벌지 못하는데
우리가 그들의 몫까지 돈을 대신 낼 수 없다면,
그들을 지키지 못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