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10년도 더 전인가.
한동안 경계선 성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던 적이 있었다.
경계선 성격장애에 대해서 많은 걸 설명할 수는 없으나, BPD의 경우 타인이 나를 나쁘게 보거나 적대하는 것에 굉장히 민감하다.
사실 ‘민감하다’는 표현만으로는 조금 부족한 듯하다.
BPD 환자는 타인이 내게 보이는 적대감이나 공격적인 태도를 엄청나게 극단적인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굳이 BPD를 언급했지만, 사실 성격장애라는 것이 일정 수준 이상의 진단기준을 만족할 때 진단되는 것이므로 누구나 성격장애를 진단하는 기준 중 몇개는 충족시키기 마련이다.
그리고 BPD 환자가 아니더라도 우리 대다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타인이 내게 적대적으로 대하는 것을 꺼리고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문제는, 비난이나 적대의 화살이 내게 돌아오는 것이 너무 힘들고 괴로운 고통일 때다.
도저히 화살이 내게 오는 걸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민감한 사람은 어떻게 이 고통에 대응할까.
화살이 내게 돌아오지 않는 것이 내가 생존하는 데 너무 중요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상대방을 나쁜 사람으로 만든다.
여기서 남을 까내리고 폄하하고 뒤에서 욕을하고 거짓말을 해가면서까지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비난하는 행동의 역학이 드러난다.
물론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지목되어 공격을 당하거나 비난을 당하는 일이 죽을 것같이 고통스럽고 힘든 사람일수록 그는 그 고통을 겪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상대방을 나쁜 사람으로 만든다.
남을 욕한다는 이야기다.
비난을 해서 상대방이 충분히 비난받을만한 사람이고 나쁜 사람이 되면, 화살이 내가 아닌 그 상대방에게 갈 것이기 때문이다.
화살이 나를 향하는 걸 도저히 견디며 살아있지 못할 것 같은 사람은, 필사적으로 목숨을 걸고 상대방을 까내린다.
결국 누군가에 대한 비난은, 상대방이 도덕적으로나 어떤 관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이어서일 때도 많지만, 그에 못지 않게 내가 비난을 받는 게 너무 두려워서 누군가를 미리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상황일 때도 많다.
그가 정말 비난받을만한 행동을 했는지는 부차적인 문제가 되는 것이다.
비난의 수위 = f(화살이 내게 돌아오는 것이 두려운 정도)
이러한 역학을 잘 이해한다면, 우리가 비난을 만났을 때 좀 더 깊이있게 꿰뚫어보고 대처할 수 있다.
누군가가 우리 앞에서 다른 사람을 험담한다면, 그 때 우리는 우리 앞에 있는 그 사람의 두려움을 살펴보고 그 두려움의 크기를 읽어낼 필요가 있다.
상대방이 우리를 나쁜 사람으로 만든다면, 우리는 상대방이 뭔가 큰 잘못을 해서 화살이 자신에게 올까봐 두려워하고 있을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나쁜 사람으로 깎아내리고 싶은 마음이 내면에서 자꾸 올라온다면, 어쩌면 화살이 나 자신에게 돌아올까봐 어떻게든 상대방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할 수도 있다는 걸 반드시 고민해봐야 한다.
타인을 향한 비난은, 곧 나의 두려움이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