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짓는 자였던 시절의 추억
나는 혼자서는 화장실을 가지 못했다.
이 증상이 생긴 건, 한 11살 무렵이었다.
혼자서 화장실을…?
상상하기가 힘들었다.
화장실을 가려면 내가 속한 무리가 다 모여야만 했다.
최소한 그 중 두세명이라도 모여야 했다.
혼자 가는 건, 왜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불가능한 일이었다.
등교는? 하교는? 밥 먹는 건?
당연히 그 무리가 다 모여야만 하는 일이었다.
혼자 학교를 가다니? 혼자 밥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만나서 놀고 나면, 누굴 먼저 바래다주는지, 혹은 누구 집에 가까운 지점에서 헤어지는지가 엄청난 관건이었다.
그걸로 은근히 서로 기싸움이 있기도 했다.
왜냐하면, 우리집에 가까운 곳에서 해산하는 게 곧 나의 힘과 권력을 상징했고 그래야 혼자 길을 걸어다니는 끔찍한 상황을 조금이라도 더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로 실제로 주먹다짐을 하기도 했으니 말 다했지.
그 때는 그게 정말 그렇게나 중요했다.
그 무리가 내 삶의 중심에 있었다.
내 삶의 목적이자, 내 삶의 이유였다.
이 안정감을 주는 친구들과 함께 하는 집단이 내 삶의 전부인 거 같았다.
친구를 위해서라면 뭐든 다 해줄 수 있을 거 같았다.
이 집단은 평생 내 인생과 함께 갈 것이 틀림없었다.
무리짓는 자들의 심리
지금, 나는 혼자다.
사랑하는 아내와 사랑하는 엄마아빠, 동생이 있고 이들을 항상 사랑하고 아끼고 지키려 노력하지만, 이제 나는 혼자 화장실도 잘 가고 혼자 밥도 잘 먹는다.
누가 가르치지도 않았지만 시작된 이 무리생활은 한 4~5년 정도 바짝 꽃핀 후에 중학생 2학년을 넘어가면서 점차 그 빛을 잃어갔다.
흥미로운 건, 대다수는 그들이 노인이든 중년이든 장년이든 청년이든 상관없이 여전히 무리집단에 목숨을 건다는 사실이다.
아, 여기서 논의의 전제는 남자로 한정한다.
(남녀갈등으로 항상 시끄럽지만, 내가 보기에 남녀는 많이 다르다.)
많은 남자들은 환갑이 넘어서도 무리짓고 사는 걸 지향하고, 무리에서 쫓겨날까봐 두려워하다가 퇴직하고 자신의 무리가 조건부였다는 걸 깨닫고나면 고향친구와 동창들 모임을 전전하다가 결국 우울함에 빠진다.
무리를 짓고 살면, 인간이 진화하면서 느껴온 근본적인 하나의 두려움을 없애고 아늑함을 준다.
이를 ‘집단소속감‘이라고 한다.
집단 소속감은, 집단에 속함으로써 얻는 (어딘가에 소속되어있다는)심리적인 안도감을 말한다.
여기서 ‘안도감’이라고 표현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집단에 소속되어 느끼는 긍정적인 감정은 혼자 외롭게 소속도 없이 살아갈지 모른다는 공포와 두려움이 해소됨으로써 생기는 감정이다.
안도했다는 건, 걱정하고 두려워했던 상황이 벌어지지 않아서 얻게 되는 공포의 해소와 일맥상통하는 감정이다.
혼자 살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면, 자연스레 안도감을 위해 무리에 매달리는 일이 사라질거라는 말과도 맥을 같이 한다.
지금 이 시대는 대다수가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다.
회사에서 가만히 사람들의 반응을 들여다보라.
(아까도 말했지만 이거 남자 한정 이야기다.)
40대 중반, 50대 이상인 사람들은 어떻게든 우르르 몰려다니는 자신의 무리에 속해있다는 사실에 큰 소속감을 느끼지만, 연령대가 내려갈수록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의 비율은 점차 낮아진다.
물론 내가 그랬듯이 겁이 많고 두려움이 많은 사람들은 나이가 10대든 20대든 열심히 무리지어 우르르 다니지만, 결국 어느 시점에서 혼자여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알아갈수록 점차 무리생활에 굳이 헌신하지 않기 시작한다.
무리짓지않는 시대의 강림, 도대체 왜?
왜 이 시대는 혼자 지내고 혼자 사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아진 것일까.
그 오랜시간 진화해온 인간의 무리로부터 소외되는 두려움이 갑자기 사라진 것도 아닐텐데 말이다.
뉴스에서 자주 말했듯이, 코로나라서?
그렇다!
코로나 때문이다.
다만 코로나 때문이라는 말의 의미는 좀 다르다.
세상에서는 연신 사람들의 ‘홀로’생활의 증가에 대해 코로나 방역정책 때문에 혼자 지내는 게 익숙해진거라고 이야기해왔다.
하지만 그게 그저 익숙해져서 그런걸까.
그렇지 않다.
인간은 끝없이 남들의 눈치를 보고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살피고 남들이 날 어떻게 볼까 전전긍긍한다.
그래야 생존할 수 있었던 진화적 산물이 그리 쉽게 사라지진 않는다.
경제학의 ‘게임이론’에서는 두 가지 균형이라는 게 존재할 수가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죄수의 딜레마라는 것도 게임이론이라는 모형 안에서 언급되는 이야기다.)
어렵게 매트릭스를 그려 이야기하진 않겠지만, 결론적으로 코로나는 인간의 두려움과 그에 대한 반응을 그대로 둔 채 일시에 각자가 혼자 살게 만들어서 아예 균형점을 바꿔버렸다.
인간의 행동전략은 언제나 무리에서 쫓겨나지 않도록,이다.
그 무리라는 범위가 당장 나랑 같이 화장실가고 밥먹고 안부묻는 사람들일수도, 직장 내 부서사람들일수도, 직장 동료 전체일수도, 온 국민일수도 있다.
인간은 자기가 속한 무리에서 소외될까봐 벌벌 떤다.
그런데 내가 속한 무리가 일제히 각자 집에 틀어박힌 일이 생긴거다.
나를 빼고 나머지가 전부 모여서 여전히 무리지어 다녔다면, 아마 개인들은 자기만 혼자 지내는 걸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나 무서워했던 ‘홀로’생활을 강제로 해보니, 생각보다 내 인생이 망가지지가 않는거다.
아니 오히려 의외로 자유롭고 편하고 좋은거다.
그렇게나 평생 두려워하던 일이 의외로 괜찮은데, ‘나홀로 상황으로의 진입’을 나혼자만 튕겨나와 해버린게 아니라 충분히 누구나 그럴만하다고 끄덕여줄만한 이유가 코로나 덕에 주어진거다.
인간은 애초에 남들이 어떻게 날 생각할까, 가 두려운 존재인데 코로나 때문에 모두가 혼자 지내게 되니 이건 뭐 남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고 말고가 없는거다.
나홀로 지낼 당위가 ‘모두 다같이’ 생겨버린 거라고 해석할 수 있다.
사실 이건, 기존에 용기를 내어 홀로서기를 해왔던 위대한 사람들의 이야기와는 좀 다르다.
이 시대의(사실 어느 시대에나) 대다수 사람들은 나만 손가락질받고 비웃음받으면서도 무리에서 떨어져 나오는 도전을 감행한 전사의 심장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제히 무리에 속한 다른 사람들에게 비웃음 살 이유도 없이 ‘홀로’생활로 강제진입하고 보니, 이게 두려워하던 것만큼 그리 지옥이 아닌거다.
이는 사회 전체의 균형점을 바꾸었다.
어떻게든 어떤 무리에라도 소속되어 홀로 소외되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지내는 사람들이 많던 균형점에서, 각자 이젠 더이상 무리에 매달리느라 눈치보고 참고 온전히 자유롭지 못하게 지내는 걸 관두고 혼자 살아가는 균형점으로.
물론 코로나 상황이 진정되자, 과거에 이미 너무 오랜시간 강하게 무리생활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다시 무리지어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이제 깨달아버렸다.
내가 또래집단에 속하지 않아도, 학교가 정한 규율에 따라 등하교를 하고 5교시까지 앉아있지 않아도, 할말 못하고 죄인처럼 굽신거리며 상사눈치 보지 않아도, 금요일 저녁이면 우르르 모여 회포를 푸는 무리에 소속되어있지 않아도,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말이다.
아니, 오히려 더 행복하게 지낼수도 있겠구나, 라는 걸 말이다.
단 일주일만에 그런 변화의 낌새를 눈치채기에 인간은 느리다.
하지만 몇년은 말이 다르다.
이건, 영화 매트릭스로 보면 단체로 그냥 빨간약 순한맛을 온국민 입에 쳐넣어버린거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코로나는 명백히 인류에게 크나큰 재앙을 몰고온 끔찍한 재해였음은 반론의 여지가 없다.
실제로 나는 아빠가 수술 중 심정지로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다가 코로나에 감염되었다는 말을 듣고도, 코로나 상황 때문에 하루에 30분을 멀리서 격리된 읍압치료실만 쳐다보다 나와서 눈물을 줄줄 흘리곤 했다.
하지만 인생은 참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사건으로 인해 생각지도 않은 수천가지 변화를 동시에 겪는다.
나비효과 이론 말마따나, 나비의 날갯짓이 엄청난 결과를 낳듯이.
그럼에도 기억해야 할 한가지
그래서 세상은 변했다.
인간이 함께 무리지어 지내온 시기가 인류역사의 99.9%라면 거의 처음으로 인간은 혼자 지내기 시작한 시기를 맞이한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럼에도 다른 형태로 또 남의 눈치를 보고 여전히 타인의 평가를 두려워하며 조종당하는 일이 벌어지겠지만.
하지만 기억하기 바란다.
스스로의 힘으로 얻지 않은 것들은 쉽게 무너지고 금방 빼앗긴다.
과거에 모든 인류의 습성과 거꾸로 걸어갔던, 모든 무리짓는 사람들 속에서 혼자 자신의 길을 걸어갔던 위대한 자들은 코로나라는 희안한 격변이 없이 남들의 비난과 위협을 이악물고 극복해낸 사람들이다.
우리는 결국 삶에서 공허함을 뜯어내버리고 죽음 앞에서 후회없다 말할 수 있는 삶을 살게 될 것이고, 이를 위해서 우리는 무리집단으로부터 정신적으로 자유로워져야만 한다.
정신적 자유를 쟁취하는 관점에서 볼 때는 분명 얻어걸린 뜻밖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니, 이를 잘 이용해서 최고의 자기자신을 조각하는 일을 해나가자고 말하고 싶다.
당신의 하루하루를 완벽하게 조각해나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