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얼 내어주는가
돈을 벌기 위해
우리는 계약을 한다.
모든 건
기브&테이크라고 했던가.
테이크는 ‘돈’인데,
그렇다면 기브는 무엇일까.
우리는
무얼 내어주고
그 대가로 돈을 버는가.
사실 거의 모든 것들은
돈을 버는 대가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돈은 세상에 있는 거의 모든 것들과
교환이 되는 녀석이기 때문이다.
청소를 해주거나
상대가 갖고싶은 물건을 건네면
돈을 벌 수 있다.
원하는 음식을 만들어줘도 되고,
좋아하는 게임을 줘도 된다.
심지어
인신매매나 성매매같은 불법행위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 또한
그러한 것들로도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무얼 대가로 돈을 벌까.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우리의 자유를 판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신체적 자유를 판다.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특정 시간동안의 신체적 자유를 판다.
가령,
일반적인 직장인은 이렇게.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는
사무실에 나가거나 현장에 나가
당신이 시키는 일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제게 월급을 주시죠.”
이걸 두고 우리는
‘시간을 판다’라고 말한다.
그 시간동안은
우리가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자유를 대가로 내어주고
돈을 버는 거니까.
그리고 이 자유에는
신체적, 정신적 자유가 모두 포함되지만,
1차적으로는
신체적 자유를 의미하는 바가 더 크다.
남은 날들 중에 가장 앳된 날들
돈을 벌기 위해 우리가 파는 시간은,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모든 날 중에
가장 앳되고 젊은 날이다.
우리가 누릴 날들 중
가장 생기넘치고 티없이 맑고 쾌활한 날들을,
우리는 돈을 버는 대가로 판다.
잠이 아쉬운 동물
당신은 자고싶을 때 잘 수 있나.
일하다가 너무 졸리면
편안하게 어디 소파에 가서
몸이 원하는 대로 꿀잠을 잘 수 있나.
잠조차도 마음대로 못자지 않나.
너무 몸이 힘들어하면
화장실에 조용히 가서
옆칸 동료의 똥냄새를 맡으며
잠시 졸아야 되지 않나.
9시부터 내 시간은
사장님꺼라서,
아침에 알람을 듣고선 5분만 더 자고 싶은데
안간힘을 써가며
내 건강이 갉아먹히는 건 뒤로 하고
다급히 눈을 떠서 출근할 채비를 하지 않나.
맹수에게 쫓기지 않는 한,
이 지구 상에 어떤 동물이
매일 이렇게 잠조차 마음대로 못자면서 살아갈까.
봉사하는 삶
하지만
비단 신체적인 자유를 구속당하는 데서
그치는 건 아니다.
시간을 파는 일은
1차적으로는 우리의 신체적 자유를 내주는 일이 되지만,
필연적으로 다른 것들도 내어주는 일이 된다.
당신은
힘들어도 상사의 시덥잖은 이야기에 웃음지어야 하고,
부당한 일을 당해도 괜찮은 척 덤덤한 표정을 지어야 한다.
가족이 아프거나 내 몸이 아파도
그걸 제일 중요하게 여길 자유는 없고,
근로계약서에 쓴 과업 외에도
온갖 감정노동과 굽신거림으로 봉사해야 한다.
듣기 불편한가.
그런데 사실이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면,
왜 그렇게 맛있는 소고기를 공짜로 사주는 회식보다
차라리 내 돈 내고 친구랑 먹는 고깃집 저녁이
훨씬 좋겠는가.
내가 팔기로 한 시간이 아님에도 끌려가서
영혼을 팔고 웃음짓고 박수치며
봉사해야 하기 때문이 아닌가.
흥미로운 건 봉사받는 상사들도
그 회식자리가 봉사받는 자리라는 걸
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Lv15에서 하게 될 것이다.)
고통을 끊어내기 위한 열쇠
도대체 왜 내가 원하는대로
자유롭게 삶을 살지 못하고
남이 원하는대로
꼭두각시처럼 움직여야 하는 시간들로
가득한 삶을 견뎌내야 하는가.
그건 바로,
돈 때문이다.
우리의 시간을 팔고
신체적 자유를 팔고
정신적 자유를 팔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도록
힘을 길러나가야 한다.
남은 날들 중
가장 젊은 날을 팔고 돈을 버는 일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불가피한 일이지만,
이 상황에서 그저
가만히 주저앉아 있기로 결심하는 건
불가피한 결정이 아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신체적 자유를 남에게 내어주고 나면,
우리는 삶에서 소중한 것들을 위해
우리의 자유와 시간을 써야 할 때
그러지 못하게 된다.
노예로 전락한 탓에 벌어지는 이 비극은,
반드시 언젠가 우리를
고통의 구렁텅이로 쳐넣는다.
그러니,
용기를 내야 한다.
이 굴레에서 벗어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