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대신 행동을 믿어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

2023년 한해동안 출생등록한 신생아 수가 23만명이다.
이 숫자는 ‘말’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을 보여주는 통계수치다.
행동에 관한 한, 통계는 우리의 좌표를 꽤 정확히 나타낸다.

이 나라의 미래와 앞으로 나아갈 저출산 대비 정책을 논하려는 건 아니다.
나는 그저, 우리가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힐끔거리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반드시 숙고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싶을 뿐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진화의 단위가 개체가 아닌 유전자라는 사실을 주장해서 세계적인 스타학자가 되었지만, 과연 한국의 지금 상황을 보고 뭐라고 해석할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번식이라는 모든 생명체 속 유전자들의 제1순위 목표를 자발적으로 다같이 저버리고 있는 이 나라의 상황을 과연 뭐라고 해석할까.

행정안전부 통계자료를 보면, 2023년 기준 만35세 인구는 62만명이고, 만 55세 인구는 90만명이다.
2023년 출생아 수가 23만명인 걸 추세를 고려해 생각해본다면, 한국은 정말 그리 머지 않은 시기 내에 전혀 다른 나라로 변화해갈 것이다.

말 대신 행동을 측정한 통계를 믿어라

나는 상담심리학을 전공하고 임상심리사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서베이(설문) 형식의 연구방법 자체가 불가피하게 가지는 편향이나 오류가 클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자기보고식 심리검사나 설문조사는 필연적으로 작성하는 그 사람의 바람, 자기를 바라보는 관점과 왜곡 등 여러 가지 편향이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이건 ‘말’이지 ‘행동’은 아니다.

하지만 실제 삶으로 실천하는 것들에 대한 통계는 다르다. 자살률이나 출산률은 그 자체로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함축하고 있다.
그 통계들이 가지는 함의는, 단순히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자녀를 안 가진다는 수준의 한가지 행위에 대한 통계가 아니다.
폭발적으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여전히 사람들은 아기가 나오는 유튜브 영상만 봐도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한다.
(그건 조회수가 증명한다. 역시 말보다는 행동이 믿을만하다.)
그런데 자신의 아이는 가지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그 추세는 강해지고 있고, 이미 절대적인 출산률도 그 어느 나라도 넘볼 수 없는 수준이다.

이게 무얼 의미할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구성원 대다수가, 지금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이야기다.
하나하나 파고들자면 끝이 없지만, 한마디로 말하자면 불행하다는 이야기다.
버겁고 괴롭고 미래에 대한 기대보다는 비관이 크다는 이야기다.

8살도 맞출 수 있는 기묘한 문제

그저 그냥 이렇게 생각해보자.
새하얀 세상 위에 사람들이 1000만명이 서있다.
그 1000만명 그룹이 새하얀 세상 곳곳에 그룹으로 모여서 서있다.
그룹이 10개라고 해보자.
한 그룹은 계속 오른발을 들고 총총 뛴다.
한 그룹은 눈을 한쪽만 뜬 채 계속 좌우를 두리번거린다.
한 그룹은 왼손으로 오른쪽 볼을 톡톡 두드린다.
의미를 알 수 없는 행동들을 그 새하얀 세상에서 그룹마다 다르게 하고 있다고 해보자.
그런데 한 그룹이 유독 가장 고통스러워하고 힘들어하고 스스로 목숨도 많이 끊는다.
다른 그룹들에 비하면 너무 그 그룹만 과도하게.

자, 그러면 여기서 문제.
우리가 어떤 행동 하나를 반드시 해야 한다면, 그 유독 눈에 띄는 그룹 구성원들이 하는 행동을 하는 게 현명한 선택일까 아닐까.
아니겠지.
초등학생도 맞출 난이도 하등급의 문제다.

그러면 우리는 더이상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 두리번거리며, 다른 사람들이 다들 사는대로 사는 걸 멈춰야 한다.
최소한, 진짜 이게 현명한 선택인지 한번쯤 재고해봐야 한다.

쉽지 않다는 건 안다

알고 있다.
힘들다는 걸.
왜 힘든지 아나?
아까 그 이상한 퀴즈랑 다르게 힘든 이유가 있다.
우리는 우리가 태어나서 알고 함께 지내는 모든 사람들이 모두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눈치를 보며 사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사람들은 우리에게도 그들처럼 그렇게 남들이 하는대로, 사회와 학교와 직장이 시키는대로 따르며 살길 기대한다.
그들도 불안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만의 삶을 살아보려고 한다면, 우리 주위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특히 어른들)은 어떻게든 만류하고 비난하고 마음을 되돌리라고 당신을 협박하고 비난할 것이다.
그러니 쉽지 않다는 건 안다.

그래도, 남들이 시키는대로 살다 가는 게 인생의 목표는 아니지 않나.
영화 매트릭스가 괜히 세계적으로 극찬받는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는 게 아니다.
이런 상황을, 가장 이해하기 쉽고 와닿을 수 있게 빨간약 파란약으로 그려내는 워쇼스키의 위대함이 바로 이런 대목에서 드러난다.
이미 옭아매어질대로 매어진 우리는, 차라리 남들이 하는대로 눈에 안 띄게 조용히 숨죽인 채 따라하는 게 더 편한 존재가 되었다.

어릴 때부터 항상 듣는 말도 그런거다.
너무 튀지 마라, 규칙대로 따라라, 웃어른을 공경해라, 상사의 지시를 어기지 마라, 눈치 없으면 사람도 아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 등등 말하자면 끝도 없다.

하지만, 명심하자.
말보다 행동이다.
말은 믿지 마라.
행동을 믿어라.
‘나보다 남을 더 먼저 배려해라’는 도덕선생님의 ‘말’을 믿지 말고, 이 도덕선생님이 자기 손에 피가 날법한 위기에서 보이는 ‘행동’을 잘 살펴라.
사회가, 어른들이 하는 말에 귀기울이지 마라.
대신에, 그들이 실제로 하는 행동에 귀기울여라.

예를 들면, 출산율 같은 거 말이다.
그게 진실이다.

진실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스스로 판단해라.
그럼에도 남들 사는대로 살 것인지.
어른들이 해라는대로 그대로 따르며 살 것인지.

그렇다면, 나는 두 말 없이 각자의 선택을 존중할테니.

당신의 하루하루를 완벽하게 조각해나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