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우리의 동력
인간은 무엇에 의해 움직이는가.
인간을 움직이는 동력은 무엇인가.
인간을 지금까지 살아있게 한 것은 무엇일까.
한없이 나약한 인류가 그 엄청난 맹수들 사이에서 목숨을 부지해온 동력은 무엇일까.
이족보행, 높은 사회성, 고도지능의 발달 등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결국 모든 것의 뿌리를 타고 거슬러올라가면 나오는 건 하나다.
두려움.
다르게 말하면, 욕망.
욕망과 두려움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가장 태초의 형태를 이야기해보자면, 욕망은 ‘두려움을 직면하고 싶지 않은 욕망’이고 두려움은 ‘욕망을 채우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욕망이 강할수록 두려움도 강하고, 두려움이 클수록 욕망도 거대해진다.
하지만 조금 더 우리에게 생생하고 강렬하게 와닿는 녀석을 꼽자면 역시 ‘두려움’이다.
우리에게는 아무래도 원하는 것보다 두려운 걸 생생히 느끼는 게 생존에 유리했나보다.
인류는 두려움을 기반으로 살아남아왔다.
두려움이 옅은 개체들은 자연의 선택을 받지 못한 채 점점 사라져갔고, 지금 우리가 후손으로 이렇게 살아남아있는 이유는 모두 두려움에 민감했던 선조들 덕분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지금에 비하면 자칫 미개해보일수도 있는 아주 오랜 과거부터 인간사회는 항상 두려움을 뿌리삼아 존재해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도, 과거에 비하면 말도 안 되게 화려해져버렸지만 결국 두려움을 먹고 살아남아있다.
두려움이 가득찬 사회
누구나 다 불안하다.
모든 사람들은 다 각자 마음에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것들을 가지고 있다.
학교도, 회사도, 군대도, 크고 작은 모든 집단도 언제나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형국이 도처에 존재하는 이유는, 구성원인 우리 개개인이 두려움에 민감한 존재로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구성원 개개인을 예측가능하게 만들고 통제해야 하는 지배층 입장에서는 이들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두려움을 잘 활용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인간은 무엇을 두려워할까.
무엇을 두려워했길래, 살아남아 지금까지 자신의 피를 물려받은 후손을 남길 수 있었을까.
두말할 것도 없이 ‘생존’을 위협하는 것들이다.
생존을 위협하는 것들을 두려워해야 했다.
맹수, 재난재해, 기아, 살인, 부상 등등.
결국 형태는 다르겠지만 내가 생존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모든 자극들을 두려워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두려움의 저주
육체의 저주
그 진화의 결과로, 우리는 이제 살면서 지하철역이나 집앞에서 맹수를 만날 일이 거의 없음에도 작은 자극이나 위협이 가해지면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심장이 두근거리며 혈류가 손발 끝까지 쫙쫙 펌핑을 타고 전달된다.
사실 이 반응은, 맹수를 만났을 때 도망치거나 목숨을 걸고 한판 붙어야될 때는 유용하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핀트가 안 맞다.
(사실 지금은 Type-A라고 해서 성마른 성격을 가져서 자주 심박수 높여가며 붉으락푸르락할수록, 심장질환 발병률만 높고 오히려 생존에 불리하다 ㅋㅋ)
이렇게 핀트가 맞지 않는 진화의 산물은 우리 몸과 마음 곳곳에 산재해있다.
우리가 밤에 치맥 달리면서 천상의 행복을 느끼는 건, 치킨이 진리여서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애당초 단맛에 행복을 느끼도록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비만과 당뇨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의 삶을 힘겹게 만든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니 넘어가자.
마음의 저주
진화의 흔적은 마음에도 존재한다.
우리는 누구 한 명만 우리를 미워하고 적대해도 막 심장이 두근거리고 집에 가서도 자꾸 생각나고 아주 막 어쩔 줄을 몰라한다.
아닌 척들 하지만, 굳이 내가 개인내담자들을 상담한 경험이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들 다 그렇다.
그게 그렇게 민망할 일도 아니다.
애초에 인류는 출현한 이래 거의 언제나 집단 내 부족원들과 잘 어울려야만 생존할 수 있었다.
소위 ‘개썅마이웨이’였던 개체들은 우리 선조 중에는 없다.
이미 수억년 전에 다 죽어버렸으니까.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는 각기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여전히 부족사회 시절 우리 선조들처럼 주위 사람들에게 소외되거나 추방될까봐 벌벌 떨면서 산다.
인간을 가장 옥죄는 것은 타인에게 수용받지 못하고 거부당할까봐 가지게 되는 공포다.
우리 중 누가 과연 타인의 판단과 비웃음에서 완전히 의연하고 자유로울 수 있을까.
회사생활, 학교생활, 공부, 운동, 친구관계, 가족관계,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걱정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만성불안상태다.
상담대학원에서 불안장애 카테고리를 공부하면서 유독 느꼈던 것이 있다.
나는 불안장애 종합선물세트인가,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나중에 이야기해보면 나랑 수업듣던 동기들도 매한가지다.
알고 보니, 수십년 전 공부하던 사람들도 비슷하게 느꼈다고 책에 고백해놨다.
그냥 우리는 누구나 만성불안상태다.
이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가 정신적 자유를 되찾는 일의 시작이다.
당신의 하루하루를 완벽하게 조각해나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