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경험
논산훈련소에 입소하고 난 첫주차의 일이다.
분대 안에서 말다툼이 생겼다.
무서울 게 없는 20대 초반 나이의 남자아이들을 모아뒀으니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둘은 처음엔 감정이 격해져서 험악한 표정으로 서로 주먹질이라도 할 것처럼 그랬지만, 이내 서로 대화를 하며 오해를 풀고 잘 화해했다.
1번 훈련병이었던 동생이 말했다.
“와, 역시 성인이니까 그래도 다르네요. 이성적으로 대화로 갈등을 해결하고 이런 거 보니까 진짜 신기하고 좋고 그러네요.”
나도 그리 생각했다.
나라고 해봤자 갓 스물두살이 되었을 뿐이었다.
대화의 민낯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나는 많은 걸 경험하고 배울 수 있었다.
가장 큰 거짓말 중 하나가 나는 ‘대화’라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겠지만, 대화로 갈등을 해결하거나 합의점을 찾는 일에 대해 나는 굉장히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사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의미의 ‘대화’는 이 세상에 없다.
대화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건, 사실 거짓말이다.
결국 문제를 해결했다는 ‘대화’의 실체를 보면, 거의 다 그저 힘의 충돌일 뿐이다.
우리가 책에서 배우고 학교에서 들어온 ‘대화’라는 건, 서로 자신의 의견과 그에 따른 논리적인 근거를 제시하여 상대방이 그 내용에 충분히 수긍하고 자신의 입장과의 차이를 합리적인 사고를 통해 조율하여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는 우리 사회가 제시하는 이상적인 표상이자 지향해야 한다고 세뇌시키는 상상의 모습일 뿐, 실제는 이와는 다르다.
갈등이 크고 자신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일수록, 즉 중요한 사안일수록 거기에서 ‘우리가 배운 의미의’ 대화라는 건 일어나지 않는다.
중요한 척 하지만 실은 중요하지 않은 사안 앞에서, 사람들은 그런 이상한 ‘대화 코스프레’를 많이들 한다.
하지만 이건 사람들에게 ‘자신이 대화로 삶을 풀어나가는 멋진 사람’이라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일뿐이다.
대화의 탈을 쓴 유혹과 위협, 사기
국가차원이든 개인차원이든, ‘정말로 중요한 일’은 대화를 통해 해결하지 않는다.
대화라는 외양을 가질 뿐, 실질은 회유와 협박, 유혹과 위협을 통한 충돌이다.
대화라는 가면을 쓰고서 우리의 모든 대화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언제나 회유와 위협이다.
물론 실제로 총과 칼을 들고, 물리적 폭력을 서로 행사하며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보다는, 약식으로 ‘대화’를 통해 온건한 방식으로 협상을 하는 게 가지는 이점은 매우 크다.
다만 여기서 흥미로운 건, 실제 유혈사태와 생명에 지장을 주는 극단적인 전투를 대신해주는 ‘대화’가 성행한 덕에, 거짓말을 하고 사기를 치는 사기꾼들은 어느 시대에서나 번성했다는 사실이다.
어떤 측면에서 대화는, 그저 사기꾼의 거짓과 날조에 날개를 달아주는 가면일 뿐일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대화’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마키아밸리는 군주론에서 공포도 필요하다는 말을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대화의 본질이 결국엔 두려움을 인질로 상대를 겁박하고 욕망을 자극해서 상대를 유혹하는 것들의 앙상블이라는 걸 알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