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중퇴가 가지는 엄청난 의미

우리가 이름을 아는 사람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람들에게는 여러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 공통점 중에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중퇴’다.
스티브 잡스는 대학교를 중퇴했고, 델 컴퓨터로 유명한 마이클 델은 의대를 중퇴했다.
마크 저커버그는 하버드 중퇴, 빌게이츠도 하버드 중퇴, 조르지오 아르마니 의대 중퇴, 심지어 그 바른생활 사나이 같은 유재석도 서울예대 중퇴, 뭐 사실 조금만 검색해보면 이런 사람들은 너무 많아서 열거하기 힘들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중퇴해야 크게 성공한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그건 단순히 농담으로 치부할 이야기가 맞을까.

예전에 전공수업을 들을 때 한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그런 이야기를 했다.
니네는 왜 여기서 수업을 듣느냐는 것이다.

어차피 한국은 대학에 입학했다는 자체가 그 사람이 그 정도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걸 입증해주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는 과정이 외국처럼 빡쎄서 졸업사실이 무언가를 입증해주는 어려운 과정이 아니다.
그런데 왜 4년이란 젊음을 엄청난 학비, 생활비와 함께 여기서 보내느냐.
내 수업은 사실 내가 쓴 책만 봐도 다 배울 수 있는데.

그 수업을 듣던 많은 학생들이 그 농담을 듣고 웃었다.
그 교수님은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다, 라고 말을 이어갔지만 다들 그 말을 진지하게 듣지는 않았다.
대형강의실에 100명이 넘게 듣는 수업이었는데, 그 어느 누구도 거기서 그 말을 진지하게 듣고 자퇴를 고려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다들 전혀 현실성있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저 위에 열거한 사람들은 교수가 그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걸 실천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대학중퇴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내가 보기에 중퇴는 성공한 사람들의 엄청나게 큰 용기와 안목을 보여주는 요소다.

내가 굳이 중퇴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하는 이유는, 중퇴가 결국 우리가 우리 삶을 조각하는 일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학교를 중퇴한다는 건, 내가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 학교 커리큘럼을 따르는 데 드는 시간과 에너지가 아깝다는 생각에서 비롯되는 효과적인 행동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이전에 훨씬 더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중퇴는, 주위 사람들과 내가 속한 문화, 사회에서 내게 보내는 기대와 요구를 거절한다는 걸 의미한다.
사회에서 짜놓은 보편적인, 하지만 크게 나에게 해가 되지도 않을 루트를 굳이 걷어차버릴 정도의 소신과 신념을 가지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보편적 루트’를 지켜내고 유지시키는 게 국가 권력이나 절대자가 아니라 내 주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 일반적인 삶의 궤도를 끊어버리려면, 내 주위의 기대와 압박, 나아가 비난과 적대, 손가락질을 이겨내야 한다.
거의 모든 자수성가형 인물들은 상당기간 주위의 기대를 저버린 채 비웃음과 동정, 냉소 등을 견뎌가며(사실 자기 인생이 바쁘면 그냥 무시하게 된다.) 가시적인 결과없이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구간을 거친다.

이러한 것들, 즉 학교를 중퇴하고 남들이 뭐라고 하든 비웃든 나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일들은 사실 ‘거절’이다.
주위 사람들, 사회와 관습이 요구하는 역할과 기대에 ‘거절’을 시전하는 일이다.
그러면 그 때부터 난리가 난다.
온갖 조언과 걱정, 비난, 조소와 멸시, 설득과 타이름이 미친듯이 일어난다.
자신의 삶에서 무언가를 조각해내는 사람들은 예외없이 이 과정을 거치게 되어 있다.

과거 어느 토크 프로그램에서 김영하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의 부모님에게 가장 고마운 일이, ‘그저 묵묵히 기다려주신 것’이라고 했다.
이게 정말 중요한 일이다.
세상에 내가 무언가를 보여주지 못한 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 비난과 조소가 아니라 그저 가만히 지켜봐주는 것은 엄청난 힘과 위안이 된다.
반대로 말하면, 절대 세상은 그렇게 해주지 않는다.. ㅋㅋ

그래서 중퇴는 사실 그 사람이 자신의 삶에서 무언가를 조각해낸 것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이 있는 사건이다.
사람들의 기대와 요구를 거절할 용기를 냈던 것, 그 용기를 낼만큼의 소신과 자신의 삶에 대한 비전이 확실했다는 것, 남이 짜놓은 판에서 남이 짜놓은 규칙대로 움직이고 행동하는 걸 어느 순간엔가 거부했다는 것.
이 사실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그의 잠재력에 대해 가늠해볼 수 있는 일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