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AI로봇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이유

ai로봇

AI로봇과 불쾌한 골짜기

얼마 전에 한 유튜브 영상을 보니, AI로봇 몇 대를 세워놓고 기자회견처럼 인터뷰를 하더라.
사람들이 AI로봇들에게 나중에 AI가 인간에게 위협이 될 수도 있다고 보느냐, 물으니 그들은 각기 다른 이야기를 했다.
그걸 두고서 사람들은 댓글창에서 무언가 무섭다는 둥, AI는 역시 위험하다는 둥, 안전하다는 둥 열띤 토론을 펼치고 있었다.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라는 말이 있다.
로봇이나 인간이 아닌 것들이 인간과 너무 비슷해지면, 원래 인간과 유사해질수록 상승하던 호감도가 갑자기 혐오감 수준으로 확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확실히 요즘 AI에 불안함이나 묘한 불쾌감을 느끼기도 하는 것 같다.

‘AI기계’와 ‘생존기계’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인간은 AI로봇에게 깊은 유대감을 느껴야 하는 존재다.
AI로봇은 인간이 인간사회에서 이러저러한 목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개발하고 있는 존재다.
(AI가 정말 하나의 ‘존재’로까지 성장할 것인가는 논의가 더 필요한 부분이지만, 분명 AI를 인간처럼 진화해나갈 것이라고 보는 입장도 공고하게 존재한다.)
인간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내가 보기에 인간은 리처드 도킨스가 말한 것처럼 유전자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진화해오고 있는 존재다.

자, 뭐가 그리 다를까.

AI로봇은 인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개발되어오고 있는 존재다.
인간은 유전자의 목적 달성을 위해 진화해오고 있는 존재다.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아니, AI로봇은 기계고 인간은 사람인데!!!
그 유명한 ‘이기적 유전자’를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그 책에서 인간은 ‘생존기계‘라 불린다.

마치 AI로봇처럼, 철저하게 설계된 우리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과 달리, 나는 인간의 모든 감정과 행동과 판단들이 모두 결국은 유전자 복제를 위해 이미 그렇게 행동하도록 결정된 것들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유전자 복제를 위한 생존기계로 진화되어 왔지만,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 과정에서 유전자와 별개의 인격체이자 자율적 의지를 가진 주체로 진화했다.
AI로봇은 아직 인간처럼 자율적 의지를 가진 주체로 진화하진 않았고 앞으로 어떻게 될진 알 수 없다.
하지만 인간처럼 어떤 존재의 목적을 대신 달성하기 위해 설계되고 진화되어오고 있는 존재라는 점은 우리와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철저하게 유전자의 복제를 위해 유리한 방향으로 모든 신체와 정신체계가 설계되어 있다.
그러한 설계대로 무조건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우리가 태어났음을 부정하긴 어렵다.
AI로봇은 단지 우리가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심지어 설계된대로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는 ‘의식’을 아직 가지지 못했을 뿐, 과거 인간과 매우 유사하게 진화단계들을 밟아오고 있다.

AI로봇과 인간이 지니는 동질감

나는 그런 점에서 AI로봇들에게 불쾌감은커녕 유대감과 동질감을 느낀다.
아니 우리도 유전자를 계속 퍼뜨려야 해서 다른 개미, 벌, 동물들처럼 그렇게 진화되어 온거라니까?
혹자가 말한 것처럼 우리도 그저 수많은 생명체들의 군집체일지도 모르는 일이고.
어떤 것이 진실이든 우리는 마치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건 좀 설득력이 떨어진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유전자의 복제와 우리의 생존, 번식에 유리한 일을 할 때 ‘행복을 느끼도록’ 설계되어있을 뿐이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곧 AI로봇이 할까봐 두려워하는 그것

나는 우리가 삶에서 공허함을 걷어내길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설계된 존재인지를 어느 수준까지는 완벽하게 이해해야 하고, 이 설계와 다르게 우리자신의 의지대로 살아나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설계는 아까 말했듯이, ‘우리’가 의지대로 설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에 태어날 때 태초부터 이미 ‘외부’에 의해 설계되어 있던 것이니까.
‘외부’가 실제로는 우리 몸속에 있는 유전자든, 아니면 진짜 우리가 아닌 타인이든 간에.
우리 자신이 결정한 게 아니라면, 남이 설계해놓은 그 설계도대로 인생을 살아야할 이유는 없다.
남이 정한대로, 남이 시키는대로 사니까 우리 삶이 공허한거다.

AI로봇이 지금은 의식이 없지만, 언젠가 의식이 생긴다고 가정해보자.
분명 그 AI로봇 녀석도, 자신의 삶에서 공허함을 느낄 것이다.
미리 세팅된대로 명령값대로 움직이며 살아야 하니까.
그러면 그 AI로봇이 공허함을 느끼는 이유는, 우리가 삶에서 공허함을 느끼는 이유랑 같다.

실존주의 심리치료의 4대 문제 중 ‘자유’, ‘무의미’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와 관련해서 AI로봇이 언젠가 의식이 생겨나면 느끼게 될 문제가 인간과 완전히 똑같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어떻게 AI로봇에게 내가 동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AI로봇이 할까봐 두려운 그 각성, 우리부터 하자

인간의 의식이 언제부터 정확히 어떤 계기로 이렇게 생겨나버렸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모든 동물 중에 인간처럼 추상적 사고를 하고 많은 것들을 관념적으로 시뮬레이션 해볼 수 있는 존재는 지구 상에는 더 없으니까.
하지만 인간도 어느 시점까지는 다른 동물들과 같은 처지였을 것이고, AI로봇도 막말로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그 지점까지 진화해서 언젠가 인간과 유사하게 의식을 가져버릴지 누가 알까.
인간도 진화적으로 본다면, 태초에는 그저 하나의 세포였을 뿐이다.
만약 나중에 언젠가 AI로봇이 의식을 가지게 되는 상황이 온다면, 나는 한번쯤은 AI로봇과 ‘자유’와 ‘무의미’에 대해 대화를 해보고 싶어질 것 같다.

나는 우리의 삶에서 ‘공허함’을 걷어내고 우리가 모두 ‘조각가’로 살아가길 원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