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논쟁.
2000년대가 들어선 이래 가장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한반도에서 일어난 그 누구도 명확한 해답을 내리지 못한 희대의 논제.
이성인 친구가 깻잎을 한장만 가져가려 할 때 내 연인이 그 이성의 깻잎을 떼어줘도 되느냐.
떼어줘도 된다.
아니, 그걸 굳이 왜 떼어주는거냐.
내가 사랑하는 연인이 다른 이성과 어떤 것까지 교류하고 공유해도 되는지는 언제나 희대의 논제였다.
이 화두는, 비단 깻잎을 떼어주는 것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내 연인이나 배우자가, 다른 이성과 얼마나 친밀하게 지내며 그 관계에서 오는 즐거움을 자신의 연인에 대한 미안함이나 죄책감없이 만끽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고민거리가 있을 때 몇시간이고 통화를 하는 건?
둘 다 영화를 좋아해서 같이 영화를 보는 건?
1년에 몇번 안 되더라도 둘이 맛있는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는 건?
술집에서 술을 한잔 하는 건?
동선이 같을 때 차를 태워주는 건?
스터디카페 비용을 아끼기 위해 둘이서 스터디 카페 룸을 대여해서 공부를 하는 건?
같은 헬스장에 다니는 건?
이건 사실, 끝도 없는 수만가지 상황에 대한 문제이며, 동시에 결국 한가지 문제다.
필연적으로 나와 내 연인, 둘 중 한명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이고 한 명은 상대적으로 더 개방적이다.
보수적인 입장에서는 개방적인 상대방 기준대로 가자니 이건 아닌 거 같아 화가 나고, 또 내 기준대로 상대방을 강제하자니 상대는 답답해하고 다툼만 생기니 어렵다.
개방적인 입장에서는 보수적인 상대방 기준대로 참고 살자니 숨 막히고, 내 기준대로 하면 안 되냐고 말하니 상대방은 그건 너무 선넘는 거 같다고 화를 낸다.
(흥미로운 건, 개방적인 측에서 막상 자기처럼 상대방이 다른 이성과 그런 관계를 가지며 지내면 화내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이다 ㅋㅋ)
자,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자, 일단 가장 먼저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은 기본적으로 각자의 행동은 각자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이건 결혼을 한 연인 사이든, 피가 섞인 부모자식 사이든 모든 관계에서 동일하다.
상대방이 다른 이성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든 그건 근본적으로 상대방의 삶의 영역이다.
내 통제가능영역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아니 그러면 뭔짓을 하든 다 냅두란 이야기냐! 라고 분노할 모습들이 눈에 선한데, 그런 방향성을 가지고 말하는 게 아니다.
(참고로 난 어릴 때부터 그런 사안들에 좀 과도하게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하며 살아오고 있다만 그건 내 개인적 취향일 뿐이다.)
그저, 현실을 받아들이라는 이야기다.
왕의 용안을 보면 즉결처형 당하기도 하던 조선시대에도, 백성들은 언제나 왕을 다같이 씹어대고 희화화해서 공연도 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자도 결국 타인의 행동은 통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거다.
우리가 연인인 상대방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감시하지 않는 이상, 어차피 상대방이 다른 이성과 그저 자판기 앞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과 만족감까지 통제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핵심은 깻잎을 떼주느냐, 같이 영화를 보느냐가 아니라 결국 나와 나누기로 한 ‘이성 간의 관계에서 오는 즐거움과 행복감’을 다른 이성과도 나누면 안 되는 것 아니냐, 가 아니던가.
악! 내 연인은 그렇게 나 몰래 뒤에서 내가 싫어할 행동을 할 사람은 아니거든요?
나랑 의견차가 있는거지 내 말을 들어주기로 했으면 들어주거든요!!
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인간은 자신의 욕구를 존재 자체부터 자각하지도 못하고 자각하더라도 정확히 자각하지 못하는 존재다.
그건 각 개인이 아둔해서가 아니라, 태초부터 모든 사람은 어떤 영역에서는 적어도 분명히 그렇다.
(이건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한 번 썰을 풀어보자.)
이쯤에서 이 이야기로 넘어가자.
이 문제는 앞서 말했듯이, 사안별로 볼 문제가 아니라 큰 하나의 문제로 환원해서 봐야 한다.
밤에 두시간 통화하는 건 안 되고, 낮에 잠깐 15분 통화하는 건 되는 식의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밤에 저녁 먹고 와인한잔은 안 되지만 잠시 낮에 지나가는 길에 카페에서 커피 한잔은 되는 식으로, 이렇게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이건 명백히 내 연인과 서로 독점적으로 지배하기로 한 ‘이성과의 교감에서 오는 기쁨과 행복감’을 다른 이성과도 아주 작고 사소하게라도, 겉으로 보기엔 그렇게 안 보이는 애매한 상황을 통해서도 만끽하면 안 되는거 아니냐, 의 문제인 것이다.
그러면 지금 하려는 주제가 튀어나오게 된다.
“아니, 난 그럴 음흉한 목적으로 얘랑 둘이 영화보러 간 게 아닌데…???”
자, 한 번 생각해보자.
이 논의는 애초에 이성이지만 이성이기 때문에 느끼게 되는 긴장감이나 즐거움, 설렘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시각차이로 시작된다.
추운 겨울날, 그저 친한 여자사람친구가 가방을 들고 있어서 손이 없으니까 열려있던 점퍼 지퍼를 대신 올려줬을 뿐인데, 이 행동을 여자친구가 듣고서 화를 내는 이유가 무엇일까.
내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사람친구가 떼려는 깻잎을 그저 젓가락으로 잡아 도와줬을 뿐인데, 이 행동을 남자친구인 내가 싫어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대충 생각해도, 여기서 음흉한 목적을 가지고 지퍼를 올려주고 깻잎을 떼준 게 아닐텐데 말이다.
인간은, 자신의 마음을 잘 알지 못하는 존재다.
프로이트가 창시한 정신분석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하이힐이나 물건을 보고도 섹슈얼한 욕구를 느끼기도, 충족시키기도 할 수 있는 존재다.
무의식과 달리, 우리가 자각하는 ‘의식’은 엄청나게 큰 빙산의 아주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프로이트의 삼원구조모형을 나타낸 그림을 보면, 물 밑에 어마무시하게 큰 빙산의 대부분이 가라앉아있다.)
이성과 그저 같이 키득거리며 둘이 대낮에 커피만 마시고 있어도, 어쩌면 그게 이성과 함께 있어서 느껴지는 즐거움이 크든 작든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아, 나는 그거 그 친구가 여자라서 그런 게 아닌데?
라고 모든 개방적인 입장의 사람들은 이야기하겠지만, 자신이 자각하는 의도가 그렇지 않더라도 그럴 수도 있다.
그런 게 존재한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 아닌가.
아직도 긴가민가하면 직장을 떠올려보라.
왜 신입직원이 들어오면, 여자신입직원, 특히 외모가 출중한 여자신입직원일수록 남자 상사들이 끝도 없이 밥약속을 잡는지 생각을 해보면 답이 나온다.
요즘은 예전과 달라서 술약속을 잡고 회식자리에 막 부르기도 쉽지 않은 시대인데, 그런 행태는 여전하다.
왜 그런가.
대낮에 그것도 단 둘이도 아니고 세넷 이상 모여서 밥먹는 걸 왜 그리 편향되게 여자직원에게 많이 요구하는가.
그냥 단둘이 아니더라도, 그저 낮에 바쁘게 점심 한 끼 먹는거라도, 그냥 앞에 어린 여자직원과 같이 밥을 먹으면 그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과 기쁨이 있는거다!
사실 모두가 무의식적으로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런 말을 하면 괜히 더 고상한 척, 자기는 아닌 척, 어우 그런 놈들은 변태새끼들이지, 이러는데.
항상 말하는건데, 그렇게 고상한 척 점잖은 척 하는 놈들이 제일 위험하다.
오히려 이 ‘불편한’ 진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게 애새끼 상태를 벗어나는 성장의 시작이다 ㅋㅋ
예전에 최화정 씨가 어떤 방송에서 그런 말을 한 걸 본적이 있다.
자기가 예전에 대기실에 친한 동료들하고 앉아있었는데 다 여자만 있었단다.
그래서 다들 피곤하기도 하고 축 쳐져 있다가, 남자 동료가 한 명 딱 들어오니까 다들 톤이 한 옥타브는 올라가서 텐션이 확 살더라, 고 말하며 막 웃는 이야기였다.
저게 뭐가 이상한가.
저게 자연스러운거다.
인간은, 애초에 그렇게 설계되었다.
이성에게 기쁨을 느껴야 번식을 하고 자손을 낳아왔을 거 아닌가.
인간도 동물이다.
이 이야기를 정리하면, 인간은 애초에 이성을 보며 설렘과 즐거움을 느끼게 만들어졌고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정말 별 것 아닌 이성 간의 상황에서도 크든 작든 상대방이 이성이기 때문에 느낄만한 기쁨을 느낄 수도 있다.
이 전제를 깔고 보면, 글 서두에서 말한 게 좀 더 이해가 갈 것이다.
이걸 어떻게 막는단 말인가.
뭐 남자친구나 남편을 남자나라에 쳐박아두던가, 여자친구나 아내를 여자나라에 쳐박아두지 않는 이상 그건 통제불가능하다.
사실 이런 논쟁에서 더 큰 문제는, 내 연인이 싫어하는 걸 감수하면서도 다른 이성과 그 행동을 하고 싶다는 마음 그 자체가 문제인건데… ㅋㅋ
사실 다른 동성친구와 해도 되고, 연인이 싫으면 사실 그 행동까지는 안 하면 그만일 문제이기도 한 건데 그걸로 언쟁이 생긴다는 건 많은 함의를 담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각자의 행동은 각자의 삶의 영역이라는 것.
그리고 누구나 자신의 모든 영역에서의 모든 행동의 의미와 기저에 깔린 욕망을 다 자각하진 못한다는 것.
(글이 너무 길어져서, 다음 편으로 나눠서 글을 계속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