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같은 관계

한계를 받아들이는 일

인간은 한계를 깨닫고 나면,
크게 두가지 중 하나의 반응을 보인다.
하나는,
그 한계를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는 것.
다른 하나는,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

얼핏 보면 한계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그 한계를 부정하고 뛰어넘는
원동력이 되는 것처럼 보여질 수 있으나,
사실 이는
오히려 현실을 부정하는 것에 가깝다.

정말 그 한계가 공고함에도 불구하고
부러지지 않고 무릎꿇지 않는 이들은
한계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다.
이는 빅터 프랭클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겪었던 일을 써놓은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서도
나오는 내용이다.
새해가 되면
분명히 이 지옥같은 전쟁이 끝나고
우리도 해방될거라 철썩같이 믿는 사람들은
더 긍정적이고 굳건한 신념으로 버티는 듯 보였으나,
새해가 지나고도 풀려나지 못하자
시름시름 앓다가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이야기.
오히려 비극적인 현실을
비관적으로 직면하고 받아들이는 비관주의자들이
낙관주의자보다
더욱 강한 생명력을 보여준다는 이야기는
심리학 분야에서 한번씩 회자되곤 하는 이야기다.

인간은 절대
타인의 마음을 완전히 공감해줄 수 없다는 한계,
그리고 이로부터 파생되는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고독은
부정하기 어려운 인간의 근원적인 한계점이다.

이를 부정하고
분명히 나의 모든 심정과 마음을 다 헤아려줄 수 있는
만화 속 주인공같은 관계가 있을거라 믿으며
그러한 관계를 찾아 이곳저곳을 떠도는 사람이 있고.
인간의 근본적인 한계를 인정하고,
그럼에도 그 한계에 갇힌 채
모든 진심과 최선을 다해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사람의 아픔과 감정에 공감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기적같은 관계

그런 마음을 내어주는 사람과의 진정한 관계는,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분명한 것은,
그런 마음을 서로 내어주며
진심으로 상대를 위하고 아끼는 관계가
세상에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극히 희박한 확률이긴 하지만,
살다보면
내가 배가 아플 때
내가 얼마나 배가 아픈지 몰라서 전전긍긍하며
오히려 나보다 더 큰 고통을 상상하며
곁에서 느껴주는 그런 존재를
만나게 되기도 한다.

그런 기적같은 축복은,
우리가 명백한 한계를 지닌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그 한계를 잊고
말로 형언하기 힘든 고마움과 사랑을 느끼게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처럼,

한사람이라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
그 인생에는 구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