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공허하다
공허하다.
아침부터 기를 쓰고 잠을 떨쳐내고 무거운 어깨를 끌고 학교에 가는 학생들도, 회사에 가는 직장인들도, 아이를 챙겨 학교 보내는 부모도, 이젠 침침해져버린 눈을 애써 비비며 많이도 흘러가버린 내 일생을 자꾸만 돌아보게 되는 할아버지 할머니도, 대부분의 사람들의 일상에는 공허함이 깃들어있다.
나와 사랑하는 내 가족의 건강문제, 생계문제, 안전하게 노후를 보내고 아이를 키우기 위해 해결해야 하는 금전적인 안전망 확보의 문제, 사람들과의 관계문제, 가끔 발생하는 타인과의 갈등, 온갖 문제들이 산재해 우리는 쉴틈없이 바쁘다.
그리고 그 분주한 일상 속에서 잠시 스스로를 가만히 들여다보게 되는 순간들이 한번씩 찾아온다.
‘뭘 위해 이렇게 열심히 바삐 지내고 있는 것일까.’
‘나는 무얼 위해 어떨 때는 참고, 버티고 숨기고 애써 힘내며 숨가쁘게 해보려는거지?’
공허감이 밀려온다.
태어나기로 내가 결정하지는 않았던 삶, 무얼 위한 삶을 살아볼 지 고민하고 생각할 틈이 없었던 우리 모두는 사실 공허하다.
스스로 방향을 결정하지 못한 채, 해류에 휩쓸려 지금까지 떠내려왔기 때문이다.
그 여정이 길었든 짧았든 해류의 방향이 남쪽이었든 동쪽이었든 그건 별로 중요치 않다.
정신없이 우리 모두는 사실 공허하다.
공허함을 흩날려버리는 방법
그래서, 내가 발견(발견이라 쓰고 결정이라 읽는다 ㅋㅋ)한 내 삶의 열망은,
“‘삶에서 공허함을 흩날려버리고 최고의 나를 조각하는 사람들’의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발견’하고 나면.
최고의 나 자신을 조각하는 일이 완벽하게 실현되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삶에서 공허함을 걷어낸 상태로 인생을 채워나갈 수 있다.
왜냐하면, 이제는 내 삶이 왜 지금 이어지고 있는지, 내가 무얼 위해 하루하루를 사는지 알기 때문이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있는 항해는, 즐겁고 가슴 벅차고 설레고 기대되는 모험이다.
표류하던 과거의 부유와는 전혀 다른 질감의 여정이다.
그 전에 우리가 해결해야 할 게 있다
하지만 삶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는 절대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유로운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단순히 자유를 속박당하는 상태가 아니라, 끝없이 압박당하고 세뇌당하고 통제당하고 지배당하며 휘둘리는 상태다.
처음부터 우리는 짜여진 판 위에 세워졌다.
그래서 이러한 상황을 깨닫고 그걸 하나씩 극복해나가는 일, 신체적 정신적 자유를 조금씩 되찾아가는 일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를 조종하고 지배하는 수많은 압력과 위협을 다 이겨내고 온전히 자유로워지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무얼 원하는지, 우리 내면에 깃들어있던 숨겨진 잠재력과 예술성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것을 발견하고 나서 삶의 방향을 스스로 발견하고 나면, 그 때부터는 비로소 공허감이 삶에서 사라진다.
당장에 우리가 열렬히 바라는 무언가가 삶에 실현되어 눈앞에 보이지 않더라도, 이미 우리의 삶에서 공허감은 사라진 상태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러한 수준까지 스스로를 조각해낸 사람들과 공허하지 않은 삶을 원하는 사람들이 함께 웃고 놀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마을 같은 걸 만드는 일이다.)
공허함의 비밀
공허함은, 막연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분명 해소할 수 있는 길이 존재한다.
물론 공허함을 걷어내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이, 절대 녹록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공허감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누구나 삶에서 걷어낼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
그리고 최고의 우리자신이 조각되지 않더라도, 내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몰입하는 순간부터 이미 삶에서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것.
건투를 빈다.
하루하루를 완벽하게 조각해나가기를.